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램 속에 문인들이 살아있다!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
빛바램 속에 문인들이 살아있다!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9.06.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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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인들의 친필원고, 사진자료, 작품영인본... 월북작가도 아울러

“시방 네가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그 자리가 꽃자리다.”

시인 구상 선생이 이렇게 선문답처럼 던지는 친필 글귀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 또 소설가 현진건의 딸이 월탄 박종화의 며느리였다는 사실, 그리고 시인 윤동주의 중학교 당시의 성적을 발견할 수 있는 곳, 서울 장충동에 있는 한국현대문학관이다.

원래는 수필가 전숙희 여사가 1997년 경기도 의왕시 계원조형예술대학 내에 ‘동서문학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웠다가 2000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한국현대문학관’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한국 최초의 근ㆍ현대 문학관인 한국현대문학관은 녹음에 둘러싸인 단아한 단층 홀로 주요 시인 전시관, 중앙전시관, 종합전시관으로 나눠져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중앙전시관에 마련된 작가 친필 원고 전시 진열장이다. 시인, 소설가들의 친필 원고를 전시한 이곳은 관람객들이 가장 머무는 시간이 긴 인기 코너이기도 하다.

전시돼 있는 친필 원고는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을 현대 거장 문학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최근에 작고했거나 아직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대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어 그 온기가 느껴진다.

그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김동인 선생이 ‘사랑하는 안해(아내)에게’라고 제목을 단 편지글이다. 이 편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김동인 선생이 일본 천황 욕을 하는 바람에 천황 불경죄로 복역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썼던 편지라고 한다.

그 밖에도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청준 선생 ‘눈길’의 친필 원고, 박경리 선생 ‘토지’의 원고도 만나볼 수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중앙전시관을 정면으로 바라본 오른쪽 벽면에는 일제강점기 하에서 문학 창작 활동에 몰두해 온 소설가 김유정, 이효석 등 20인의 문학인이 간략한 설명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중 월북 소설가 박태원이 청계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 ‘청변풍경’이 시선을 끈다. 청계천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빨래터였다고 한다.

또 중앙전시관의 왼편에는 우리 소설의 원류인 ‘방각본’과 ‘딱지본’, 일제강점기 때 해외 작가들의 번역물이 전시돼 있어 우리 출판과 인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방각본은 조선시대 이전, 활판이나 목판을 활용한 인쇄 방식으로 출판된 도서나 필사본 등 직접 작성하여 출판된 도서를 말한다. 딱지본은 개화기인 1900년대를 지나면서 서구의 인쇄 기계들이 국내에 유입된 이후 당시 대중들에게 인기 있던 신파극류의 신소설을 대량으로 인쇄한 작은 책자를 말한다.

‘구운몽’이나 ‘장한몽’ 같은 작품을 작은 표지에 알록달록한 색채를 입혀 제작한 책자다. 마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딱지’를 연상시키는 딱지본은 당시 국수 한 그릇 가격인 6전보다 쌌지만 지금은 1, 2백만원을 호가하는 책이 됐다.

중앙전시관을 지나 종합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현대 소설가, 시인, 월북 문학가들의 사진자료와 그들의 대표작이 시대별로 잘 정리돼 있다.

▲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두 권만이 전해진다는 1917년도 이광수 선생의 ‘무정’이 단연 돋보인다. 겉보기엔 만지기만 해도 곧 가루가 될 것 같지만 원형은 잘 보존돼 있다.

사진자료들을 둘러보다 보면 소설가 현진건의 딸이 월탄 박종화의 며느리가 됐다는 것 같은 에피소드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현진건과 박종화 두 사람은 같은 섹션에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이효석은 생전에 빵에 버터를 발라 먹는 것을 즐겨하고 서구의 서정적인 음반을 듣고 수집하는 것을 좋아해 일부 지식인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가 자기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그 앞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 인상적이다.

몇 명 되지 않는 여류작가들도 눈길을 끈다. 김동리 선생의 사모였던 최정희 선생, 목이 길어 슬픈 짐승 사슴만큼이나 곱고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 뭇 남성들의 마음을 달뜨게 했던 노천명 시인의 모습도 보인다.

월북한 작가들 역시 안타까운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납북됐다는 설이 더 신빙성을 얻고 있는 시인 정지용, ‘갑오병장’의 작가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혔던 이태준도 보인다. 서울 성북동에 위치했던 이태준의 자택이 카페로 변모돼 생전에 그가 문마루에 써놓은 글귀 등도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한국현대문학관은 작은 벽면의 공간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기둥 벽면 곳곳을 활용해 시인과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시인 윤동주가 용정 광명중학교에 다닐 당시의 성적표가 전시돼 있어 흥미롭다.

