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보존에서 보관으로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보존에서 보관으로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3.06.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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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시골에 계신 칠순 노모께서는 여전히 아날로그 카메라를 좋아하신다. 20년 전 즈음에 자동카메라라고 해서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은 구입해서 선물해 드렸다. 필름이 불편하긴 하지만 여행을 다니실 때면 지금도 가방에 챙기는 품목 중 하나다. 24장짜리 혹은 36장 필름을 넣고 꼭 그만큼만 쓰신다. 다녀오신 후에는 필름에 등장된 인원수만큼 인화하여 친구분께 돌린다. 젊은 친구분의 디지털 카메라 덕에 예전같이 빛나지는 않지만 쓰지 않더라도 가방에는 늘 자리한다. 근자에도 슬라이드 필름을 고수하는 분들이 있다. 디지털이미지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그냥 무작정 고집하는 인상이 강하다. 인쇄물을 디자인하는 기획사에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예전에야 충무로에 스캐닝하는 곳이 많았다지만 지금은 거의 사양되고 있다. 최근 주변을 살펴보면 아날로그 카메라가 조금씩 등장한다. 셔터를 무한정 누른 다음 골라내는 이미지보다 집중적으로 연출하는 상태를 더 즐긴다.

미술시장도 디지털 덕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이미지의 무한생산이 가능해진 이후에는 보존에서 보관으로 바뀌었다. 컴퓨터 저장장치도 스스로 보존하는 다양한 방법에서 클라우드 서비스로 인한 보관형태로 발전했다.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정된 용량의 저장장치에 의해 꼭 필요한 정보를 보존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이든 보관한다. 저장할 수 있는 창고가 무한 확장되어 있다.

작품제작환경도 보관에 의해 달라졌다. 어떤 사물을 보고 재현하는 능력의 탁월성이 빛을 잃어간다. 흑백에서 칼라로 전환되는 40여년 전에도 충격을 받았던 미술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한 현 시점 또한 주춤거리고 있다. <보존>에서 <보관>으로 바뀌는 환경에 미술가들의 고충이 강화되었다. 무엇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표현하는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그런대로 살만했다. 그러나 컴퓨터그래픽과 가상공간이 자리하는 현시점에서 미술은 무엇을 해야할지 방황하고 있다. 미술가가 그리는 법을 상실했다. 무엇이든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재료에 대한 속박이 더욱 심해졌다. 컴퓨터 자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문제는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예술이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와는 다르다.

on-line으로는 미술품 거래가 힘들 것 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미술품은 직접 보고 구매하는 품목이란 고정개념에서 작가 브랜드를 믿는 범위에서 거래가 가능해 졌다. 작품 이미지 마케팅에서 작가브랜드 마케팅이 강화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산 그림 작가, 하늘 그림 작가라는 이미지 마케팅이 거의 안 먹힌다. 다양한 이미지 확산과 함께 작가의 고정된 브랜드가 공존되어야 하는 시대다. 작가는 예술품을 생산하는 동시에 예술품을 보관하는 브랜드로의 변화다. 갤러리는 오래전부터 미술가의 작품이나 이미지를 보관, 매매하는 장소였었다. 그러나 과거의 갤러리와 같은 역할을 SNS와 클라우드 서비스가 대행하고 있다. 어찌보면 오피스 갤러리가 확산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느껴진다.

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보관하는 명분과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보존하는 수단으로 미술작품을 생산해 내었다면 지금은 예술가 자신이 정신을 보존하는 하나의 작품처럼 취급 되고 있다. 미술가 자체가 미술작품의 일부가 된다. 미술가의 정신이나 사상이 그의 미술작품에 보관되어 이미지 확산이 일어난다. 온라인이 무섭긴 무섭다. 개인 대 개인의 상호 연락과 친분관계에 의해 미술품이 소비되고 있다. 컴퓨터가 미술품을 보존하고, 인터넷이 갤러리처럼 작품을 보관하는 시대다. 그러면서 미술은 점점 더 큰 정신을 요구한다. 이러다 미술가는 사상가요 득도를 위한 고행승이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 호부터 '박정수의 뒷방이야기'가 '박정수의 미술시장이야기'로 바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