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난나 최현주 작가] “공공미술은 미술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인터뷰-난나 최현주 작가] “공공미술은 미술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6.04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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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 대상으로 한 다수 프로젝트 통해 ‘예술 아닌 예술’ 선보여

     예술과 일상으로서의 삶의 관계에 주목하는 작업을 이어온 난나 최현주 작가.

     최 작가는 공공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그에 집중해왔다. 특히 2011년 창동국립창작스튜디오 장기입주 작가로 있을 당시 직접 기획·진행했던 ‘㈜동상이몽-예술에 눈알달기’ 프로젝트는 예술가와 일반인의 가치관의 간극을 첨예화했다. 최 작가는 예술 전반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예술과 현실의 이분법적인 구조를 통해 각각의 특성을 과장되게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예술과는 무관한 불특정 일반인을 동원해 최저임금의 단순노동을 시키고, 노동자는 '한 만큼'의 금액을 받아갔다. 하지만 노동자, 즉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은 어느새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예술창작의 적극적 주체로 변모되며, 오히려 진정한 예술이 탄생되는 과정을 지켜본 그녀는 모순 아닌 모순을 느껴 이를 ‘소가 뒷걸음질 치다 밟은 예술’이라고 상정한다.

     이외에도 그녀는 행인을 대상으로 3분간 모래시계를 손으로 들고 있게 해 움직임의 자유를 제한한 후 1000원을 지급하는 ‘1000원으로 시간 사기’, 지극히 개인적인 소지품인 가방을 다수 공용 물건으로 개념을 뒤바꾼 ‘우리 가방’ 등 실천과 실행이 중심이 되는 공공미술을 선보였다.

     그녀는 사회사업, 교육 혹은 정치 등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더 이상 미술이라고 정의내리기 어려울 정도의 실천들을 행하고 있는 공공미술에 대해 그 형식을 규정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공공미술이 단순히 삶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삶을 구해야한다’라는 한 공공미술 전문가의 말을 빌려, “앞으로는 보다 더 절실하고 다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소재로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작업을 선보일 것”이라며 일상의 삶과 예술의 접목을 보다 더 구체화 시킨다는 복안이다.

     그녀는 지난 4월 사이아트갤러리에서 ‘동상이몽-예술에 눈알달기’ 전시와 함께 공공미술프로젝트 책을 출간했다. 전시에서는 동상이몽 프로젝트의 과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돼 관람객들의 작품 이해를 도왔다.

     신선하고 엉뚱한 기획과 실행을 작품화하는 그녀를 비가 오는 5월 어느 날 광화문 인근의 한 찻집에서 만나 엉뚱 발랄한 그 기저에 깔린 그녀의 예술세계를 들어봤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강사 △서울여대 서양화과·홍대 대학원 미학과·독일 베를린예술대학교 Art in Context 졸업 / 독일 부퍼탈대학교 Communication Design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 및 개인프로젝트 : 2011 <동상이몽>  창동창작스튜디오 / 2009 <인간관계> 청계창작스튜디오갤러리 / 2008 <LEBAP> 경기문화재단 커뮤니티아트500 / 2008 <시간급구> 아트스페이스휴 △2013 사이아트갤러리 NEW DISCOURSE 최우수상 / 2012 경기문화재단 유망작가 예술프로젝트 / 2009 서울문화재단 생활 속의 예술지원 / 200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 지원 외 다수 수상

-본명 앞에 ‘난나’란 별명을 붙여 ‘난나 최현주’란 특이한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난나’는 무슨 뜻인가?
“우리 아이가 가장 처음 한 말이다. ‘엄마’보다도 먼저 한 최초의 말인데, 알고 보니 자동차 사이렌 소리를 가리킨 거였다. ‘난나’라는 말이 생각할수록 너무 재밌어서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경광등이 달린 신발과 직접 내 머리에 경광등을 붙여 늘 급하고 시간 없는 현대인들을 표현했다. 이는 육아도 책임져야하고, 일도 해야 하는 바쁜 내 일상을 뜻함과 동시에 나와 같은 현대인들, 현대 여성들의 처지를 뜻한다. 즉, 내 삶 자체를 작품화 한 것이자, 아이가 내게 새로운 삶을 준 것과도 같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거라고 보면 된다.”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회화와 미학을 전공했다. 철학에 관심이 많아 이론적으로 파고들고 싶어 독일에서 동양미학 박사과정 중 실기로 전향해 공공미술을 시작했다. 그 후 계속 공공미술프로젝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개인적인 미각에 입각하는 예술을 혐오했었다. 내가 만들어놓고 내 틀에 맞게 감상하는 구조가 수직적이라고 느껴졌다. 요즘 현대미술이야 의미가 많이 열려있는 편이지만, 난 보다 더 작가중심에서 벗어나 여러 형태와 상태가 엮어있는 걸 추구하고 싶었다. 때와 장소,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그런 비규정적인 작품을 하고 싶었던 때에 공공미술을 알게 된 거다. 공공미술에는 민주주의적인 정신이 녹아있는 것 같았다. 열려있는 의미를 다 같이 창출하고, 그런 걸 지향하는 공공미술이 ‘딱’ 이었다.(웃음)”

