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칼럼③ - 화천댐 건설을 맡았던 카시마구미 발행의 비밀문서 『조선인 노무자 관리에 대해서』
이수경칼럼③ - 화천댐 건설을 맡았던 카시마구미 발행의 비밀문서 『조선인 노무자 관리에 대해서』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5.2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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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칼럼② - 아루가 미츠토요(有賀光豊)와 경춘선, 화천·청평댐 개발 이야기>에 이어서

화천 발전소의 주된 기계 부문은 히타치 건설이 맡았었고, 나머지 수로나 제방둑, 발전소 등은 카시마구미가 맡았었다.

필자는 당시의 히타치 수력발전소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히타치 제작소가 발행한 수력발전 기념집 『七十五年のあゆみ(75년의 발자취)』(日立제작소 히타치 공장, 1987)을 참조했으나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서의 수력발전소 개발 공사 보다는 전후의 해외 기술 수출 등이 주된 내용이었고, 히타치 제작소의 기술과 관련된 세계 지도에는 화천, 평창의 표시는 있으나 책에는 관련 내용의 기록은 없었다.

상게서『七十五年のあゆみ』뒤에 첨부된 지도

댐 건설 등의 대규모 토목건설 노동자들의 환경 및 노동자 모집 과정, 사건 사고처리, 복지 상태의 실태, 일본인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 대우 등에 대해 현재로서는 그 실상을 자세히 알 수가 없다. 화천발전소 건설 시기는 일본은 중일전쟁의 전시체제에 돌입되었던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전쟁이라는 미명 하에서 노동자들의 환경은 열악했고, 일본인 노동자와 같은 임금 대우는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75년 전에 이룬 위업 자랑을 미화시키려는 자기만족형 기록집보다 당시 노동자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도 자성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기업이라야 올바른 역사를 지닌 양심적인 대기업이 될 것이다. 물론 향후 연구자 및 관계자들의 자료 확보도 동시에 병행되어 화천의 근현대사 기록이 정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수로 및 발전소 등을 담당했던 카시마구미 노무부가 1942년에 편집한 『朝鮮人労務者の管理に就て(비밀문서)』가 일본 국회도서관 디지털을 통해 공개되었기에 소개하기로 한다. 발행 시기가 화천발전소 건설 시기와 비슷하고, 비록 일본국내의 조선인 노무자 관리 팜프렛이건만 왜 비밀문서 취급을 했는지 그 내용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즉, 그 당시의 일본인 기업에서 일을 하던 조선인 노무자들의 처우를 엿볼 수 있는 자료도 되기에 일본은 물론, 그 당시의 한국인들 관리가 어떠했는지를 고찰해 보려고 한다. 총42페이지의 이 팜프렛 서문에는 카시마의 노무부장이 일본의 중일전쟁 발발과 전시노동자 부족을 지적한 다음, 아래와 같이 적어놓고 있다. 긴 문장이지만 취지를 위해 소개를 해 둔다.

