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2013 모다페 해외초청작
[공연리뷰] 2013 모다페 해외초청작
  • 김인아 기자
  • 승인 2013.05.29 2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 데미안 잘렛, 파트리스 티보, 니콜 세일러

지난 17일부터 26일까지 국제현대무용제(일명 모다페)가 아르코예술극장 및 대학로예술극장 등지에서 다채롭게 펼쳐졌다. 올해로 32회째를 맞는 모다페는 1980년 한국현대무용협회의 창립과 함께 한국현대무용제로 출발, 2002년부터 모다페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하며 외국 현대무용의 최신 경향을 우리무대에 소개하는데 주력해왔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에는 에미오 그레코, 야스민 고더, 제롬 벨, 피핑 톰, 자비에 르 로이 등 실험적이고 참신한 해외 무용단 및 안무가들을 소개, 국내 무용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며 성공적인 춤축제로자리잡았다. 올해는 벨기에, 남아공, 프랑스, 스페인, 스위스의 다섯 개 해외단체가 모다페 무대를 찾았다. 그 가운데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오른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 데미안 잘렛,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여진 파트리스 티보, 대학로 일대에서 펼쳐진 니콜 세일러의 작품을 들여다본다.

2013 모다페 개막작인 ‘바벨(BABEL)'은 벨기에 Eastman 댄스 컴퍼니의 2010년 작품으로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Sidi Larbi Cherkaoui)와 데미안 잘렛(Damien Jalet)이 공동으로 안무했다. 신에게 닿고자 바벨탑을 올린 인간의 오만에 내려진 징벌이 바로 여러 가지의 각개 다른 ‘언어’였으며 이 때문에 불통(不通)과 혼란이 일어나 탑을 완성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구약성서의 ‘바벨탑’ 이야기가 작품의 모티브다. 언어·문화·관점·정체성의 차이와 그로인해 파생된 권력관계, 분쟁, 소통의 문제를 건드리는 동시에 그 해답을 13명 다국적 무용수들의 언어와 몸짓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다.

각국의 무용수들은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등을 다양하게 구사하며 작품을 이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미국인의 대사만이 자막으로 제공되며 한국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을 뿐 다른 언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관객과 무용수들간의 언어에 의한 소통의 문제가 드러남과 동시에 언어 권력의 일면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지점이다. 다름에서 우위를 차지한 권력자의 묘사는 입국심사대 장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다소 연극적 요소가 짙은 이 장면에서 입국심사원은 외국인의 지문 촬영을 요구하고 청소부로 보이는 여성을 통과시키지 않는 등 위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며 권력의 나라 미국을 풍자적으로 드러냈다. 미국인이 팔과 팔을 연결한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한 마리 매와 같이 크게 날개짓을 하는 장면은 마구 휘두르는 듯 절정에 치달은 권력을 유머러스하게 조롱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루할 틈없이 관객을 사로잡는 유머 코드는 불합리하거나 모순의 지점들을 강조하며 균형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해낸다.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Sidi Larbi Cherkaoui) & 데미안 잘렛(Damien Jalet) 공동안무, Eastman 댄스 컴퍼니의 '바벨(BABEL)' (사진= 모다페2013, ⓒKoen Broos) 

영국의 현대미술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무대장치는 극적 효과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곰리는 이 작품을 위해 직육면체 형태의 큐브 프레임 다섯 개를 만들어냈고 무용수들은 이 틀을 이리저리 이동, 분리하거나 합체시켜 탑의 형상을 이미지화하는가 하면 각 장면에서 훌륭한 배경으로 삼기도 한다. 또한 다양한 문화차이를 반영한 라이브음악은 기본이 되는 아일랜드 음악을 바탕으로 여러 국가, 여러 종교적 음악을 혼합해 특색있는 리듬과 음색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특히 타악을 이용한 리드미컬한 음악은 우리나라 장단에 버금가는 신명을 갖추고 있어 무용수들의 빠르고 역동적인 움직임에 들어맞는 것이었다.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Sidi Larbi Cherkaoui) & 데미안 잘렛(Damien Jalet) 공동안무, Eastman 댄스 컴퍼니의 '바벨(BABEL)' (사진= 모다페2013, ⓒKoen Broos)

무용공연으로는 짧지않은 두시간동안 각국의 언어, 다양한 제스쳐, 부드럽거나 때로 역동적인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변형가능한 무대장치, 혼합의 라이브음악과 함께 펼쳐졌다. 불통의 언어 대신 소통의 몸짓을 드러내며 언어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춤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작품 ‘바벨’. 언어를 넘어서 모든 관계의 다름, 차이는 곧 다양성으로 대변되며 이를 통해 다르다는 것이 신의 징벌이 아닌 축복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웰메이드 작품이다.