2011년 기획·진행한 프로젝트 ‘㈜동상이몽 : 예술에 눈알 달기’. 당시 프로젝트에 참가한 지역 주민과 참가자가 직접 만든 '결과물'과 함께 기념 촬영.

-2011년 흥미로운 아트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 지역연계 프로젝트 일환으로 운영된 ‘㈜동상이몽 : 예술에 눈알 달기’는 창동지역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이끌고 이에 따른 임금을 받아가는 독특한 형식의 예술프로그램이었다. 설명 부탁한다.
“캔버스에 눈알을 붙이는 행위는 나로부터 비롯된 거다. 한때 생활이 너무도 어려워 집에서 인형 눈알이라도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영감을 받아 하게 된 프로젝트다. 많은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지만, 그때마다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참여’더라. 하지만 그 과정에는 불합리와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참여시키기 위해 억지로 부추긴다든지, 쇼맨십을 보여야한다든지 하면서 결국 작가가 참여자들을 이용하게 되더라는 거다.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된다고나 할까. 이 프로젝트는 그런 내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기획하게 된 거였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등 소수자들은 대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기에 그들에게 예술이란 일종의 일탈과도 같았다. 이 프로젝트에 잠깐이라도 참여하면 그 시간만큼은 소득이 줄어드는 거니 다들 참여를 꺼려하고 불편해하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결과물만큼 돈으로 환산해드린다고 하니 너무들 좋아하셨다.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보다 많은 이들을 위해 유익하게 쓰고 싶다는 생각에 작업을 통한 임금으로 분배한 거다. 나는 예술을 위한 프로젝트를 운영하게 되는 거고, 참가자들은 돈벌이 혹은 심심풀이로 참여하는 거였기에 서로 목적이 다르다고 해 ‘동상이몽’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다. 거기다가 임금에서 오는 오해 소지를 없애고, 명백한 영업행위로 단정 짓기 위해 ‘주식회사’라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참가자들에게 주문한 사항은 무엇인가? 예술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들이 잘 따라주던가?
“전혀 없었다. 주어진 규칙이라고 한다면 캔버스에 눈알 하나 붙이는데 10원이라는 것뿐. 캔버스를 1호부터 100호까지 크기별로 준비해 그 위에 내가 색을 칠하거나 물감을 흘려 자국만 남겨놓기만 했다. 참가자들은 원하는 크기의 캔버스를 직접 택해 가져가고, 여러 종류별로 준비해놓은 눈알도 역시 원하는 만큼 가져갔다. 참가자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자신들의 욕망과 욕구를 스스로 설계하고 모든 걸 자신들이 알아서 했다. 초등학생, 중학생부터 동네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참여해주셨다.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가 정확히 무엇인지 밝히진 않았다. 그저 내가 화가고, 이 결과물들을 나중에 판매할 거라고만 언급했었다. 참가자들은 그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눈알 하나에 10원이란 것에만 집중했다.(웃음) 나중에서야 이게 작품과 관련된 걸 알고는 더 성심성의껏 붙이려고 하기에 오히려 난 하고 싶은 대로 붙이라고 했다.”