[정부도 이러한 중요사업 방면의 노무자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1938년부터 다양한 노무자 통제법령을 제정 실시함과 동시에 1939년부터 매년 노무동원계획을 세워서(1942년부터 국민동원계획이라고 개칭), 별 필요없는 방면에서 일하는 노무자를 현재의 국가 정세로 봐서 가장 필요한 방면에 배치하고, 또 필요한 방면의 노무자가 다른 방면에 이동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정부 당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내지(일본국내)의 노무자 부족 상황은 한 해가 다르게 심각하므로 상당 다수의 노무자를 국외에서 충당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입니다. 더구나 종래의 경험으로 조선인을 내지에 이주시켜서 내지인 노무자 부족을 채우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고, 지름길입니다. 현 정부도 올 해 조선인 노무자 약 12만명, 전년도 남아있는 노무자 약 3만명을 합하여 약 15만명의 이입 계획을 세워서(그 중에 토목건설업 관계 노무자는 약 2만5천명) 순조로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우리 카시마구미도 작년도는 시나노가와 출장소에 150명, 최근은 온타케 출장소에 200명 정도의 조선인 노무자를 이입하였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다수의 이입을 계획 중입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대동아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생산력 증강이 필수이고 이 증산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력]이란 것이 가장 우선 생각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조선인 노무자를 앞으로도 점차 내지에 이입시켜서 이러한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현재 우리 토목건축업 방면의 공사장을 봐도 내지의 노무자의 과반수는 조선인 노무자를 사용하고 있는 상태입니다.(중략) 그런데 조선인 노무자는 일반 내지인 노무자와 다른 성질이나 생활상의 습관도 있어서 내지인이나 지나인(중국인)과 비교하면 능률도 낮고 근면한 점에서 봐도 가장 태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조선인 노무자에게 업무상 충분히 능률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이것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관리상에서도 한층 연구와 고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조선인 노무자의 일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지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접할 때에 [부모 마음]의 정을 가지고 돌봐주는 것은 관리상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기에 이러한 정리를 겸한 취급상, 조선인 노무자의 성질과 특징을 잘 파악하여 그 장점과 단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기대이상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바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인 노무자를 관리하는 노하우를 가급적 쉽게 설명하여 직접 관계 있는 공사장은 물론, 일반사원, 배하, 돌봐주는 역할의 사람들에게도 조선인 노무관리의 연구자료로서 참고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바입니다. 쇼와17년(1942년) 12월 카시마구미(鹿島組) 노무부장](1-5쪽)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중일전쟁에 돌입하면서 일본 내외의 군수산업체 및 각 시설에 부족한 노동력 충당을 위해 한국은 물론, 중국 노동력을 동원하고 있고,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관련 기업을 위해 생산력 증강을 의도한 한국인의 효율적인 교육을 주장하고 있다. 말을 바꾸자면 일본의 의도와는 달리 지배측인 일본에 종순하지 못한 한국인 때문에 꽤나 고생을 해 온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장단점을 이해하면서 [부모 마음]과 같은 배려로 다스려서 효율성을 내도록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목차는

1. 조선인 노무관리의 내지인과 다른 점,
2. 조선인 노무자의 특성으로 본 노무관리

의 두 가지로 나눠져 있는데, 주목할 것은 1의 1)에 적혀진 종래의 실패 원인의  분석란이다. 종래 조선인 노무관리의 실패의 반복 원인은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돌보는 관리자가 조선인의 성질, 특징을 이해하기 보다는 [조선인은 아무래도 관리하기 힘든 민족이다]는 선입관과, 일본인 일반의 감정으로는 지나치게 결벽함과 동시에 눈 앞의 공로를 세우기에 성급한 점에 원인이 있을지 모르겠다(중략) 조선인의 노무관리의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 조선인 노무자를 황국신민으로서 키워서 내지인에게 완전히 동화시키도록 하는 것과, 대동아전쟁 하에 있어서 각 방면에서 증산을 외치는 요즘, 이와같은 능률이 낮은 노무자를 산업노무자로서 도움이 되는 유능한 자들로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므로 조선인 노무자 관리자의 책무는 진정 중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카시마구미측이 분석한 조선인 노무자의 장단점을 개괄하자면 아래와 같다.

