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근우 화백(강원대 미술학과 교수)] 행복배달부가 그리는 실현 가능 유토피아
[인터뷰-임근우 화백(강원대 미술학과 교수)] 행복배달부가 그리는 실현 가능 유토피아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5.16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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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도원 떠다니는 이상향 동물 통해 이 시대의 행복기상도 그려내

     어린 소년은 고인돌이 좋았다. 집에서 무려 20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고인돌을 보기 위해 고무신을 끌고 가곤 했다. 고인돌을 만져보기도, 끌어안기도 하며 소년은 5천 년 전 고대 인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고고학적 기상도'. 뜻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이 말은 임근우 화백의 20여 년 작품세계를 대변하고 있다. 고고학(考古學)과 기상도(氣象圖)가 만나 임 화백만의 유쾌한 유토피아를 채우고,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 속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어린 시절, 임 화백은 고인돌 위에 올라 과거와의 대화를 나누곤 했다. 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무한한 상상력에 자기 자신이 빠져 들었다. 나아가 그는 과거 시공간이 궁금했고, 현재는 어디로 향하는지 자문하고 고민한 게 어느덧 수 십 년이 흘러 캔버스 위에 해답으로 펼쳐지고 있다. 어린 시절 품은 의문과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는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과학적인 고고학과 기상도를 통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임 화백만의 '행복기상도'로 표현되고 있다.

     왠지 모를 즐거움이 휘감는 듯 그의 그림은 봐도 또 봐도 기분이 좋다. ‘행복배달부’ 임 화백을 서초동 작업실에서 만나 그의 행복을 양껏 나눔 받고 왔다.

△현재 강원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교수 △홍익대 회화과 졸업 △개인전 35회(서울, 춘천, 부산, 바르셀로나, 베이징, 도쿄, 오사카, LA 등) /국내외 아트페어부스개인전 및 단체전 1,000여 회 △작품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 청와대, MBC문화방송국, 아랍에밀레이트왕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제현대미술센타 외 다수 △1994 MBC 미술대전 ‘대상’ / 1995 제1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 2006 미술세계작가상 / 2010 MANIF우수작가상 수상

-전시명이 ‘고고학적 기상도’이다.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고고학과 민속품, 구름기상도 등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생 때 가졌던 첫 개인전에서 미술평론가 이일 선생께서 전시평론을 맡아주셨다.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일기예상도 같은 내 그림을 보고 당시 타이틀을 ‘임근우의 코스모스-고고학적 기상도’라고 붙여주셨다. 그때부터 쭉 그 타이틀을 써온 거다. 1세대 미술평론가인 이일 선생께서 지어주신 제목이 지금까지 온 것이 참 좋다.”

-고고학과 기상도에 빠진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고고학은 과거 인류문화의 수수께끼를 풀어주고, 기상도는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고 예보해준다. 어릴 적에 김동완 통보관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한반도 지도 모조지에 두꺼운 펜으로 등압선을 그리며, 내일은 어디에 비가 오고, 어디에 폭풍이 오는지 설명하는데, 마치 그의 펜 끝에서 내일의 날씨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일기예보가 오보라고 말하면서도 대체적으로 다들 날씨뉴스를 챙겨보지 않나. 과학적이고 통계적으로 구름의 속도와 방향을 계측하니까 믿을 만한 거다. 흔히들 고고학이라고 하면 민속품이나 박물관을 떠올리는데, 나는 실질적으로 과거 시간을 탐구하는 게 고고학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발굴하고, 연대측정 등 과학적인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이렇듯 내가 고고학과 기상도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바로 과학적이라는 거더라. 객관적 근거로 신뢰를 주고 설득력을 지닌 것에 매료된 것 같다 .작품에서는 탐구하는 주체가 바로 나다. 그 흥미로 20여 년 간 ‘고고학적 기상도’를 갖고 왔다. 앞으로도 고고학과 기상도는 계속 존재할 것 같으니 별다른 이유가 없는 이상 나 역시 계속 이끌고 갈 주제일 거다.”

임근우作 <Cosmos-고고학적 기상도> Acrylic on canvas 2013

-작품 분위기가 아기자기하면서도 유쾌하다. 작품 소개 부탁한다.
“내 작품은 도상학적 해석이 가능하고, 동시에 도상의 의미를 이해하면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동물은 말과 젖소와 기린을 합쳐서 탄생된 캐릭터다. 말은 역동성의 상징이고, 젖소는 풍요의 상징, 기린은 머리가 높아 명예를 뜻한다. 이 세 동물이 담고 있는 뜻 세 가지, 즉 건강, 돈, 명예는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 아니겠나. 이 캐릭터를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어내는 거다. 머리에서 나무가 자라거나, 동물에서 나무가 자라나는 등 그 자체가 이상향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유토피아 캐릭터가 땅을 밟을 필요 없이 공중에서 둥둥 떠다니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은 언어적 유희의 일환으로 ‘배달민족’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이라면 움직임에 제약을 받지만, 동물 머리에서 나무가 자라났기 때문에 공간적 제약 없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는 못 가는 곳 없이 다 갈 수 있는 오늘날의 배달문화의 한 모습인 거다. 이외에도 작품 속 도상 중 중절모자도 있는데, 이는 내 자신을 나타낸 거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보면 해리슨포드가 중절모를 쓰고 다니지 않나. 고고학자들은 중절모를 많이들 쓴다. 나 또한 중절모를 즐겨 쓰는데, 작품 속 중절모는 고고학자의 캐릭터이면서 나이기도 하다.”

