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이는 북촌… 보전 vs 보완 논란 중심
들썩이는 북촌… 보전 vs 보완 논란 중심
  • 소정선 기자
  • 승인 2013.07.11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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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관 담장·화동길… 주민들, 사안따라 '이중 잣대' 눈길

서울시의 유서깊은 전통 문화마을 북촌 주변이 최근 갈등과 논란으로 들썩이고 있다. 담장의 존치와 도로의 높낮이, 화장실 설치 등 얼핏 자질구레해 보이는 문제를 두고 문화계, 지자체와 시민들간의 다툼이 한창이다.

그러나 문화재보전과 주민들의 생활권 등 각계의 이해와 명분이 팽팽하게 대립,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어서 협력과 지혜가 요구된다.

'담 없는 미술관'과 '문화재 보존', '원형 그대로'란 문화재 보존 원칙과 '불편하다'는 주민 요구 사이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 담장, 세울까? 없앨까?

서울시내의 “담장” 하나가 문화계는 물론 일반시민들의 뜨거운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문제의 주인공은 소격동에 소재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의 담장. 현재 공정율이 90%에 이르러 완공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조선시대 유적이니 마땅히 복원해야한다"는 역사문화계의 입장과 "기무사 담장이 무슨 문화재냐? 상권·동네 접근성 침해 심각하다. 주민들 생활권도 고려하라"는 인근 주민들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인 미술관측은 중재안으로 "半만 설치"하겠다는 안을 내놓아 논란은 가열되고 있다. 과연 이 담장이 어떤 담장이길래 수년간 논란의 현장이 되고 있는가.

독재정권시절에는 보안사, 기무사로 불려진 군대의 정보기관이 있던 자리가 사실은 조선시대 왕가의 각종유물을 보존해 놓은 종친부였고 그 건물의 담장이 문화재로서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조선왕실 각종 예우업무담당한 종친부(宗親府)

종친부란 조선시대 정일품아문(正一品衙門)으로 역대 국왕의 계보(系譜)와 초상화(肖像畵)를 보관하고, 국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고 선원제파(璿源諸派)를 감독하던 관서이다. 국초에 설치한 제군부(諸君府)를 1430년(세종 12) 11월에 종친부로 개칭하였다. 1864년(고종 1)에 종부시(宗簿寺)를 합쳐 그 사무를 맡아보았고, 1894년(고종 31)에 종정부(宗正府)로 개편되었다.

쉽게 말해 종친부는 조선 초기 왕실 종친들을 예우하고자 설치했던 것으로, 조선 왕조의 성리학적 질서를 보여주는 역사적 기관이다. 종친부 건물은 고종 즉위 직후 대원군의 주도로 중건(重建)됐으며, 이후 이 자리에 기무사(보안사령부)가 들어섰으며 신군부 집권 당시 보안사령부가 테니스장을 지으려고 지금의 정독도서관 경내로 옮겼다.

MB의 전격선언으로 신,구 문화계의 세력 다툼

문제의 발단은 기무사가 이전하면서 이 자리에 현대 미술관을 짓기로 전격결정한데서 시작된다. 지난 2009 문화예술인 신년 인사회가 1월15일 기무사강당에서 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해 “이곳 기무사 부지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분관으로 조성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1995년 종로구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이 자리에 미술관을 만들겠다’고 공약했었는데, 그때는 힘이 없었다. 이제는 대통령이 돼 할 힘이 생겼다고 생각돼 한번 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화예술을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는 MB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을 전후해 종친부의 각종 유적이 발굴되고 역사학계와 옛 문화재 보존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친부 복원을 주장하면서 이 자리에 미술관을 건립하려던 미술계와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와 옛날 문화 세력간의 세력다툼이라고 불릴 만했다. 이른바 현대 미술계가 발끈하며 종친부 복원 계획 철회를 주장한 것이다.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모임'은 2010년 6월 13일 성명을 내고 "종친부 건물을 복원하게 되면 미술관의 연건평이 계획대비 약 3분의 1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이런 협소한 부지에 문화예술계와 온 국민이 염원하던 국격을 상징하는 21세기 문화 한국의 랜드마크를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임은 이어 종친부 복원 계획이 "미술계와 문화재 인사들 간 분열과 논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며 종친부 복원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타협
종친부 복원, 담장부분..갈등의 단초로 부상

이러한 갈등은 종로 기무사부지를 종친부 복원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동시에 추진하는 타협안이 2011년 1월 제시되면서 봉합된다.

·이른바 ‘전통 + 현대 문화공간’ 이 어우러지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당시의 서울시의 계획안에 따르면 전체 2만7303㎡의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조감도)이 건립된다. 또 지난 1982년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으로 이전했던 종친부(宗親府) 건물이 부지 내 종친부 터에 재이전돼 복원된다. 기무사 본관 건물도 보존된다.

