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따라쟁이는 없다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따라쟁이는 없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3.05.30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미술가들은 간혹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 도용하였다고 믿는다. 저작권이 어떠하고 특허권이 어떠하냐고 물어온다. 그때마다 하는 말은 비슷하다.

‘미술에 있어서 저작권은 작품의 표현방법보다는 거기에 담겨진 의미를 더 중요시 여깁니다. 어느 공장에서 생산된 같은 모양의 도자기 화병을 보고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대나무를 이용해 사과나무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작품을 보고 같은 재료로 복숭아 나무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저작권법에 저촉되지는 않습니다.’

미술작품은 공장에서 무한 생산되는 상품이 아니다. 예술작품은 사회가 요구하는 진화의 사물이다. 따라서 어떤 상품가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사물 중 일부라 취급한다. 앞선 세대의 미술작품을 모방하고 따라 그리고 하는 것 또한 이전 세대의 가치를 오늘에 계승하는 일이다. 계승은 선대의 정신을 이어받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미술에 있어서 정작 불필요한 따라쟁이는 정신적 접근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물건 따라 쟁이다. 그것조차 힘겨워 대충 따라 그리면서 사물의 해체라 주장하는 이들이다.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 따라 했다고 주장하는 어느 미술가는 아주 유명한 미술가가 아니라 적당한 명성과 적당한 인지도를 지닌 이들이다. 유명한 미술가는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도용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다. 정신을 도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형식을 따라하는 것은 정신을 배우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미술작품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표현방법은 미술가마다 독특하며, 같은 문화권, 비슷한 환경에서는 비슷한 양상의 미술품이 생산되기도 한다. 무슨 무슨 ism이라고 하는 것은 비슷한 사회구조에서 비슷한 형식과 내용의 예술작품을 통칭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미술인들은 독특한 형식에 집착이 강하다. 어떤 미술인들은 형식 개발에 지나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기만의 형식을 고집한다. 등장인물도 항상 비슷하다. 주제_(창의적인 예술 작품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_개발보다 소재_(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바탕이 되는 단상이나 재료)_개발에 더욱 적극적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재료를 가지고 주제라 우긴다.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면 따라쟁이라 생각한다. 재료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주제가 개발되면 소재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주제를 위한 재료가 선택되어야 한다. 만들어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너무 빨리 규정하고 정해버린다. 다양해야한다.

지금은 정보가 공유된 사회다. 3D프린터로 권총도 만든다. 과거에는 어떤 특정의 의미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비밀로 하였다. 표현 기법에 대한 비밀을 중요시 하였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발달과 인터넷 환경의 변화에 의해 숨겨질 것이 거의 없다. 모방(mimessice)과 재현(representation)의 관계는 현대미술의 키워드 중의 하나이다. 사람이 인식하는 어떤 물건이라는 것은 어디서 본 것이거나 본 것과 유사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사물이다. ‘처음 본 물건인데!’라는 것은 어느 무엇과 비슷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사용이란 경험과 지식과 인식이다. 어떤 경우라도 경험이 없었거나 인식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이다. 보이긴 하되 인식되지 않는다.

경기가 불안하다. 장사가 잘 될 때에는 옆집에서 비슷한 품종의 물건이나 음식을 팔면 시너지(Synergy)효과라 말하지만 장사가 안 될 때에는 손님 뺏어간다고 싸움 일어난다. 미술작품에서 따라쟁이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계승이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따라했다면 자신의 정신과 형식이 지금에 합당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따라쟁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