-작품이 주는 느낌 특성상 아마 여성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가?
“의외로 남성들도 많이 좋아해준다.(웃음) 반반 정도다. 여성스러운 컬러를 지니곤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남성들에게도 어필하나보다.”

-작품에서 유토피아 캐릭터 외에도 얼굴 모양이나 원시인 등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그건 어떤 뜻을 담고 있나?
“기원하는 내 모습을 나타낸 거다. 특정 종교를 뜻하는 건 아니고 모든 종교를 아우른다. 최근작에서부터 인물 얼굴을 크게 나타내곤 하는데, 이는 300만 년 전의 원시인류 ‘루시’와 그로부터 300만 년 후의 오늘날 인류다. 그림 속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함께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또한 동시에 이를 훤히 내려다보는 부감법을 통해 미래를 표현한다. 즉, 한 화면에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들어가 있는 거다.”

-작품의 질감이 도드라지며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돌가루를 섞어서 만드는 내 전용 물감으로 작업한다. 그걸 크게 떠서 캔버스에 비비면서 산을 만들고, 그 다음 동물이나 사람을 만든다. 캐릭터를 조각처럼 입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스텐리스미러를 통해 거울처럼 나타내기도 한다. 또 전체적으로 진주펄을 발라 색채의 신비로움을 표현한다.”

-작가는 예술인생에서 한 번쯤은 변화를 맞는다. 지금까지 거쳐 온 변화에 대해서 말해 달라.
“지금까지 3번 정도 변화를 맞았다. 초기에는 물성이 강한 재료를 드러내는 작품을 했는데, 청동기 시대 고인돌의 투박함이라든가 돌의 느낌 같은 걸 물성적으로 표현해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작업을 한 7~8년 이어오다가 고생대 식물, 선사시대 이전의 고사리, 암석 등을 소재로 작업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지금과 같이 밝은 마음과 행복 기원 등을 담은 작업을 해오고 있다. 앞으로는 원시인과 내가 같이 찍은 사진들로 작업을 해보고 싶고, 한글 작업을 더 확장해볼 생각이다. 1990년부터 주제는 ‘고고학적 기상도’로 동일했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해 오고 있다.”

작품으로 빼곡한 그의 서초동 작업실 풍경

-한글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했는데, 소개 부탁한다.
“현재 한글을 이용해 구상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아마 내년쯤 전시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글이 갖고 있는 뉘앙스를 이용해 작업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싶’은 희망을 나타내고, ‘좋’ 역시 긍정적인 뜻을 갖고 있는데, 발음을 보면 외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양면성과 언어적 유희를 이용해 작업해보려고 한다. 기대해 달라.”

-하루 작업량은 얼마만큼 되는지 궁금하다.
“평균 8시간 이상은 작업실에서 보낸다. 또 일주일에 사나흘, 학교 수업 때문에 춘천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조그맣게 그림을 그리거나 드로잉을 한다. 아침에 수업하고 저녁에는 서울로 다시 와 작업실로 간다. 아무리 힘들고 짜증나고 피곤하더라도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런 건 싹 사라진다. 하루 종일 그림 그리다가 새벽에 집에 갈 때 기진맥진하다. 왜 이렇게 힘든가 생각해보니 아침에 와서는 밥 먹을 때 잠깐 앉은 거 빼고는 쉰 적이 없더라. 밥 먹다가도 젓가락 두고 그림 그리다가 올 정도다.(웃음)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내가 그림 그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곤 한다.”

-강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늘 세 가지를 강조한다.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그리라고. 이 세 가지가 균형이 맞아야 발전할 수 있다. 많이 보기만하고 생각을 안 한다면 소용없고, 많이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그리기만 해도 의미가 없더라. 또 다른 한 가지는 학생들에게 최신 전자기기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최첨단 전자기기는 현대 회화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핸드폰에서 많은 걸 할 수 있지 않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자기기는 캔버스, 물감 등과 동급재료가 될 거다. 나이 50대 중반인 나도 쓰는데, 미대생들은 더더욱 최신기종 컴퓨터와 핸드폰을 사용해야한다고 말한다. 나는 수업시간 외에도 핸드폰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곤 한다. 각자 작품이나 드로잉을 사진으로 찍어 주고받으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보내주거나 하면서 말이다.”

-어떤 그림으로 기억되고 싶나?
“몇 년 전부터 미술심리치료가 유행하더라. 이와 같은 원리로 나는 심리치료가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 스스로도 정서적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며 심리치료가 되고, 내 그림을 보는 사람 또한 유쾌해지길 바란다. 작가이기 이전에 나도 한 인간이기에 늘 건강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욕심이 들곤 하지만, 그림을 통해 그런 욕심을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 내 그림이 행복발전소였으면 좋겠다. 이처럼 나는 그림을 통해 모든 사람과 행복하게 잘 어울려 지내고 싶은 게 꿈이다. 내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배달민족으로서 지구 끝까지라도 내 행복을 배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작가로서의 꿈은 무엇인가?
“종종 생각하곤 하는데…, 내가 100점의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과연 후대에서는 그 100점 중 몇 점이나 영구히 남길만하다고 평가해줄까 궁금하다. 20~30대 때에는 100점 모두 남기는 게 꿈이었지만, 이제는 그 중 1점이라도 영구보존할 수 있는 작품으로 선정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20대 때부터 이런 생각이었다면 너무도 비참했을 것 같다. 당시에는 100점 모두 남을 수 있다고 확신에 차있었다. 그래서인지 작업에 집중하기가 쉬웠는데, 요즘 들어서는 1점이라도 남길 수 있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지 하나하나에도 신중해지더라.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 템포를 계속 이끌어 가고 싶지만 여건이 잘 따라줘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