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Books] 조선소 모퉁이 눈물 삼키던 그 사내
[Book &Books] 조선소 모퉁이 눈물 삼키던 그 사내
  • 이소리 기자
  • 승인 2013.05.30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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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투쟁의 기록 3년, <종이배를 접는 시간>

옥빛 작업복에 청춘을 바친

배 만드는 노동자

그리고 세상의 산 자와 죽은 자가

이 기록의 주인공이고

이 르포르타주를 썼다

그들에게 바친다 -‘헌사’ 모두

“2011년 1월 6일 새벽 3시 10분,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랐다. ‘김진숙을 김주익처럼 죽게 만들 수 없다, 김진숙을 지키겠다’며 사수대가 크레인 중간에 올랐다. 가족대책위(가대위)가 꾸려지고 해고노동자 94명을 중심으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정투위)가 꾸려졌다. 그리고 이들은 크레인 아래를 굳건히 지켜냈다…

2011년 여름은 뜨거웠다. 2003년과는 달리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달려온 시민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부산을 뜨겁게 달궜다. 언론에서도 연일 김진숙과 희망버스를 보도했다. 그리고 그에 힘입어 김진숙은 크레인에 오른 지 309일 만에 살아서 내려왔다.”

2011년 새해 들머리, 매서운 추위가 이 세상을 꽁꽁 얼어 붙이고 있던 그 매섭게 추운 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85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그때부터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투쟁, 그 3년에 걸친 지루하고도 힘든 나날을 일기처럼 꼼꼼하게 적은 투쟁기 <종이배를 접는 시간>(삶창)이 나왔다.

이 책은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 2010년부터 최강서 열사가 노조 사무실에서 목을 매 이 세상을 떠난 뒤 66일이 지나서야 솔밭산에 묻은 이야기로부터,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과 사수대, 크레인 아래 있었던 정투위와 가대위가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한눈에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의 힘’으로 써내려간 한진중공업 해고투쟁 3년을 담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 어둡고 긴 시간이라는 터널에는 새내기 작가 세 명과 르포작가 한 명이 있었다. 허소희, 김은민, 박지선, 오도엽이 그들. 그들은 마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배를 짓듯 서로 마음을 포개고 글을 지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약속을 깨려는 이들이 있을 때, 누군가는 약속을 위해 곡기를 끊어야 했고, 땅을 버리고 허공에 올라야 했고, 피 터지게 싸워야 했고, 목숨을 걸”기도 했다. 그렇게 쓴 이 글은 껍데기만 찬란하게 빛나는 대한민국이 지닌 불편한 진실, 그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은 물론 이 시대 르포문학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까지 활짝 열어 놓았다.

대한민국이 지닌 불편한 진실… 북 콘서트에 몽땅 담다

“한 노동자는 100일이 지나도 희망도 동료도 보이지 않아 목을 맸고, 한 노동자는 100일이 지나자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몰려온 시민들에 힘입어 걸어 내려온 85호 크레인의 기록이기도 하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치기했던 한진중공업, 그곳에 우뚝 선 85호 크레인 위에서 누군가는 죽어서, 누군가는 살아서 내려왔다. 외딴 섬 작은 집과 같았던 크레인 곁에 사람이 끊겼을 때 우리는 85호 크레인을 절망의 상징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곳에 고깔모자를 쓴 우스꽝스러운 희망버스 승객들이 몰려왔을 때 그 외딴 섬 작은 집을 희망이라고 불렀다.” -‘프롤로그’ 몇 토막

희망버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희망버스가 어느 날 갑자기 출연한 게 아니라 유월항쟁, 촛불집회 등의 염원이 물방울처럼 모여 강물처럼 흘러온 것이라면 흐망버스는 지금도 멈춰선 게 아니라 어디론가 다시 흘러갈 것이다. / 그게 역사다. / 그리고 그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 결국 사람이다. / 폭력은 의지를 이기지 못한다. / 자본은 결코 신념을 넘어서지 못한다.” -김진숙, ‘이 네 사람의 이름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의 역사다’ 몇 토막