21일 선보인 파트리스 티보(Patrice Thibaud)의 ‘페어 플레이(Fair Play)’는 운동선수의 신체에 주목한 작품이다. 티보는 프랑스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있는 마이미스트로서 연극적 움직임의 다양한 스타일을 다뤄왔다. 이 작품에서 그는 올림픽에서의 여러 스포츠 종목을 소재로 운동선수들의 신체 표현을 섬세하고 재치있게 그려내고 있다.

반주자이자 그의 훌륭한 파트너인 필립 레이냑(Philippe Leygnac)은 등장부터 유쾌하다. 그랜드피아노에서 꾸물꾸물 묘기에 가깝게 빠져나오는 그는 통아저씨를 연상시키며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티보와 레이냑의 환상콤비는 혀가 공이 되어 통통 소리내며 입으로 테니스공을 주고받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티보가 승마, 육상, 평균대, 수영 등 여러 종목의 사실적인 표현을 석권해 나갈 때마다 레이냑의 피아노와 트럼펫 연주는 티보의 움직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티보의 표현 능력은 실로 대단해서 창던지기에서는 창이 보이는 듯하고 리듬체조 훌라후프 종목에서는 굴리고 던져지는 훌라후프가 자연스레 그려졌다. 그의 연기는 리얼리티가 강조된 섬세함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유머코드를 놓치지 않고 있어 관객의 웃음을 끊이지 않게 만들었다.  

파트리스 티보(Patrice Thibaud)의 ‘페어 플레이(Fair Play)’ (사진= 모다페2013)

‘페어 플레이’는 무용 작품이 아닌 어디까지나 연극적 마임작품 또는 신체극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나 티보와 레이냑의 신체 표현법, 연출력 등에서 컨템포러리 댄스와의 교집합을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의 작품성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스위스 안무가 니콜 세일러(Nicole Seiler)의 작품 ‘리빙룸 댄서즈(Living-room dancers)’는 현대무용, 힙합, 팝핀, 한국무용, 플라멩고 등을 야외를 걸어다니며 관람하는 이색적인 작품이다. 원작은 비전문무용수들이 탭댄스와 일렉트로댄스, 탱고, 살사, 삼바, 폴댄싱 등을 자신의 아파트 거실에서 추는 것이지만 이번 모다페에서는 전문무용수들이 각 장르의 춤을 대학로 일대 카페와 빌딩, 주민센터 등지에서 선보였다.

관객에게 주어지는 가방에는 지도와 mp3플레이어, 망원경이 들어있다. 대학로 일대를 가이드와 함께 한 시간 가량 이동하면서 각 장소에서 각자 mp3를 통해 작품에 맞는 배경음악을 재생하고 무용수와 춤을 관람한다. 먼 거리에서는 망원경을 이용해 움직임을 좀더 면밀히 관찰하기도 한다.  

(왼쪽부터) 니콜 세일러(Nicole Seiler)의 ‘리빙룸 댄서즈(Living-room dancers)’(사진=모다페2013), 관객에게 제공된 ‘리빙룸 댄서즈 서울’ 지도 (자료=모다페2013)

도시 건물 속 무용수들의 개인적인 공간은 곧 공개적인 무대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 성격의 모호함 속에서 무용수들은 아무도 보고있지 않는 듯 무심히 춤추며 보여주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관객은 이를 엿보는 것으로 독특한 작품진행이 이뤄진다. 유리창은 곧 쇼윈도가 되어 창틀에 가려진 무용수들의 신체 일부분만이 관찰되기도 한다. 모든 무용수들은 자연스러운 즉흥춤을 선보여 개인적인 춤 엿보기를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관객 스스로 재생한 음악은 각자 다른 시점에 시작한 음악으로 동작과 우연히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음악은 때로 도시의 소음과 어울려 그 자체로 독특한 배경이 된다.

극장 공간에서 탈피한 새로운 공간에서 무용수, 관객의 이색적인 관계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니콜 세일러의 이 작품은 관객을 춤 현장 탐험대로 만들며 공연관람의 새로운 경험을 이끌어냈다.

올해 모다페를 찾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 데미안 잘렛, 파트리스 티보, 니콜 세일러의 작품이 신선한 자극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지만 춤 애호가들이 열광했던 2000년 초중반 때의 반응만큼은 아닌 듯하다. 당시 크게 주목을 받았던 모다페의 해외초청공연 프로그램은 최근 들어 혁신적인 성격이 다소 위축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계 현대춤 조류를 국내에 앞장서 선보인다는 모다페의 취지를 상기해 혁신적인 해외무용작품을 불러들이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한편 국내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강화, 우수 레퍼토리를 엄선해 선보인 점은 고무적이라 볼 수 있다. 모다페가 ‘국제’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해외와 국내 프로그램 기획의 균형성을 재검토하여 국내 최장 현대춤 축제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