[장점
1. 효심이 깊고 부모에 대하여 절대로 복종하는 풍습이 있다(유교사상의 영향)
; 그러나 자주 이런 이유로 조선에 돌아가려는 거짓을 말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2.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조상 숭배의 미풍이 있기에 년간 4번의 의식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돌아간다고 하면 가급적 귀국시키지 않고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3. 대가족주의 습관상 가족친지가 단결력이 강하고, 일본내에 혈연관계자가 있으면 그쪽으로 도망치는 경우가 있으니 항상 통신이나 교통 등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4. 유교적 미덕으로 남녀관계가 확실하므로 노무자의 아내들에게 가벼이 말을 거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자칫하면 이런 이유로 싸움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5. 예의 바르고 연배를 존경하는데, 만약 연하의 앞에서 야단을 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면 대단히 나쁜 감정을 가지므로 조심해야 한다. 또, 그들의 경례에 대해서는 반드시 답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6.계급을 중시하므로 항상 엄정하고 공평한 태도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7.유교 정신이 표출되어 사람에 관용스럽고 너긋하여 한편으로는 대국의 국민적 풍모가 있으니 이 점도 관리자가 너그러니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단점
1. 교육을 받지 않은 자는 향상심이 결여되어 있으나 그들의 생활 상태의 영향이니 그들을 교육하여 훈련시키면 그 지능도 높여서 향상심을 키울 수 있다.
2. 교육을 못 받아서 지식 능력이 낮은 자의 일반성이나, 판단력이 결여되고 융통성이 없는 편이다. 
3. 한일병합 전에 오랫동안 압박당해 온 역사를 가진 민족에다 대가족주의의 관계상, 국가에 대한 관념이 결여되어서 황국신민으로서의 교육을 철저히 하는게 중요하다.
4. 오랜 사대주의 사상(강권자에 따르는 사상)탓에 항상 강한자로부터 압박을 당해왔기에 사랑과 정의의 강자로 임하는 한편, 엄연한 태도로 접하면 차차 선량하게 된다고 본다.
5. 민족문제에 관해서는 단결력이 강하므로, 그들을 경별하는 언어나 태도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이 점은 상당히 중대한 문제이다.
6.사려가 천박하고 부화뇌동성으로 감정이 격하므로 세심의 주의가 필요하다.
7. 허풍스런 말이 많고 행동에 앞뒤가 있다. 그 순간순간의 처세술이나 변명을 잘하고, 자신과 타인의 물건을 구별하지 않고, 남의 것을 훔쳤어도 단순히 돌려주면 된다는 발상이므로 이 점은 도덕관념을 심어 줄 교육을 해야 한다.
8. 자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려는 것이 없고, 기력이 약하며 사람을 의지하는 의뢰심이 강하다.
9. 온정주의로 대하면 은혜를 잊는 경우가 많으니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는다는 사상을 불어넣어줄 필요가 있다.
10.집착성이 강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오는 논쟁을 하며, 작은 불평도 허풍스럽게 말하는 버릇이 있으므로 그들을 응대할 경우에는 조심해서 지도를 해야한다.
11. 이입 조선인 노무자는 도시에서 떨어진 교통이 불편한 토지에 주거하여 교육을 받지 않고, 극단적인 가족주의 생활 결과, 문명국의 단체생활에는 아직도 훈련을 해야 할 점이 많으므로 단체생활에 익숙이 되도록 끈기있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12. 자기 중심적에다 인정이 매마르고 의협심이 적으므로 이것도 교육으로 고치는 수 밖에 없다.
13. 겉치레를 잘 한다.
14. 저축심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가족으로서, 국민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행하는 이상, 저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여 집으로 송금을 장려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15. 처자는 경제관념이 결여되었으므로 교육이 필요하다.
16. 임금이 한 푼이라도 많은 곳으로 이동하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항상 그들의 불평불만은 세세한 일도 주의하여 설명을 잘 해야 한다. 작업은 늘 하는 것보다 몇 회 교대 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에 민감함.
17.도박을 즐기는 풍습이 있다. 생활정도가 낮은 그들에겐 오락적이지만 그들에게 이 악습을 없애기 위해 건전한 오락과 위안 및 체육 방면에 힘을 넣어야 하며, 동시에 도박은 불법으로 금지된 나쁜 짓임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18.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도회지에서 떨어진 불편한 곳엣 가난한 생활을 했기에 이익에 민감하고, 밀조에 의한 값싼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다. 만약 이것을 발견하면 안되는 이유를 말하고 밀조(몰래 만드는 것)는 [주조세법]이란 법률로 금지된 것을 납득시켜서 재범이 없도록 해야 한다.
19. 조선의 계급제도에서 온 습성으로, 하층계급자들도 마치 상류층인척 겉치레를 하며 [찬밥은 안 먹는다]며 튕기는 경향이 있으니 충분히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
20. 자기 중심적으로 책임감이 결여된 사람이 많으므로 단체 훈련을 실시하여 책임의 중요성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21.장시간 노동을 싫어하며 지구력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22. 지능이 낮은 자는 일반적으로 이해력이 결여되어 있어서 남을 의심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잘 알것 같은 것도 친절히 설명하여 납득시켜야 한다.
23.지능 정도가 낮은 자는 연구심이 결여되어 창의공부를 시켜야 하고, 어떤 성격의 업무가 맞는지 잘 생각해서, 두뇌를 필요로 하는 것은 피하여 운반이나 짐 싣는 일 같은 단순작업을 시키는게 좋을 것이다.
24. 동작이 느려서 급한 일에는 부적당하므로 보안상의 주의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나 장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25.무저항주의의 풍습이 있다.간디의 무저항주의가 좋은 본보기지만 그들은 자신의 의사에 만족 못 하는 일도 표면에는 결코 반대 의사를 나타내지 않고, 더구나 복종도 하지 않으므로 극단적으로는 단식동맹을 실행한 예도 있으므로 그 행동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주의를 필요로 한다.](5-22쪽)