<종이배를 접는 시간>은 책머리에 실린 ‘프롤로그’, 책 끝자락에 실린 ‘에필로그-미완의 르포르타주’와 함께 모두 3부에 22꼭지로 나뉘어져 있다. “이 네 사람의 이름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의 역사다” 김진숙과 “인연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박성호가 눈물처럼 덧붙인 글과 부록 “85호 크레인의 달력”,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투쟁일지” 등도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

일곱 해 만에 켠 보일러, 망치 소리 멈춘 영도, 백만 원짜리 인생, 폭설에 끊긴 영도다리, 붉어진 아내의 눈, 다시 올게요-1차 희망버스, 약속과 배신, 실종된 인권, 당신을 통해 희망을 봅니다-2차 희망버스, 하늘을 수놓은 풍등-3차 희망버스, 이 사람을 아십니까?, 특별한 신혼여행-4차 희망버스, 살아서 내려와요,

영도에 뜬 한가위 대보름달, 가을소풍 가자-5차 희망버스, 심판의 날, 309일, 그리고 다시 1일, 가장 고마운 사람, 유예의 시간, 듣도 보도 못한 158억, 깨진 유리조각을 거둬 부드러운 흙으로, 욕봤다 등이 그 피눈물 어린 글들.

사람들은 ‘한진중공업’ 하면 흔히 김진숙과 크레인, 희망버스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들이 지난 3년 동안 어떻게 버텨왔는지, 김진숙이 크레인에서 내려온 뒤 ‘309일, 그리고 다시 1일’이라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최강서 열사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는지 잘 모른다. 이제 <종이배를 접는 시간>을 씨실과 날실로 수놓은 글쓴이들에게 그 속내를 직접 들어보자.

“조선소 모퉁이에서 몰래 눈물을 삼키던 사내의 두 눈을 봤을 때, 수십 년간 쌓인 체증이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유예의 시간은 그대로 굳어 몸의 일부가 되었다. 바람과 햇살에 얼고 녹아 손마디마다 옹이가 패고 살갗은 두 줄기로 갈라졌다. 여기, 몸으로 살아낸 노동자들의 피맺힌 고름을 손길 보태어 담아냈다. 써내려가는 행간마다 길게 눈물자욱 드리운다.” -허소희

“한진에 대한 첫 기억은 희망버스가 오기 하루 전, 새까만 용역들이 투입되던 날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에게 생사를 건 그들의 기운이 훅 하고 들어왔다.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지만 아저씨들의 고통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정리해고 통보 이후 지금까지 ‘개같이’ 살았던 세월을 무어라 다 말할 수 있을까! 다만 조금이나마 아저씨들에게 위안이 되고 싶다.” -김은민

“말없이 꼬깃꼬깃 만든 종이배는 한 평 남짓의 그늘에 몸을 구기고 앉아 있는 그들과 닮아 있었다. 눈물만으로도 쉽게 허물어질 배를 해고노동자들이 접고 또 접으며 지금에 왔다. 종이배에 담아 전하고 싶었던 그리고 끝내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책장을 덮는 마음마다 종이배 하나씩 남아 희망과 연대의 동심원이 조용히 퍼져 나가길 바래본다.” -박지선

“절망의 시간은 길었고, 희망은 순간이었다. 85호 크레인을 내려오던 날, 따뜻하게 마주 잡았던 손으로 강서와 차갑게 인사를 해야 했다. 밤마다 종이배를 접으며 희망버스를 기다리던 옥빛 작업복을 입은 억센 손의 사내들이 내 이불 속을 파고든다. 그들의 얼굴엔 조선소가 돌아갈 땐 소금땀이, 멈췄을 땐 눈물이 쉼 없이 맺혔다. 작업복에 떨어진 눈물은 옥빛이었다.” -오도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