-프로젝트의 결과가 궁금하다.
“총 100작품이 나왔으며, 한 분이 여러 작품을 한 경우가 많아서 참가자 수는 대략 60명 정도 된다. 작품 여러 개 하셔서 돈을 제일 많이 받아간 분은 모두 합쳐서 몇 십만 원 정도. 한 작품에서 가장 많이 나온 금액은 8만원 정도였다. 나중에는 다들 더 하고 싶어 했지만 물량이 없어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내 작업실로 직접 찾아와 눈알 더 있는 거 알고 있다며 수색하신 분들도 있었다.(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는 중학생들이었는데, 내가 ‘베스트 동상이몽’이라고 꼽았다. 오로지 돈만 생각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알을 붙였다. 옷을 사기 위해 하는 거였다는데…. 정말 예술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지 않는가.(웃음) 프로젝트 마지막에는 작품 경매와 전시가 이뤄졌다. 경매낙찰가는 5만원에서 10만원 사이를 오갔다. 참가자분이 전시를 직접 관람하기도 하고, 참가자의 지인이 작품을 구입하기도 하더라. 난 예술에 대한 창작과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사람이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 이게 일종의 작가와의 공동 작업이지 않나. 실제로 지역 분들이 와서 작품도 구매해주셔서 참 뿌듯했었다.”

<예술에 눈알 달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본인이 얻은 건 무엇인가?
“원래 난 예술에 대한 반감이 컸었다. 과연 예술이란 게 존재하는지, 본질은 무엇인지 생각이 많았는데, ‘㈜동상이몽 : 예술에 눈알 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예술과는 상관없는 시민 참가자분들로부터 진정한 예술이 나오는 걸 경험했다. 또한 난 절대 요구하지 않았는데 참가자들 스스로 좀 더 예쁘게 붙이기 위해 노력하는 걸 보고 조형적인 아름다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조형적인 활동을 싫어하던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회의가 들기도 했다. 프로젝트 종료 후, 결과물들을 전시하는데, 관람객들 중 일부는 이 모든 작품들이 내가 한 것인 줄 알고 너무 좋다고 말씀해주는데 모순을 느낀 적도 있다. 이 프로젝트의 참가자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참여한 것이지만, 그 결과물을 보는 이들은 예술로 바라보더라. 난 이를 ‘소가 뒷걸음질 치다 밟은 예술’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본인이 정립한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은 규정되면 안 된다. 각자 의견이 다르니 정답 또한 있을 수 없다. 한곳에 머무르며 규정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바뀌어갈 수 있도록 발전이 있어야하며, 비규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공공미술은 그런 상태에 가장 적합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자가 많기 때문에 규정하기도 어렵고, 보다 더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서울시민청에서의 ‘응급보장소통’ 등 퍼포먼스도 하고 있다.
“내 작업은 실천을 빼면 의미가 없다. 그러다보니 실천과 실행이 많아 자연스럽게 퍼포먼스를 많이 하게 되더라. 시민청에서 한 퍼포먼스는 서울시 공무원과 시민과의 소통을 주제로 한 거였는데, 현재 시민청 소리갤러리에 아카이브로 돼 있다. 이외에도 지나가는 행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3분을 천원에 사는 퍼포먼스도 했다. 손으로 모래시계를 들고 있게끔 해 동작을 제한하는 걸 일종의 노동으로 봐 천원을 지급한 거다. 시간은 돈이라는 요즘 세상에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뜻을 담았다. 또 여러 사람이 들 수 있는 가방을 만들기도 했다. 가방이 지극히 개인 소유물이란 개념을 깨는 거였는데, ‘우리’ 가방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가방을 만들어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들어야 하는 모양이었는데, 주변에서는 미아방지용 가방으로 특허를 내란 말을 듣기도 했다. 나중에 100인용 정도로 대규모 작업을 진행해 기네스북에 오를 생각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개인적으로 ‘우리’로 시작하는 국내금융기관의 후원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웃음)”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생 1학년이 됐다. 신경 쓸 게 너무 많아 이번 학기에는 수업을 거의 안 하고 1개만 하고 있다. 공공미술특강을 하고 있는데, 발상과 미술표현을 주제로 예술 경험이 없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향상시켜주는 수업이다. 다양한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작업을 구상 및 표현하게끔 도와주기 위해 이론과 실기를 병행한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알려 달라.
“안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들과 ‘동상이몽’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원래 3년 정도로 장기 프로젝트로 갈 생각이었고, 이번에 보다 더 글로벌하고 규모를 확장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형 눈알은 아니고, 최저임금의 노동집약적인 일이 뭐가 있나 물색 중이다. 아직까지 정해진 건 하나도 없으니, 재료 또한 캔버스에 제한하지 않고 고민하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를 내보이고 싶다.”

-예술가로서 꿈은 무엇인가?
“글로벌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단순히 규모가 크거나 해외에서 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점차 그 반경을 넓혀가며 세상을 알아가고 배움의 과정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