위와 같은 장단점을 기술한 뒤, 조선인 노무자를 모집할 때는 그들을 신중히 조사하지 않으면 도망가는 경우가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모집할 때에 우선 본인들에게 공사장의 사정을 알리고 본인의 마음 등도 충분히 들은 뒤, 가정 상황이나 그 외 그들 주변 사정을 상세히 조사한 후 채용 가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조선인 노무자에겐 일본인과 같은 이름을 정해서 부르면 친밀도나 작업 능률도 효과적일 것이고, 협화회 회원장은 2년간 효력이 있으므로 반드시 소지하도록 하여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본인이든 사업주이든 상당의 제재를 받도록 해야 하고, 오랜 음식 습성이 있으니 이주 당초는 마늘, 고추, 김치 같은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제공하는게 중요하며, 그들의 종래의 제 멋대로의 식사ㅔ 대한 습관을 고치는 특별 교육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식기 세재, 의류/작업복의 세탁, 변소 청결, 각 방의 청소, 소지품의 정리정돈, 의류 이불 등의 일광 소독 등, 위생 관념을 개선시켜야 하며, 그 수단으로 영화, 종이 연극 등의 위생 사상의 선전 보급에 힘써야 하고, 여가를 즐기도록 씨름, 축구, 줄당기기, 등산, 팔씨름, 수영, 나무 봉 누르기,소풍, 운동회, 조선 장기, 하모니카, 퉁소, 조선의 피리, 조선 영화, 조선의 신문, 아마추어 연예회 등의 오락을 제공. 언어의 공통은 민족을 감정적으로 결합 시키므로 국어(일본어)를 교육시키고, 조선인 전문 주임계원을 설치하며, 그들에게 국어를 교육시키는 반면, 사원이나 지도원 등도 작업상 필요한 조선어를 배워둬야 하며, 모범적인 중견 조선인 노무자도 선발, 육성해야 한다. 그렇게 교육 훈련을 하여도 그들 특성이나 오해로 인해 싸움이 일거나 도망을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때는 즉시 경찰당국이나 협화회 지회나 그 외의 관계기관에 밀접한 연락을 취하여 누락이 없도록 준비해 둬야 한다. 그리고 좋은 것은 칭찬하고, 나쁜 것은 벌하는 것은 미개한 민족 지도상, 필요하므로 상벌을 명확히 하여 관리하며, 게으럼뱅이나 규율을 흐리게 하거나 국법을 어기거나 불량채무자들에게는 사정없이 제재를 가하며 성적이 좋은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표창을 해야 하며 이런 것도 항상 경찰서나 협화회, 그 외 관계기관과 연락해서 상벌을 신중히 해야 하며, 각 공사장에 규범이 될 모범 관리 공사장을 설정하여 효과를 올리도록 하고, 도주자를 막기 위해서는 식사의 특별훈련과 노무자 빼가는 것을 엄금하고, 조선인 노무자를 마을 시군청/읍면 등은 엄한 아버지처럼, 관리자들은 자상한 어머니 같은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접하는 것이 그들에게도 어울리고, 선도하기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시읍면촌 측과 민간측과 힘을 합쳐서 도주자가 안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23-38쪽)

