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박물관에도 남양유업은 있다
[윤태석의 박물관칼럼] 박물관에도 남양유업은 있다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
  • 승인 2013.05.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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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문화학 박사(박물관학·박물관 정책)
남양유업과 배상면주가 사건이 불거지면서 ‘갑(甲)’과 ‘을(乙)’이 우리사회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기세로 볼 때, 연말 올해의 키워드로 당당히 등극할 태세다. 통념상 ‘갑’과 ‘을’은 주종관계를 의미한다.

갑과 을이 박물관ㆍ미술관(이하 박물관)에도 있을까? 물론 있다. 가치는 있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중요 가치재(價値財, Merit goods)가 박물관이다. 한편, 막대한 돈과 노력의 자기희생을 통해 공간과 시설,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력을 고용하여 운영을 한다는 것은 갑이 권위를 확보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박물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공식 역시 이에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박물관도 갑이어야 한다.

박물관의 설립과 운영형태는, 국가나 자치단체가 공적자금과 정책을 통해 안정적으로 설립 운영하는 국공립과 개인의 역량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하는 사립으로 나뉜다. 물론, 사립대학 박물관도 사립의 개념에 속한다고 봐야한다. 말하자면 국공립 남양유업과 사립 남양유업인 격이다. 국공립 남양유업은 적자를 보더라도 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속칭 밀어내기나 끼워 팔기 등의 무리한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사립 남양유업은 자생해야하기 때문에 다르다. 

과연 박물관이 갑의 권한을 갖고 있을까? 이번 유통업체 사건에서 보듯, 힘의 절대 우위에 있는 갑은 그들의 주도하에 을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관계 맺기의 기준은 이윤창출방식에 있으며 목적 역시 동일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립 박물관의 지위는 을도 아닌 병(丙) 쯤 된다. 어쩌면 정(丁)일지도 모른다. 특히, 박물관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뼈 빠지게 고생해서 박물관을 만들어 정부 등 외부의 지원금과 일부 후원 및 기부금, 관람객들이 내는 관람료와 부가적으로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 체험비로 운영해 간다. 

일부 관광특구에 위치한 박물관을 제외하고는(제주도 등 일부관광지의 경우 관광업체가 마케팅, 관람객 유치 등을 맡고 있는 경우도 있어 이들이 대리점 역할을 하고 있음) 남양유업의 대리점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박물관이 고객인 관람객과 직접 상대해야 한다. 고로 관람객이 진정한 갑인 셈이다. 박물관의 입장에서 중앙 및 지방정부는 자유스러울 수 없는 존재이다. 지원금을 받기위해 적지 않는 기획서를 작성해야하고, 심사를 받는다. 지원금이 확정된 후에는 이것저것 자료제출에 응해야하며 평가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사립에게 있어 정부역시 갑이다. 한편, 정부 지원사업의 방향은 향유자 중심에서 기획되고 예산역시 향유자인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조성되는 만큼 정부는 관람객인 갑에게는 다소 밀리는 을쯤 된다. 후원이나 기부금을 내는 단체나 개인역시 갑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일부는 박물관과 이해관계에 있는 경우가 있어 갑이거나 박물관과 동일한 병인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상당수의 사립은 갑이 갖추어야하는 설립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힘없는 병 또는 정의 입장에 있으며, 갑과 을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국공립박물관은 을에 가까운 갑의 입장에 있다. 관람객이나 후원금이 없어도 운영이 되기 때문에 사립의 그것에 비해 권위가 확보된다. 다만 온전한 갑의 입장이 될 수 없는 것은 예산을 지원하는 정부 때문이다. 국공립 남양유업은 안정적인 지원과 정책으로 인해 더 청결한 시설과 다양한 유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유제품을 2008년 5월 1일부터는 무료로 국민들에게 공급(관람료 무료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경주박물관(2008년 대비 2009년 관람객 17만 명 감소), 국립김해박물관(2008년 대비 2009년 관람객: 1만 명 감소), 국립청주박물관(2009년 대비 2010년 관람객: 3천명 감소), 국립대구박물관(2008년 대비 2009년 관람객: 5만 명 감소), 서울역사박물관(2008년 대비 2009년 관람객: 1만 8천 명 감소)의 관람객 추이에서 보 듯 무료화 7년이 된 지금 국민들은 양질의 유제품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박물관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판단하는 지표는 다원화되어있기에 일반 유제품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제품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은 다원화되어있는 판단지표와 상치되는 부분도 있다. 

반면 사립은 열악한 환경에서 질이 담보된 다양한 제품을 갑인 향유자입장에서 지속적으로 생산해야한다. 또한 이 제품을 무료로 공급할 수는 더더욱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제품을 무료로 공급하는 국공립과도 경쟁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립대학 박물관은 권위가 약해진 갑이다. 1982년「대학설치기준령」에서 대학박물관의 설치근거가 삭제되면서 사실상 힘을 잃었다. 상당수의 박물관은 설립당시에 비해 활동이 저하되어있고 설립자를 대신한 관장은 겸직 신분으로 관장은 부업이다. 전문 인력마저 없는 박물관은 개점휴업상태로 놓여있다. 따라서 적지 않는 대학박물관에는 을과 병은 없으며, 생산품도 크게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제정수준의 개정이 기대되는 「박물관법」은 박물관으로 하여금 갑, 을, 병, 정의 틀을 뒤집거나 기존의 틀을 보다 견고히 할 것으로 보이며, 대학박물관도 활성화를 꿈꾸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