윤동주의 성적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일어와 우리말 수업의 성적이 나와 있는데, 조선어 말살 정책에 의해 우리말이 축소되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상황을 성적표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또 시인 윤동주가 일본어는 잘 하지 못했다는 재미있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또 중앙전시관에는 한국 현대 문학사 계보가 전시되어 현대 문학사의 흐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한다. 이 계보도를 보면 신소설과 창가로부터 태동한 신문학은 1910년 한일합방이나 1919년의 3.1운동과 같은 한국 근대사의 굵직한 뿌리들과 함께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북한 발행 문학 서적이 전시되어 있다.

계급주의 문학의 반대편에는 계몽주의 문학이 있으며, 1945년 해방이후에는 사회주의 이념 문학과 순수, 자유주의 문학이 또 대립하는 구조를 보인다. 

특히 유진오와 이효석이 한 줄기로 따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들은 동반 작가로서 계급주의 문학의 결말이 ‘살인과 방화’를 불사하더라도 사회주의가 꿈꾸는 사회를 도래 시키려는 극단적인 색채를 띠는 것에 반대하는 작가들이다.

이효석은 그의 작품 ‘메밀 꽃 필무렵’을 통해 시인지 소설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서정의 극치를 보여 주는 작품 경향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초기 작품 ‘돈’과 같은 작품들을 보면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근대 문학은 어려운 시대마다 나아가야 할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두 갈래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현재는 꿈꾸며 가야할 사회의 모습이 없기 때문에 점점 문학이 사장돼 가는 것이 아닌가’ 라고 평가하는 평론가도 있다.

이 밖에 중앙전시관에서는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사상’ 등 계간지도 전시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사상’과 같은 북한 문학잡지들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쇠뇌교육이 중요한 만큼 다양한 아동잡지가 발행되고 있다.

중앙전시관을 벗어나면 시인관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관에는 최남선, 한용운, 김소월, 김영랑, 이육사, 정지용, 이상, 윤동주 등 한국 현대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인 8인의 시집과 저서, 사진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특히 이상의 ‘선에 관한 각서’를 시각화 함으로써 시와 그림의 만남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표현했다. 그 밖에 소설가, 시인, 아동문학가들의 출생지를 표시한 한국문학지도를 전시해 관람객들의 각 지방의 문학관 방문을 격려하고 있다. 

▲한국현대문학관 내부에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한국현대문학관에는 관람객들을 위한 휴식 공간, 문인들의 사랑방인 쉼터 ‘제비’가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작가 이상이 1933년 종로1가에 최초로 만든 다방의 이름을 본 딴 이 곳에는 입구벽면에 소설가 박태원이 꽁트란에 기고한 글이 걸려 있다. 이 글은 이상의 까페 제비에 얽힌 뒷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현대문학관에서는 문학과 관련한 많은 부대행사들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매년 5월 개최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문학향연’과 9월의 한국 시의 밤 행사를 들 수 있다 .

지난 5월 가졌던 문학향연 행사에서는 송석재 선생이 함께 참여해 문예창작특화 학교인 수리고등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직접 평가하기도 했다. 또 학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을 낭독하는 시간도 가졌다.

오는 9월에 열릴 ‘제6회 한국 시의 밤 행사에서는 우리 시를 스페인어로 번역해 스페인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스페인어권의 주요 시인의 시를 한국어로 번역해 우리 독자들에게 소개하게 된다.

한편 1971년 ‘무정’ 등의 작품 배경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을 위해 ‘현대문학의 재발견’ 이라는 문학인 영상자료도 제작하고 있다. 올해는 이광수 현진건 채남선 김소월 작가의 영상자료가 출품된다.

‘문학관’이라는 제목의 소식지도 연간 4번 나오는데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시인과 소설가들, 기증받은 자료들을 소개하며 문인화보, 글 원전을 같이 싣고 있다.

 

<한국현대문학관 전숙희 이사장 미니 인터뷰>

한국현대문화관 전숙희 이사장

-한국현대문학관을 설립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Pen 회장을 하면서 유럽 등지의 문학관을 둘러볼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문인으로서 제대로 된 문학관 하나 없는 우리의 현실에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던 중 동생인 전 파라다이스 그룹 전락원 회장의 격려와 도움으로 30년 문학잡지를 하면서 수집한 자료들, 선후배 문인들에게서 기증 받은 자료들을 모아 1997년 계원조형예술대학 안에 ‘동서문학관’을 개관, 오늘날 서울 장충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현대문학관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급변하는 21세기, 문학이 소외되고 있는 시대를 맞아 점점 문학작품들을 읽지 않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무조건 시, 소설을 읽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에 대한 흥미, 재미를 느끼게 해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관도 문학관계 자료를 수집, 전시하여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이에 발 맞춰 대중 가까이에서 호흡하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관의 고유 기능 역시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한국 시의 밤’ 등 우리나라의 시나 문학을 외국 언어로 번역해 소개하고 그들의 문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일을 한국현대문학관이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는지요?

국제 교류 행사를 해보면 시공간을 뛰어넘는 문학의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힘든 점이라면 글쎄요. 문학행사는 항상 즐거운 잔치라서요.

 

서울문화투데이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