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동안 20위 지킨 한국소설은?
5년 동안 20위 지킨 한국소설은?
  • 이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13.06.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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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 5년… 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 동화 ‘강아지똥’ 등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모두

서점가와 출판가, 문학가가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만들기로 엄청 시끄럽다. ‘사재기 의혹’에 “재수 없어 화장실 청소당번 잘 걸렸다”는 작가 황석영 말처럼 ‘재수 없어’ 대표선수로 휘말린 작가 황석영이 펴낸 <여울물소리>(자음과모음)도 서점가에서 사라졌다. 출판가와 서점가, 유통가, 국회, 정부에서도 사재기를 뿌리 뽑기 위한 그물망을 더욱 촘촘하게 기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출판가와 서점가, 작가가 함께 살 길은 베스트셀러뿐일까. 아니다. 그렇잖아도 뿌리 깊은 출판불황에 ‘책값 할인경쟁’, ‘e북’ 등으로 출판가가 아무리 벼랑 끝에 섰다 해도 벗어나는 길은 따로 있다. 스테디셀러가 그것이다. 베스트셀러에 올라도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라는 공식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가 9일(일) 발표한 ‘2008-2012년 스테디셀러’ 자료에 따르면 시인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시집)와 작가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한국소설), 아동문학가 권정생 <강아지똥>(유아), 동화작가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아동) 등이 분야별 스테디셀러에 올랐다.

(왼쪽부터) <한국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시집은 시인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외에도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을 모은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1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시인 류시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가 지난 5년 동안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3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한 시인 도종환이 그동안 펴낸 아홉 권 시집 가운데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시들을 골라 송필용 화백이 그린 그림을 곁들여 펴낸 시선집이다. 1부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2부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3부 ‘꽃이 피고 저 홀로 지는 일’, 4부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5부 ‘함께 먼길 가자던 그리운 사람’으로 짜여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을 소개하는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는 한국 현대시 100주년을 맞아 지난 2008년 1월 1일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시 100편과 시평, 일러스트를 묶은 시집이다. 제1권에는 정끝별 해설과 권신아 그림이, 제2권에는 문태준 해설과 잠산 그림이 실려 있다.

이 시집에 담긴 애송시 100편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시인 100명에게 각 10편씩 추천을 받은 시편들이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는 시인 김수영 ‘풀’이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인은 서정주였다. 이 시집에는 김소월에서 기형도까지 한국 현대시 100년을 담고 있다고 해도 결코 빈 말이 아니다.

민예원 편집부가 엮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에는 시인 김소월 ‘진달래꽃’, 천상병 ‘귀천’, 김수영 ‘풀’, 이형기 ‘낙화’,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편에, 시 해설과 낱말풀이를 덧붙였다. 파스텔톤인 삽화를 시 곳곳에 넣어 읽는 즐거움도 더했다.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 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뻤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니 종아리 굵어지는 거 보는 재미를 어디다 비교하겄니. (…) 봐라, 너 아니믄 이 서울에 내가 언제 와보겄냐.”-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93~94쪽

교보문고는 이날 시, 아동, 유아뿐만 아니라 한국소설, 외국소설, 인문과학, 정치사회, 교양과학, 외국어, 예술 등 분야별로 5년 동안 줄곧 판매 순위 20위권 안에 든 책도 함께 발표했다. 한국소설은 작가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한 권만 5년 동안 20위권을 지켰다. 외국소설은 기욤 뮈소 <구해줘>,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20위권 안에 들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문장으로 문을 여는 <엄마를 부탁해>는 생일상을 받으러 서울로 올라온 노모를 서울역 구내에서 잃어버린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가족들이 갑자기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내용이다. 이 원고를 탈고한 신경숙은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문과학분야에서는 김혜남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가, 정치사회분야에서는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등 한 권씩만 지난 5년 동안 스테디셀러에 올랐다.

유아와 아동분야에서는 이른 바 ‘현대판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지난 5년 동안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다.

유아분야에서는 아동문학가 권정생 <강아지똥>을 비롯해 백희나 <구름빵>, 앤서니 브라운 <돼지책>과 <우리 아빠가 최고야>, 다다 히로시 '<사과가 쿵> 등 5권이 꾸준한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동분야에서는 동화작가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미카엘 엔데 <마법의 설탕 두 조각>, H.M. 엔첸스베르거 <수학귀신>, 박완서 단편동화 모음집 <자전거 도둑>, 프란치스카 비어만 <책 먹는 여우> 등 5권이 20위권에 올랐다.

교양과학분야에서는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정재승 <과학 콘서트>, 에모토 마사루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칼 세이건 <코스모스>가 지난 5년 동안 20위권 안을 지켰다.

교보문고는 “분야와 상관없이 지난 5년간 종합판매순위 200위권에 안에 든 책을 별도로 조사했다”며 “조사결과 한국소설은 지난 5년 동안 200위권 안에 꾸준히 든 소설이 단 한 권도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종합판매순위 200위 권에 든 소설은 <구해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등 외국소설이었다. 자기계발서적으로는 론다 번 <시크릿>, 이지성 <꿈꾸는 다락방> 등이 올랐다. 이 순위 안에는 <마법천자문'> 16권 등 아동만화와 토익책 등 실용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우리나라 서점가 종합판매순위에서 지난 5년 동안 200위 권 안에 든 우리나라 소설이 한 권도 없었다니… 참 서글픈 일이다. 어떻게 해야 외국소설에 밀려 꼼짝달싹 못하는 우리나라 소설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소설을 쓰는 참으로 똑똑한 우리나라 작가들이여! 창피하다고 쥐구멍을 찾으려 하지 말고 새로운 길을 찾아 웃통을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