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바그너 200주년 기념 음악회를 보고
[공연리뷰] 바그너 200주년 기념 음악회를 보고
  • 인순환 기자
  • 승인 2013.06.04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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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탄신 20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 지부에서 공연이나 행사가 있는데 한국지부에서도 음악회를 탄신일인 5월22일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바그너 협회 본부는 독일 바이로이트에 있다. 바그너는 극장만 세운것이 아니고 오페라로 국민의 정신까지 일깨워준 위대한 음악가였다. 그련면에서 바그너는 정치인을 능가하는 정치적 영향력과 단순한 작곡가 이상의 사상가적 면모와 학문적 깊이가 대단한 천재였다. 그런 그의 작품이 일부나마 공연이 있다니 매우 기대되었다. 

 한국 바그너 협회의 이번 바그너 작품 공연은 처음이 아니다. 이번 공연과 똑같은 장소에서 협회창립 5주년이 되는 1997년 3월 20일 <니벨룽의 반지>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고 10주년인 2003년 9월8일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챔버 오케스트라를 초청 공연 했었다. 바그너 탄생200주년을 기념하고 협회도 20주년을 맞아 현재 바이로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바그네리안을 초청해 의미 있는 공연을 했다.   
 
  이번 공연의 제1부는 <리엔치>서곡, <탄호이저>서곡, <신들의 황혼>3막, <발퀴레>1막을  지휘자 카이 뢰리히(Kai Röhrig)가 (잘즈부르크 주립 오케스트라 부지위자) 열과 성의를 다해 KBS교항악단과 호흡을 잘 맞추었다. 제2부 발퀴레에서 지글린데 역의 소프라노는 캐서린 네이글스태드 (Catherine Naglestad)는 현재 바그네리안으로 활동하는 명성에 걸 맞는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지그문트역에 테너 마르코 옌취(Marco Jentzsch)는 가사를 외우지 못해 악보 보는데 신경 쓴 탓인지 표정과 동작이 너무 밋밋한 감이 있었다. 훈딩역에 한국의 베이스 하성헌은 기대이상으로 잘해내 앞날이 기대된다. 하지만 바이로트에서 오랜 활동으로 세계적인 성악가 반열에 있는 서울대 연광철 교수가 이 무대에 섰으면 어땠을까

  이 공연을 계기로 바그너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미국의 디즈니랜드가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성 일명 ‘백조의 호수’를 보고 만들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바로 그 성을 지은 루드비히 2세가 없었다면 오늘의 바이로이트는 존재 하지 않을 것이다. 늘 많은 채무에 시달리던 바그너에게 오늘날 가치로 환산 하면 수백억을 무조건적으로 지원 해주어 그 돈을 갖고 세운 것이 바이로이트 극장이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리스트의 딸 코지마가 유부녀였지만 다시 바그너의 부인으로 바그너 사후에도 건물을 잘 마무리를 해서 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그렇게 세워진 바이로이트 극장은 매년 여름 세계인들이 찾는 오페라 축제의 장이다. 안타깝게도 바그너에게 후원을 크게 했던 루드비히는 뮌헨 근교 슈타른베르크 호수에서 익사하는 불행한 죽음으로 인해 막상 바이로이트 극장에 와 푹 빠진 사람은 히틀러 였다. 그런 연유로 이슬라엘 국가에서 바그너 작품은 금지곡인데 2007년 유대인인 바렌 보임이 용감하게 강행하였던 처음 연주가 엄청난 사건이었다. 
 
  바그너의 작품은 오페라로 불리기보다 바그너가 만든 ‘악극’이라는 표현이 그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신조어였다. ‘악극’이라는 드라마적 요소에 대해 바그너 100주년공연에 참여 했던 데임 귀네느 존스(Dame Gwyneth Jones)는 “드라마를 줄거리로 번역하는 일은 바그너만 잘못 알고 있는게 아니라 전세계가 오류에 빠져있다. 심지어 이런것을 잘 알아야하는 언어학자 조차도 말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해 사전적 역사적 심지어 종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라는 것을 특별기고문을 통해 상기시켜주었다.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오페라 한 작품을 3일간 봐야하는 바그너의 ‘반지’는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기록이다.  

 전막이 아니었던 바그너 공연의 아쉬움은 2013년 10월1일 <파르지팔>공연으로 다시만난다. 국립오페라단에서 김의준 단장의 야심작에 연광철 교수가 출연하는 바그너 작품이 예술의 전당 오페라 홀에 올린다.

*한국에서 바그너 협회는...

  한국 바그너 협회는 바그너를 사랑하는 각 분야의 20여 분의 주축 회원들이 20여년 바그너 모임을 이끌어 왔다. 창립 된지 20여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초대회장과 2대 회장이 작고하는 비통한일도 겪었지만 그 와중에도 매년 바그너 장학생 2명을 선발해 바이로이트에 보낸다. 바그너 협회 현재 회장직을 수행하는 조수철 교수는 <베토벤과 바그너> 강연으로 전문가 못지 않게 강연초청을 많이 받는다. 음악저서가 많다 보니 의사로서 책은 왜 안내냐고 하지만 의학 전문서도 18권의 저서가 있다.

  바그너 회장이 서울대 병원의사이다 보니 분당에 개업을 한 임재인 소아 정신과 의사가 총무를 맡고 있다. 독일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임채홍 교수도 매년 한국에서 오는 바그너 매니아들을 케어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그너 축제 오페라 표를 들고 입국하는 수고를 했었다. 작년부터 바이로이트도 IT시대에 맞게 인터넷으로 전 세계 동시에 표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변화가 있어 이제 그 수고는 덜 수 있게 되었다.

  매년 세계지부에 먼저 표를 배분한 후에 나머지의 작은 양으로 독일 자국민에게 표를 판매 하였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독일에서는 10년 넘게 기다려서도 오페라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바그너 회원이 아니면 표를 구할 수가 없어 모임을 만들어서 단체로 바이로이트 축제를 다녀왔었다. 이제는 바그너 회원이 아니어도 인터넷으로 세계의 누구나 개인이 표를 살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사실 천재적인 바그너의 음악은 그렇게 멀게만 느낄 것은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문화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독일의 결혼식 보다 우리나라 결혼식에서 더 많이 연주되는 <로엔그린>작품 속에 ‘결혼행진곡’이 바로 바그너의 곡이기 때문이다.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에서는 처음 공연을 했던 베이스 강병운 교수의 뛰어난 실력 덕분에 한국인 성악가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된 계기가 되었고 2012년에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 선장으로 윤사무엘이 호평을 받은 일 등 점점 많은 스타들이 배출 되고 있다. 세계 어느 지도자가 국민들에 정신을 일깨워주는 애국자를 좋아하지 않겠나 하필이면 당대의 지도자가 히틀러 였다는 걸림돌이 있다 하지만 바그너는 모든 고난을 물리치고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룬 집념과 애국심이 사후 10년 뒤에 더욱 높이 재평가 되어 오늘 날 점점 더 빛이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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