시는 이 지역에 용적률 73.88%를 적용, 높이 12m(3층) 이하의 건물 여러개가 연결된 형태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2012년까지 짓기로 했다. 또 종친부 건물이 복원되고, 기무사 본관도 그대로 유지됐다.

시는 조선시대(종친부) , 근대(기무사 본관), 현대(미술관) 건물의 조화를 통해 이 지역을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통하고 공감하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시는 부지 내에 규장각 터 표석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계획안의 시행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서울시의 현대미술관 건립설계안이 문화재위원회에서 보류되면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문제의 담장 부분이 여기서 등장한다. 문화재청 문화재위 사적분과는 담장을 없애겠다는 현대미술관의 설계안에 대해 "담장 기초부는 원래의 종친부 담장이므로 없애서는 안 된다"면서 심의를 보류해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현대미술관과 문화재관계자들 사이에서 갈등과 타협이 이뤄지면서 미술관 건립은 다소 지연되면서도 계속 진행되었다. 담장 규모는 종친부 동측 율곡로 방향으로 길이 140m, 북측 북촌로 방향 길이 110m. 조선시대에 2.5~2.8m 높이로 지어졌던 이 담장은 1971년 기무사가 들어서면서 3.8m 높이까지 올라갔고, 2010년 7월 서울관 건립이 시작되며 철거됐다.

그런데 마지막 현안인 담장을 두고 높이 문제로 점화되면서 신.구문화계의 갈등이 주민과 문화계사이의 현안으로 옮겨간 것이다. 주민측은 종친부가 복원되는 마당에 담장 정도는 주민생활 편의 확보차원에서 낮추거나 없애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역사 문화계측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므로 절대 양보 불가 입장이다. 샌드위치 신세가 된 미술관측도 난감하다.

서울관 기본 콘셉트가 '담장 없는 미술관'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측은 시민들의 편리한 문화 향수를 위해 뉴욕 MoMA, 파리 퐁피두, 런던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을 모델로 했다. 실제로 삼청로에서 보이는 미술관 전면은 담이 없이 열린 구조다. 결국 문화유산부지에 미술관을 짓다보니 발생한 해프닝이라 할 수도 있다.

경복궁 담장도 헐건가?

역사문화계는 “경복궁 동편의 역대 관청 건물지에 속해 있는 종친부는 조선왕조 역대 모든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어진(왕의 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의 봉작승습.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곳으로서 역사적으로나 사료적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기관이자 유적”으로 되도록 원형에 가깝게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은 197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9호로 지정되었고 , 종친부 우물 역시 2002년에 서울 특별시 문화재 자료 제 12호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재 가치가 높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기본설계를 마치고 2012년말까지 완공계획을 갖고 있는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분관 신축조감도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잇는 종친부 동.북쪽 담장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현재 서울에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4대궁 및 종묘를 제외하면 조선왕조 시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고건물의 담장유적은 북촌 안동별궁길의 안동별궁 서,북족 담장과 종친부길의 동북쪽 담장이 대표적이다.

역사 문화계는 “사정이 이러한데도 종친부 견물의 이전및 원형복원을 진행하면서 종친부 담장을 모두 복원하지는 못할 망정 존치조차 하지 않는 행태는 심각하다”면서 “사적 제 117호인 경복궁에 대해 그 담장이 사적 117호에 제외되지 않는다. 중국의 경우에는 터조차도 유적으로 지정 관리하는 실정”이라고 강조한다.

종친부담장은 높이 약 2.6미터, 동쪽이 64미처, 북쪽이 131.6미터인 한옥 담장유적이며 한옥으로 대표되는 북촌의 정체성도 대변하고 있다. 그래서 북촌을 방문하는 내․외국인은 안동별궁길, 감로당길과 함께 종친부길 또한 즐겨찾는다.

덕수궁이 내․외국인에게 널리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덕수궁 돌담길에 있다. 소실된 서,남쪽 담장도 복원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열린 미술관'을 핑계로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 담장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경복궁 담장을 헐고 '열린 경복궁'이라 하는 것과 똑같다"면서 ”외국인들이 자주 왕래하는 서울시내 유적지에 시설을 추가하지는 못할망정 있는 유적마저 없애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황평우 소장 등 '문화재 지킴이'들은 "종친부 담장 원형이 많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으므로 우리 전통 담장 높이인 2.5~2.8m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의 생활편의가 우선

주민들의 입장은 간단하다. 현대 미술관이 서있는 상황에서 굳이 담을 높이 쌓을 이유가 없고 이제는 행정관서도 주민생활을 배려하는 하는 행정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한 주민은 "좁은 길에 담을 높이 쌓으면, 우리 답답해서 못 삽니다. 이때까지 기무사 있을 때는 진짜 일반인이 대항할 수 없으니까 참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동안 억압됐던 권리를 찾을 때"라고 목청을 높였다.

