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춤의 개척자, 故 한상근 선생의 예술세계를 되새겨보다
한국현대춤의 개척자, 故 한상근 선생의 예술세계를 되새겨보다
  • 소정선 기자
  • 승인 2013.06.20 1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4월에 60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한 무용가 고 한상근 선생.(전 대전시립무용단장) 그의 유고를 접하고 많은 무용계 선 후배들이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었다. 평생을 자유로운 춤꾼으로 살다간 그의 49재가 얼마전 지났다.
49재를 맞아 여러 의미있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이날 행사에 참여한 무용예술인들은 우리나라 현대무용을 개척한 故 한상근 선생님의 유지(遺志)를 받들고 계승하기 위한 모임을 갖고 앞으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키로 뜻을 모았다. 무용예술인들은 이를 위해 우선 故 한상근 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정기 추모공연을 갖는 한편, 故 한상근 안무작품에 대한 춤평론집 발간, 춤사진 전시회, 3부작 故 한상근 무용 다큐멘터리 및 실험영상 제작 등의 추모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故 한상근 선생이 살아 생전 우리 춤 발전에 끼친 영향과 앞으로도 길이 이어질 그의 춤세계를 되짚어 보기로 했다. 한국 현대춤의 개척자로 불리며 평생 춤을 사랑하며 살다간, 그의 예술혼과 업적을 담은 예술 활동, 평론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80년대 한국 창작춤의 남성적 에너지 역할
지역춤 운동 불 지펴, 예술의 대중화 추진

생전의  故 한상근 선생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한용훈)

『적색경보』와 한상근의 등장
1987년 7월, 바탕골예술관에서는 ‘바탕·흐름’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행위예술제(1987년 7월 28일~8월 5일)가 열렸다. 개인 혹은 시대의 아픔(또는, 죽음)이란 주제하에 일명 9일장(葬)이란 형태로 벌어졌던 이 예술제는 미술인·연극인·무용인·국악인들이 각자의 독특한 예술적 개념과 표현방식들이 펼쳐지는 이채로운 공연이었다. 이른바 행위예술(퍼포먼스 아트 또는 퍼포먼스)에 가까운 그들 가운데 가장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것은 한상근의『적색경보』이다. 적색경보는 ‘혼합매체적’ 공연양식을 내보이며 남성적 신체가 중심이 되는 마조키즘적 꿈틀거림과 저항을 추구하면서 오늘의 한국과 한국인이 처해 있는 상황을 춤움직임과 극장적 이미지의 구축으로 암시했다고 평가되었다. 새로운 세계를 준비할 지주로서 처용을 내세운 적색경보... 9일장에서, 비로소 그의 뛰어난 예술적 잠재력과 힘이 폭발되었다. 당시에 김태원 춤비평가는 한상근이라는 새로운 남성무용수를 놀랍게 주목했으며, 한국의 춤비평가들은 그의 등장이 주는 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내다보았다.

연극에서 춤으로 극적 인생전환
한상근(1953~2013)의 춤 여정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보통 전문춤꾼이 걸어온 길과는 사뭇 다른 길이었다. 그는 안양예고에 연극영화에 관심을 두고 진학하였고, 안양예고 졸업 후 바로 ‘극단 광장’에 들어가 배우 겸 스텝생활 그리고 연극에서의 8편의 조연출자로서의 활동 등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었다. 이후 그는 ‘강령탈춤’에 흠뻑 빠져 지내다 1976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바라춤』으로 상을 받으며, 춤에 매료되어 서울시립무용단에서 본격적인 춤꾼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서울시립무용단을 통해 만난 두 스승 문일지와 배정혜를 통해 『학살의 숲』(1982), 『청산에 살리라』(1985),『멩가나무 이야기』(1987), 『떠도는 혼』(1991), 두레』(1993),『서울까치』(1995) 등에 출연하였다.

