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발리,다신(多神)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영험한 성지
[여행칼럼] 발리,다신(多神)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영험한 성지
  •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
  • 승인 2013.07.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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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
몰려들어오는 이슬람 세력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사람들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의 편협성을 두려워했다. 유일하다는 것은 마치 좁은 통로와 같아서 모든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 그 통로로만 지나갈 것을 강요하는 것 같았다.유일신을 거부하면 그 결과는 참혹했다. 큰 섬을 빼앗기고 도망쳐 온 작은 섬 발리(Bali).이 섬에서 사람들은 2만개가 넘는 크고 작은 힌두 사원을 건설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을 넘어서는 미소가 풍겼다.

특정한 도그마(dogma)나 교리가 없는 힌두교는 수억 개에 달하는 신을 믿는다. 열린 마음으로 신과 교류하고 다른 종교의 견해도 인정한다. 다른 것을 응징하는 종교와 다른 것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종교는 양립할 수 있을까. 전 국민의 9할 가까이가 이슬람교를 믿는 인도네시아지만 발리에서는 9할이 넘는 사람들이 힌두교를 믿는다. 한 때 나에겐 이것이 불가사의였다. 자연환경이 만들어 내는 물리적 불가사의보다 이 곳 발리에서 번성하고 있는 종교적 불가사의가 내겐 더 큰 것이었다.

발리에서 어머니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브사키 사원(Pura Besaki)의 계단을 올랐다. 기독교 모태신앙으로 무장된 내가 이교도(異敎徒)의 홀림에 빠진 느낌이 몰려왔다. 말로만 듣던 시바신과 비슈누신이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다신의 몽환적인 메시지는 이방인인 나에게 엽서를 팔려고 달려드는 현지 상인의 간절한 목소리마저 잠재워 버렸다. 신성한 아궁(Agung)산 중턱에 있는 사원은 파격적인 자태를 자아냈다. 경건함도 아닌, 웅장함도 아닌, 그렇다고 화려함도 아닌 디자인. 현지의 토속 신앙과 힌두교가 뒤얽혀 버린 어지러운 이야기를 내재하고 있었다. 내가 인도네시아를 이루는 섬 중의 하나인 발리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발리가 내 안에 있는 지 헛갈렸다. 섬 남부에 있는 울루와뚜 절벽사원에서도 현지인 친구가 관광객들의 물건을 날치기 해가는‘강도 원숭이’들을 조심하라는‘원숭이 주의보’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은 계속 이어졌다.

브사키 사원(Pura Besaki)

꾸따와 스미냑 거리로 유명한 발리의 시내는 각국에서 온 신혼여행 커플들로 채워진다. 가끔씩 들리는 한국말이 반갑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풀 빌라(Pool Villa)가 곳곳에 산재해있는 발리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글자 그대로 수영복 패션이다. 인도네시아 음식과 세계 각국의 음식이 혼재해있는 모양새도 힌두교가 추구하는 이상처럼 다가온다. 서양식 나이트 클럽에서 들려오는 인공적인 전자 음색마저 이질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열대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발리에서 2002년에 벌어진 폭탄 테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경악했지만 그 아픔마저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열심히 하던 일이 갑자기 없어져 갈 곳을 잃은 것과 같은 공허함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발리 힌두 사원 여행을 권한다. 지친 몸은 휴양의 의미를 깨달을 것이고 비어가는 정신은 다른 일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으로 채워질 것이다. 다신이 주는 행복의 종류만큼 다양한 생각에 사로잡힐 것이다. 주류에 묻힌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은 비주류의 당당함을 느낄 것이다. 1할이 만들어 내는 행복이 9할이 만들어 내는 행복의 합계보다 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다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의 영험한 성지 발리를 내가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