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디자인 개념에서 본 예술과 과학
[특별기고] 디자인 개념에서 본 예술과 과학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3.06.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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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로 본 빛깔문화

<지난호에 이어>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전 서울대 초대 미술관장/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
우리는 오래전부터 자연계의 빛깔은 단순한 가시적(可視的)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자연의 순리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드렸고 공간과 시간을 빛깔과 하나의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삼국시대 이미 시간과 공간의 복합적이며 종합적인 세계관을 형성했고 토지에 대한 방위(方位)와 절기(節期)에 대한 시간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빛깔에 순응(順應)하며 일치를 이루려는 토속신앙(土俗信仰)이 싹터왔다.

인간의 길흉(吉凶)등 운세가 공간과 시간의 연계성 속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方位의 吉凶은 한 해 동안 北東方의 鬼門과 같이 固定位가 있고 수시로 바뀌는 歲德→五方神→五方將軍→五方色位의 有德門이 있다. 民俗에서 四神은 東(左)靑龍, 西(右)白虎, 南朱雀, 北玄武의 方位神으로 靑帝, 白帝, 赤帝, 黑帝라고 하여, 四方將軍이라고도 한다. 四方將軍의 部下로 神將을 여럿 세우기도 한다. 여기에 中央의 黃帝를 主人으로 상징하여 方位將軍이라 하며 이들을 상징하는 色을 五方色이라고 한다.

색이름과 상징성(象徵性)

① 靑(파랑) …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새싹으로 움트는 ‘풀’잎의 ‘ㅍ’자에서 만들어진 순수한 한글 색이름
   상징 : 東쪽, 梅花, 春, 三, 木, 管樂器, 仁, 샛바람 등등 …

② 白(하양) … 밝은 빛의 근원지인 하늘을 상징하여 ‘ㅎ’자를 근거로 색이름이 만들어졌다. 태양을 상징하던 ‘하’는 日本의 ‘히노’ ‘히로’ 등에 남아 있음을 본다.
    상징 : 西쪽, 菊花, 秋, 九, 金, 金石打樂器, 義, 하늬바람 등등 …

③ 朱(赤, 빨강) … 적도 북반부 온대지방의 위치에서 남쪽으로 뜨거운 태양이 비치면서 곡식이 있으니 열을 상징하는 ‘불’의 ‘ㅂ’자에서 밝다, 붉다와 같이 이름지어진 것이다.
    상징 : 南쪽, 蘭草, 夏, 六, 絲, 絃樂器, 禮, 맞바람 등등 …

④ 玄(黑, 까망) … 北쪽은 춥고 햇볕이 닿지 않아 늘 어둡고 끝이 없어 보이지를 않으나 始와 終의 頂點을 상징하며 生死의 主管處로서 어둠을 목재가 탈 때 생기는 ‘꺼름’ 검정, 곰, 캄캄 등의 ‘ㄱ’자로 색이름을 만들었다. 日本의 ‘구로’ 등에 남아 있음을 본다.
    상징 : 北쪽, 竹, 冬, 十二, 革, 가죽타악기, 북소리, 智, 됫바람 등등 …

⑤ 黃(노랑) … 농경민족의 뿌리는 땅의 소중함과 벼농사의 풍년수확에 있다.  ‘天은 玄하고 地는 黃하다’(千字文)라는 말처럼 땅을 상징하며, 벼가 익은 대지를 상징하여 ‘놋쇠’의 ‘ㄴ’자에서 노랑의 이름이 비롯된다. 노란 볏단을 쌓은 것을 노적가래라고 하며 영토의 주인, 곧 王을 의미한다.
    상징 : 中央, 松, 無季, 無數, 五音, 黃金, 王位, 信, 無風 …

以上에서 보듯이 한국 民俗에는 공간과 시간의 종합적 一元사상과 복합적인 상징 연계성을 모든 사물에 부여한다. 이것은 자연에 순응하여 하나가 되고자 하는 순명의 관용철학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현대적 색상원리로 보아도 五方色은 無彩色의 黑·白과 有彩色의 靑·黃·赤이 모두 완벽하게 갖추어진 완전한 분류방법이며 공간적 방위 또한 五方位는 360°완전한 方位개념이다.

우리 말에서 ‘色’ 字나 ‘빛’ 字를 쓰지 않고 순수한 낱말로 명사와 형용사와 부사로 변용되는 완벽한 빛깔의 이름은 까망, 하양, 빨강, 파랑, 노랑 뿐이다.위에 열거한 다섯가지 색명 이외에는 명사와 형용사와 부사로 변용 될 수 없다. 이 말은 여기 다섯가지 색명이 예컨대 ‘빨강은 정열을 암시한다’와 같이 명사로 독립하여 주어와 술어로 쓰일 수있고, ‘빨간 고추는 맵다’처럼 형용사로 명사를 꾸미기도하며, ‘사과가 빨갛게 익었다’와 같이 동사를 수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섯가지 완벽한 색명은 공교롭게도 5방색일 뿐아니라 현대색채론에서 말하는 흑백의 무채색과 삼원색인 황,적,청의 유채색이다.

현상계에는 무한정의 색이 존재하지만 그 많고 많은 색명 중에 유채색의 삼원색과 무채색의 까망, 하양만을 완벽하게 고유명사로 또 형용사와 부사로 변용되게 만들어 쓰고 있은 민족은 지구상에 우리뿐이다. 이렇게 정제되어 이름지어놓은 색명이 신통하게도 과학적으로 분류된 현대 색채론(色彩論)과 일치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밤하늘에 별을 보고 산천의 빛깔이  사계를 따라 변화하는 이치를 깨달으며 일지기 색채학(色彩學)에 통달했었다는 얘기다. 누가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하여 색상에 아둔하다 하였는가. 우리가 지닌 빛깔 문화의 예술성은 매우 독창적이며 과학적이다. 오방색 이외의 모든 색명에는 배추빛, 하늘색 등의 어미를 달아 사용하고 불그스럼, 불그덱덱, 불그죽죽, 볼그레, 불그레, 발그레, 벌겋게, 빨갛게 등등 한 가지 색상을 두고 채도, 명도, 순도는 물론 온도, 질감, 양감, 감정, 신선도까지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음에 놀란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