라고 적혀있다. 물론 교육적 기회가 없었거나 생활 환경이 어려워서 막노동의 노무자로 일하는 조선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한 내용이고, 게중에는 일반적인 인간의 보편적 성격도 기술되어 있고, 조선의 민족성에 대해 논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미개한 민족이란 전제하에 일본의 교육과 자비로 대하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도주자들이 많은 원인 중에는 노무자들을 빼가는 경우도 기록되어 있고, 회사 내에서의 트라블이 많았던 사실도 엿볼 수 있다. 카시마구미가 민간사업체지만 국책 기업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경찰이나 자치체와의 연계로 조선인 노무자 관리를 꾀하고 있음도 엿볼 수 있다. 즉, 민간업체지만 국가가 뒤를 봐주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내용은 1942년 전후로 일본에 오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관리하기위한 지침서가 되어 있으나 이런 팜프렛 자체를 작성한 것이 이미 상당수의 조선인 노동자들을 고용 취급했던 경험상 전쟁 말기의 혼란을 피해서 유연한 관리 방법을 모색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말을 바꾸자면, 적어도 대부분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은데, 일본 근대 자본주의 이식으로 인한 사회 발전과 교육 보급으로 선진 일본제국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것과는 달리, 당시의 일본이 걱정할 정도로 많은 노무자들도 [무교육]이란 교육의 기회를 못 받은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건 식민지 조선의 교육제도나 사회제도를 정립, 발전시켰다고는 말하면서 결국 내실은 그렇게 보편적이지 못 했음을 토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이 도시에서 떨어진 산골 등지에서 모였다고 하지만, 그렇게 산골에서 무교육의 사람들을 노무자로 데리고 왔다면 더더욱 밝지 못하고 교육의 기회조차 없었던 그들에게 달콤한 말로 속여서 데려왔을 가능성 조차 스스로 시인하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다른 도시 출신의 노동자들보다 현저하게 값싼 노동력으로 데리고 와서, 불평 불만에도 섣불리 도망을 못 가도록 낯선 이국땅에서 일하게 했다면 당연히 그들이 염려하는 문제점 혹은 단점은 반드시 조선인이 아니라 세상 어느나라 사람이라도 같은 처지에 처하면 비슷한 반응이 일어났을 것이다. 일제말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회유적 관리를 통한 유연한 노무자 취급을 제시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그들 스스로가 당시의 일본 정부의 식민지 정책의 모순을 자인하는 자료가 되고 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료이다.

식민지 통치지배를 당했던 한반도가 비록 해방으로부터 68년이 되고 있지만, 만 40년간의 지배 흔적이 남북한 곳곳에 남아 있고, 근대 자본주의 이식이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이뤄진 만큼 강압적인 기억을 역사로 남겨야 하는 의무와, 한편으로는 경제적 발전을 가져다 줬다는 표면적 통계치로만 긍정적인 역사 왜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분명히 해 둬야 한다.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부하던 한민족 사회를 자신들의 잣대로 미개하다 판단하고, 힘이 생겼다고 강압적 지배통치를 하러 왔다가 쇄국 정책으로 급격히 근대화하지 못한 한반도를 지배함과 동시에 일찍 받아들인 인프라 기술을 전개했지만, 그것은 상호 평등한 이웃나라 관계로의 연대 협력이 아니라 철저한 자국 동화를 위한 [일본의, 일본을 위한, 일본의 조선땅 조성을 위해] 투입된 자원이었던 것이다.

즉, 먼저 근대화를 맞은 일본이 이웃 나라 한반도의 낙후를 우정적 협력으로 도와서 시너지 효과를 위한 공감대 형성과 상호 발전을 위해 돈독한 관계 기반을 구축했었더라면 일본이 과분히 공들였다며 통분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실학이 태두하기 시작했던 한반도도 조금 늦어지긴 해도 근대화의 궤도에 급속히 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전쟁, 폭압의 희생자도, 이토록 100년이 넘도록 일본을 원망하며 깔끔한 역사 청산을 요구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일본도 당연히 한반도에서 그런 전후 청산 배상 요구를 받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가만히 놔뒀더라면 다른 열강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이 한반도와 지배 피지배 관계가 아닌 선린우호관계를 지속했다면 굳이 일본이 말 할 필요가 없는 내정 간섭에 해당된다. 중요한 것은 대한제국 정부가 근대 자본주의 이식을 정식 협력 요청하거나 일본의 피지배국 혹은 속국화를 공식으로 부탁한 것이 아니다(물론 일부 친일 인사가 경찰권 위임등의 매국 행위를 한 것은 공식적인 정부 의사는 될 수 없다).