춤추며 배우는 학구열 불태워, 무용의 세계화 선구적으로 개척
그는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가는 진취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늦깎이 대학생으로서의 한양대 무용학과에 진학하고, 서울시립무용단에 들어가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가 배웠던 강령탈춤을 이수자로서 행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서슴없이 새로운 ‘배움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문예진흥원 춤분야 해외공연연수지원 프로그램에서 서양춤 지원자들로만 국한되었던 지원금을 한국무용의 크나큰 발전을 위해 한국무용인들도 세계를 둘러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 스스로 그 프로그램의 ‘한국무용전공자 1호’로서 채택되어 1991년 프랑스 및 독일로 해외연수를 떠났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후 그가 만든 『비행』(1992)은 『적색경보』와 닮아 있었으나, 몸의 퍼포먼스를 강조했던 『비행』과 달리 작품의 구성에서도 더욱 더 진보적 색채를 보이려 노력하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는 ‘총체예술적 춤’을 선보이며 진정한 한국창작춤의 포스트모더니즘시기의 출발선을 건실히 만들게 되었다. 또 이은 『도라지꽃, 할미꽃』(1994), 『녹두꽃 떨어지면』(1994) 등을 통해서 연극성을 강하게 도입하며 한국춤에 대한 관객의 고정화된 취향을 파괴해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총체적 예술에 서정성과 향토성 가미, 현재 미의 지경 확대
대전시립무용단에서 한상근의 활동은 총체적예술에 서정성을 부여하며, 향토성을 가미하려하였다. 그는 『아리아리아라리오』(2005), 『담백하라』(2006) 등에서 파격과 함께 현대성이 가미된 한국창작춤을 선보였다. 한상근은 점차 자신의 실험적 경향의 춤에 향토성과 서정성을 더불어 춤의 현대적 미적 표현을 넓혀 나가며 더욱 더 다채로운 춤의 세계를 보여주려 하였다.

한상근의 행보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그의 춤의 창작적 기반의 되었던 한국 전통춤의 스승들에 대한 얘기였다. 그는 탈춤을 잘 추는 양소운에 의해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등을 배웠고 김진걸을 통해서는 가야금 산조를, 송암스님을 통해서는 영산재의 바라춤을, 이매방으로부터 승무와 살풀이를 배우며, 이매방의 제자 김정녀를 통해 살풀이를 다시금 또 배웠다고 하였다. 그 외에도 김숙자에게 도살풀이를, 이동안을 통해 태평무를, 최희선에게 달구벌입춤을, 그리고 김덕명에게서 양산사찰학춤을, 또 동래학춤은 이수조교 이성훈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그가 2013년 2월 1부터 21일까지 대전에서 스스로 총예술 기획감독을 한 ‘류(流)와 파(派)의 경계를 떠나 펼치는 35인―명작을 그리다’는 창작춤에 있어서의 전통춤과의 연계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기획은 “춤 인재들의 실력향상을 돕고 한국창작춤의 기초를 만드는 중요한 일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의 초기 예술활동이 시대적 저항정신을 지닌 민중적 예술가였다면,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소외된 사회는 물론 대중과의 소통의 대화를 주선하는 데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며 스스로 이들의 연결자이길 바랬다.

단원들과 리허설에 열중하고 있는 故 한상근 선생 (사진-김종석)


아래는 고 한상근의 돌연한 타계로 그를 추모하면서 한상근의 작품을 평가하는 평론가 김태원 선생(공연과 리뷰 발행인)을 비롯 김채현(한예종 무용원 교수) 등의 글이다.

“한상근의 삶은 1978년 그가 만 25세의 나이의 전문춤꾼으로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한 때부터 줄곧 시대의 주류(主流) 문화에 어떠한 의미 있는 저항, 새로운 춤형식에 대한 탐색과 나름대로의 해답 내놓기, 그리고 한국춤꾼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다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관되었다 할 수 있다. 즉, 저항, 탐색과 도전, 한국춤에 대한 폭넓은 공부가 그의 삶의 전부였다. 그런 가운데 그의 생(生)을 지탱하였던 것은 전 세대와 다른 남성춤예술가라는 자각(自覺), 더불어 자신의 춤예술적 노력과 어떤 성과에 있어서는 늘 인사이드에 속해 있지만 그러나 삶의 태도에 있어서는 자신을 아웃사이드로 보는, 일견 자유로운 ‘견자적(見者的) 태도’였다 하겠다.
 한상근은 1980년대부터 불붙기 시작한 한국창작춤운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남성적 에너지였고, 그는 이 에너지를 죽을 때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했다. 그는 그 춤운동의 미학에 민중적 주제성과 나신(裸身)도 불사 않는 과감한 신체적 표현성, 그리고 부토나 독일의 탄츠테아터로부터 영향 받은 연극성을 가미, 한국창작춤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켰다. 그의 『적색경보』(1987), 『비행』(1992), 『도라지꽃, 할미꽃』(1994), 『녹두꽃이 떨어지며』(1994) 『꽃신』시리즈(1999/2001), 그리고 『우화등선』(2004)은 그의 그런 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또한 2001년 이후 대전시립무용단과 창원시립무용단의 예술감독을 역임하면서 서정성과 향토성이 밴 다양한 춤의 레퍼토리를 개발, 지역춤운동의 불을 지피려 했던 그의 춤예술적 노력과 미완성의 꿈도 우리로서는 높게 평가해야만 한다.”
- 김태원(공연과 리뷰 81호 한상근 특집 1)

