장성삼 전 중구 과장, 숭례문 화재 때 양녕대군 현판 구해
장성삼 전 중구 과장, 숭례문 화재 때 양녕대군 현판 구해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5.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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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명예퇴직 후, 한양도성 해설사로 나설 계획

장성삼 전 중구청 공보과장
오는 4일 준공식을 갖는 숭례문은 소실 이후 5년 3개월에 걸친 복원 공사를 통해 다시 웅장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새로운 자재를 들여 지붕과 누각 부분을 복원했지만 현판만은 유일하게 옛 모습 그대로 있다.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이 쓴 이 현판이 화재 속에서도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장성삼 전 중구청 관광공보과장 덕분이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중구청 공보팀장이었던 장 전 과장은 설 연휴 마지막날 집에서 가족들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TV에서 숭례문에 화재가 났다는 자막 기사를 보고 무작정 차를 몰고 집이 있는 쌍문동에서 숭례문 쪽으로 내달렸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불길이 잡혔다며 소방관들은 뒷마무리를 하고 있었지만, 지붕 위에서 끊이지 않고 나오는 연기가 심상치 않았다. 얼마 후, 연기는 불길로 바뀌더니 곧바로 숭례문 지붕 전체로 퍼져나갔다.

현장상황실에서 장 전 과장은 숭례문 지붕을 깨고 들어가 화재를 진압하자고 제안했으나, 문화재청 측은 국보1호가 손상된다는 이유로 미적거리고 있었고, 그 사이 불길은 거세게 번져나갔다.

그러던 중 숭례문 현판이 10여 미터 아래로 뚝 떨어졌다. 불길이 문루까지 번지자 한 소방관이 현판의 대못을 뽑아내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러나 소방호스에서 뿜어내는 물줄기와 불이 붙은 서까래가 하나씩 떨어지는 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현판을 꺼내올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소방관들도 불을 끄는데 집중하느라 현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장 전 과장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공보팀장을 맡기 전, 문화재를 담당하던 부서에서 일해 그 현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장 전 과장은 “양녕대군이 쓴 현판을 내버려두었다간 순식간에 불길에 휩쌓일 것 같아, 현판만이라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출입통제하던 경찰관들을 뿌리치고 현판 떨어진 곳으로 뛰어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변에서 놀라 소리를 지르고 난리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길이 3.5m 폭 1.5m에 무게가 자그마치 150㎏이나 되는 육중한 현판을 혼자서 갖고 나올 순 없었다. 게다가 위에서 떨어지는 화재 잔해 때문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 또한 신중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근처에 있던 구청 직원 2명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안 좋은 상황에서도 그들도 장 전 과장과 함께 무거운 현판을 끙끙대며 옮겼다.

불길에서 약간 떨어진 곳까지 가까스로 옮겼더니 그때서야 전경 8명이 와 현판을 들고 안전한 곳으로 가져갔다.

현판은 테두리가 심하게 파손되긴 했지만, 다행이 불에 타지 않고 형태를 보존한 채 수습할 수 있었다.

이 현판은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져 2년 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심하게 훼손된 테두리목은 새 목판으로 바꿨고 치밀한 고증과 전통 장인의 솜씨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다시 탄생했다. 한국 전쟁 직후 보수하면서 원형과 달라졌던 글씨도 복원됐다.

하지만 이후, 중구청은 비난여론에 시달리며, 장 전 과장 역시 쉴틈이 없었다.

문화재청의 요구로 숭례문에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했고, 불이 나자마자 제시간에 신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방관들이 제대로 화재 진압하지 못한 결과를 숭례문 관리의 1차 책임이 있던 중구가 고스란히 떠맡아야 했다. 숭례문의 원 소유자인 문화재청과 관리 위임을 받은 서울시도 있었지만 국민과 언론의 질타는 재위임을 받은 중구에 쏟아졌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중구청 공보팀이 전면에 나서야 했고, 그 선봉에 장 전 과장이 섰다. 일주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고, 밤을 새우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기자들에게 중구의 입장을 설명하고, 중구에 불리하게 왜곡된 기사는 사실여부를 일일이 확인해 바로 잡았다.

이런 노력으로 언론의 비판은 중구에서 소방방재청, 문화재청으로 옮겨졌고, 결국 한달여만에 사태는 마무리됐다.

그 해 관광공보과장으로 승진한 장 전 과장은 2009년 문화체육과장, 2011년 7월 다시 관광공보과장을 맡은 후 지난해 말, 정년을 1년 앞두고 명예퇴직했다.

현재 숭례문과 연관이 있는 한양도성 해설사 과정을 수강하고 있는 장 전 과장은 6개월 해설사 과정을 마치면 서울 성곽을 돌며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게 될 예정이다.

장 전 과장은 “문화해설사 과정 중 현장 탐방하는 시간이 있는데 숭례문에 와서 다시 걸린 현판을 볼 때마다 5년전 일이 다시 떠오른다.”며, “다시는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지 않도록 지켜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