주민들은 지난 4월 열린 공청회에서 △구청은 왜 높은 담장을 요구하는가? 개방감을 위해서라도 담장을 낮추라. △1.5미터 이하로 담장의 높이를 낮추어야 한다. △문화재를 일반적으로 원형 복구 하는 것에 동의하나 담자체에는 동의 하지 않는다. △율곡로쪽은 너무 좁다.

이곳도 개방감을 높히기 위해 확장하라. 결론적으로 “기존의 기무사 담장이 너무 높아 위화감을 느껴왔다, 북촌로쪽의 담장은 없애 개방감을 느끼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주민의견에 찬성하는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담이 없는 '열린 미술관'이 돼야 한다. 도심의 랜드마크인 미술관을 담장으로 가린다면 짚신 신고 양복 입은 격이다”라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 담장 존치 문제로 열린 주민 공청회모습

계속되는 갈등... 표류하는 국책 사업
세차례 설명회서도 타협 못찾아. 문화재위원회 결정에도 갈등은 지속

이러한 대립이 계속되면서 무려 세 차례나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그러나 아직도 타협점이 나오지 않고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심의에서 "율곡로 쪽 담을 2.5m 높이로 복원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중재안으로 “율곡로 쪽 담은 문화재위원회 결정대로 복원하되, 북촌로 쪽 담은 양 끄트머리 일부만 복원하고 나머지는 열어두는”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담 없는 미술관'과 '문화재 보존', "'원형 그대로'란 문화재 보존 원칙과 '불편하다'는 주민 요구 사이에서 국책 사업은 주춤거리고 있다.

주민들은 북촌 내의 다른 사업에는 이와는 반대의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또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로구가 정독도서관 일부 부지에 화장실을 비롯한 관광객편의시설을 설치하려 하자 '주민의 동의 없이 강행하려 한다'며 지역 주민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평탄화? 완만화?

종로구는 정독도서관 내 일부 부지에 화장실과 관광안내소 등이 포함된 297㎡ 규모의 단층 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이 건물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설은 화장실이다. 99㎡ 규모로 한번에 6명이 사용할 수 있는 여성·남성화장실이 조성될 계획이다. 그 외 갤러리와 관광안내소, 주민 쉼터 등이 들어서게 된다.

좌측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정독도서관 관광안내소(화장실과 안내소 등이 포함된 단층건물 조성 예정), 화동 고갯길

그러나 지역 주민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설치를 반대하는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화동고갯길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실 건립 계획을 모르는 주민이 많다"며 "화장실이 없어 불편함을 호소하는 관광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북촌한옥마을은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전통문화와 주거시설을 지켜왔기에 오늘의 관광명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구의 한 관계자는 “관광객의 불편이 많고 화장실 부족으로 노상방뇨 한다는 민원이 있어 정독도서관과 협의해 안내소, 쉼터, 화장실을 겸한 복합시설을 계획하게 됐다”면서 “시설부지가 기존 건물이 있던 곳으로 북촌의 문화재 원형보존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의 20년된 화장실 옹벽을 깎아 계단식 통로도 만들어 관광객은 물론 주민들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설계했다”면서 “설계비를 포함한 공사비는 9억9천여만원으로 호화화장실이란 표현은 지나치다”고 밝혔다. 구청측은 오히려 이 시설로 인해 시민의 편의는 물론 북촌의 관광객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

가회동 재동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정독도서관 사이의 화동고갯길을 평탄화하려던 계획은 구청측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중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재동초등학교 4거리에서 올라오다보면 언덕이 너무 높아 언덕너머의 시야확보가 전혀 되지 않아 상당히 위험을 느꼈다고 하는 민원이 많았다. 4차례에 걸친 민원이 있었지만 그동안 북촌을 손대지 않겠다는 구청의 의지로 번번이 반려했었다.

그러나 주민 참여 예산이 편성돼 더 이상 반려할 상황이 아니다. 공사를 하더라도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언덕자체를 없애 평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야확보를 위해 완만하게 낮춘다는 것이다. 최고 많이 갂는 곳이 98cm~5.1m가 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 이곳 공사를 위해 주민참여예산으로 3억6천만원이 확보돼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주민들이 반대의견을 보여 보류중이며 의견 수렴 후 결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여기에 더해 재동초등학교 주차장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일부주민들이 관광버스주차장으로 사용토록 한다는 것에 반발하고 나섰다.

종로구는 재동초등학교 주차장 문제는 주민들이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관광버스를 위한 것도 관광객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것.

관광버스 주차장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계획조차 없었던 일로 지하에 학교 체육관을 짓고 북촌주민들의 주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학교 정문과는 동떨어진 곳에 출입구를 내서 학생들의 등하교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제동초등학교 주차장은 서울시가 이미 10년 전에 약속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김영종 구청장은 “이런 여러 민원들에 의해 공사를 결정했지만 북촌문화 보존을 위해 주민들과 충분히 협의되지 않고는 공사하지 않겠다”며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