춤의 르네상스 시기에 실험정신 체질화해
시대정신 반영, 창작춤 지평 새로 열어

 “1980년대에 서울시립무용단원으로서 한상근은 많은 무대 경험을 축적하면서 자기대로의 춤 양식을 개발하는 데 안무가로서 대단한 열정을 기울였다. 서울시립무용단의 최장기 근속 단원으로서 쌓은 무대 경험, 연극 조연출가로서의 경력, 국내 공연예술 및 해외 현대춤 조류의 섭렵, 다양한 영상 이미지의 분석과 응용은 그에게서 실험 정신이 체질화하도록 하였다.
  그는 현대적 감각의 표현 기법으로 다시 다듬은 춤 움직임을 무대 공연의 다양한 매체와 결합하고 부분적으로 퍼포먼스 형식을 덧붙임으로써 일반적인 창작춤과는 매우 다른 면모의 예술춤을 제시하였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의 전통미와 현대적 양식을 접목해서 한국춤이 현대적(컨템퍼러리) 관점을 내포하도록 하는 작업(1983년의 <무초>, 1987년의 <적색경보>, 1992년의 <비행>, 2001년의 <꽃신> 등)을 지속적으로 행함으로써 무용계뿐만 아니라 공연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한상근은 특히 남성 무용가로서 한국춤이 창작춤의 단계를 거쳐 이미 현대춤의 단계에 진입한 현시점에서 볼 때, 한상근은 한국춤의 현대적 양식화 작업에서 선두주자였던 동시에 현대춤 시대를 앞당겨 제시한 인물로 조명될 필요가 있다.
   덧붙여, 한상근이 타계한 이후 다시 되돌아보면, 그만한 인물이 몇 십년에 한 사람 태어날까 하는 상상이 들 정도여서, 개인적 판단으로는 그 시대 여건과 활동상, 창의력 그리고 헌신적 인품에 비추어 그는 한국 춤계 거목(巨木)의 한 사람이었다고 본다.”
 - 김채현(춤비평가 · 한예종 무용원 교수)

“상념” 죽음의 퍼포먼스, 산사 관객 몰입시켜
   그날 그는 속리산 기슭과 너와집 야외무대 전체를 넓게 이용하여 소위 요즘 말하는 사이트 스페시픽(Site-specific)한 공연을 했다. 종이로 된 수의를 입고 산기슭 숲 속에 숨어 있던 한상근이 도자로 된 유골함을 안고 내려와 춤을 추며 퍼포먼스를 시작하자 공연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일시에 숨을 죽여 천왕봉 일대에 일순 침묵이 흘렀다. 제목은 상념이었지만 누가 보아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동생이 내게 말했다. “형은 춤비평가로 어떤 공연을 좋은 공연이라고 보는지 모르겠으나 내 경험으론 간단해요. 조금 전, 한선생이 공연할 때 보셨지요.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그 20분 간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지 않았습니까? 조용하다는 것은 관객이 몰입되었다는 얘기이고 그런 공연이 좋은 공연이라는 것을 저는 경험으로 알아요.”  한상근의 공연은 그 밤의 하이라이트였고 그 날의 음악회를 격상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공연을 화제로 삼았다. 시골 야외무대에서 이루어진 공연으로는 기대 이상으로 정성이 깃들어진 수준 높은 공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자리를 떠, 홀연히 사라져 더더욱 짙은 여운을 남겼다. 이번의 그의 급작스럽고 안타까운 타계처럼.
- 이만주(춤비평가)

그의 창작춤의 재능은 이미 『무초 Ⅰ·Ⅱ』를 통해 예고된 바 있지만, 그는 『조용한 사람』에서 시대상황으로 빚어지는 고뇌를 실험적으로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였고, 이후 『적색경보』를 통해서는 제도권의 억압을 벗어나 삶의 자유를 찾는 온 몸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이들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두려운 고통의 기억을 직시하고 시대의 위기적 상황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 이찬주(춤이론·이찬주춤자료관 대표)

속리산 천왕봉 아래서 펼쳐진 퍼포먼스 ‘상념’. 마치 자신의 갈 길을 미리 알아차린 것 같은 진한 감동을 남긴 공연 장면. (사진-이만주)