이 모든 얽혀진 한일 근대 역사는[일본의 피지배국으로 거듭나는 영예와 동화]를 힘의 논리로 강요하며 40년을 지배 통치해 왔기 때문에 생긴 폐단에서 발생된 결과이다. 게다가 무리하게 식민지 인프라 조성을 위해 투입한 자원을 예상 못 한 패전이란 결과로 인양 혹은 회수하지도 못한 채 [천하 무적 대일본제국]이라 자찬하던  자존심을 미국이란 대국 앞에서 구겨야 했던 만큼의, 기대치와는 다른 패망의 결과를 끌어안아야만 했던 분통이 한반도의 억울한 전쟁 희생자에 대한 역사 청산 요구에도 엇나간 몰양심적 우익의 분노로 표출되어온 것이다.

일본인들 사회에는 검을 사용해 온 무사들(사무라이)의 정신을 [이사기요사(潔さ); 비겁하지 않고 당당하고 깨끗하다는 뜻]라고 해서 그들의 정신 사상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러나 고대부터 오랜 교류를 가져 온 소중한 이웃나라 한국과의 파트너십을 미래지향적으로 진지하게 만들어 보려는 이사기요사 정책은 볼 수가 없다. 과거의 야당 수상들의 몇 반성을 빼면 아예 과거사를 은폐하여 현재의 사회관으로 봤을 때의 아름다운 일본사 만을 주장하려하는 우행이 앞서고 있다. 즉, 곪은 환부를 전면적으로 치료하기 보다는 눈감고 아웅식으로 피부쪽 소독만 약간 해 두고, 본질적인 치료가 귀찮다고 그대로 붕대로 덮어 둔 상태와 별반 차이 없다. 안에서 피부가 썩을 경우 얼마나 더 심한 한일관계의 얽힘이 기다릴지 모르건만 미래지향적인 선견지명의 정책에 용단을 내릴 진정한 정치가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과거사를 정리해야만 미래의 후손들이 당당하게 손을 잡을 수 있는 강한 파트너십이 존재할 수 있기에 강력히 미래를 위한 과거사 청산에 혼신을 다 하는 한국측 정치가들도 그다지 볼 수가 없다. 일본과는 달리 오랜 일가친척 파워로 구축해 온 세습의원들이 아닌 한 순간 반짝 권력층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대중의 인기몰이만 의식하는 화려한 퍼포먼스는 있어도 과거사 청산은 미루는 습성이 되어버린걸까?

세계 수준으로 거듭나는 문화대국으로 인정 받으려면 화려한 물질중심으로 겉만 요란한 사회가 아니라 기회주의나 요령주의 권력자 보다는 한일 사회의 백년대계를 염두에 두고 용기있게 후손들이 살아 갈 평화 사회를 남겨줘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과 강한 의식으로 뭉친 진정한 정치가들이 두 사회에 필요하다. 불행한 기억은 기록하여 미래의 거울로 삼고, 진솔한 대화로 참된 다가서기와 과거사 정리를 말끔히 하여 글로벌 사회의 한일관계를 다지고, 함께 미래의 청사진을 만들어 갈 때 비로소 한일 사회가 세계적인 평화의 모델 지역으로 안착될 것이다.

글로벌 세계는 나를 알고 상대들도 많이 알아야 한다. 자신이 태어난 사회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도 모른 채 외국어나 좀 알고 영어권 추종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야스구니 신사(神社)가 신사(gentlemen)라고 대답하거나 종군위안부가 어느 부대 이름이냐고 하며 제대로 된 한국어 사용보다 이모티콘에 여념이 없는 수험 준비생을 양산하는 사회가 된다면 과연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존재하게 될까? 극단적인 뉴스에 과민하여 걱정에 빠지는 필자의 기우가 부디 단순한 노파심이기만을 간절히 빌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