 

 

故 한상근 선생의 주요이력

학력
  ㆍ한양대학교 체육대학 무용과 졸업
  ㆍ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무용교육학과 석사 졸업
  ㆍ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언어문학전공 박사 수료

경력
  ㆍ 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상임안무자 (2001-2006) 
  ㆍ 한남대학교 사회문화과학대학원 겸임교수 (2008-2013, 공연예술학부)
  ㆍ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무용분야 예술감독 
  ㆍ 서울시립무용단 지도단원 (1978~2001)
  ㆍ 자유남성춤작가회 회장 (2009~2013)
  ㆍ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이수자
  ㆍ M극장 레퍼토리 연구원

상훈
  ㆍ 1995년 올해의 젊은예술가상 무용부문 선정 / 문화체육부
  ㆍ 2003년 한국춤비평가회 특별상 수상
  ㆍ 2005년도 한국춤평론가회 공로상 수상
  ㆍ 2006년 한국예술평론가회 무용부문 “최우수예술인상”수상
  ㆍ 2007년 PAF 예술상 수상

언론사 선정
  ㆍ 새 문화기수들 무용부문선정 - 중앙일보(1984)
  ㆍ 예술계 제3세대 선두주자 누구인가 선정 - 객석(1988)
  ㆍ 1988올림픽「이사람」선정 - 조선일보(1988)
  ㆍ 2000년대를 달리는 예술가 7인 선정 - 신동아(1992) 
  ㆍ 2000년대 선주 주자 선정 - 시사저널(1993)
  ㆍ 21세기 선두주자 무용부문 선정 - 문화일보(1996)

2001~2012년 주요 안무 작품
   ㆍ 2001 : 「숨쉬는 조각」「상 실」「여름밤의 꿈」「공기의 꿈」「관 계」
            「화가의 꿈은 사라지고」「갑사로 가는 길」
   ㆍ 2002 : 「할렐루야! 할렐루야! 다시 사신 그리스도」「온 누리에 연꽃향기를」
            「3인3색-부가부가」「뮤직드라마-실크로드」「미궁」「사람」
            「마당을 나온 암탉」「외등」「사랑한다는 것-일곱 가지 빛깔」
   ㆍ 2003 :「별이의 이상한 모험」「뮤직드라마 - 신 실크로드」「Neo 갑사로 가는 길」
   ㆍ 2004 : 「책 먹는 여우」「어화신명」「우화등선(羽化登仙)」
   ㆍ 2006:   「북위 37도 동경125도」 「상념무」 
   ㆍ 2007:   「아리아리아라리요」
   ㆍ 2008:   「이순신과 어란」  
   ㆍ 2009:   「사랑 그 빛깔」「농가월령가 「아씨방 일곱동무」「나의 비망록」
 
주요 안무 작품(1982-1994)
   <무  용>
   ㆍ 공간춤판「무초Ⅰ」공간사랑(1982)
   ㆍ 창작무대「무초Ⅱ」세종문화회관 대강당(1983)
   ㆍ 한상근의 춤「투쟁」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1984)
   ㆍ 청각장애자수화 공연「침묵의 바다」일본 오사카극장(1986)
   ㆍ 바탕골 9일장「적색경보」바탕골 소극장(1987)
   ㆍ 장애자 올림픽「도전과 극복」외 잠실주경기장(1988)
   ㆍ 분수대공연「모두가」분수대 야외무대(1989)
   ㆍ 대중가요와의 만남「사랑아…」(1990)
   ㆍ 젊은작가 7인전「신기루」현대 아트홀(1990)
   ㆍ 「비행」세종문화회관 대강당(1992)
   ㆍ 동학100주년 공연「녹두꽃이…」세종문화회관 대강당(1994)
   ㆍ 서울시립창단 20주년기념「도라지꽃 할미꽃」세종문화회관 소강당(1994)
  <뮤지컬> : 한 네, 우리는 새우젓이요, 김대건 신부, 백범 김구, 들플
  <오페라> : 오데로, 헨젤과 그레텔, 유관순, 심청, 봄봄
  <연  극> : 안중근, 갈릴레이, 망이 망소이
  <창  극> : 수궁가

논문 및 저서
   ㆍ세종문화회관 전속단체 발전방안 모색-시립무용단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1999)
   ㆍ공연예술 (공저, 2007, 도서출판 글누리)

 

<자료제공 = 자유 남성 춤 작가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