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선친 우현의 유업을 살다간, 고병복 선생의 영전에서
[특별기고] 선친 우현의 유업을 살다간, 고병복 선생의 영전에서
  •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 승인 2013.07.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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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폭염 속, 한해의 정 가운데 7월 월단(月旦). 고병복선생의 작고소식이 전해졌다. 아버지 우현 고유섭(1905~44)선생의 유업을 이어가는데 온전히 헌신한 삶이었기에 그녀의 죽음은 더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주지하다시피 우현선생은 암울했던 시기에 태어나 민족문화유산을 발굴·연구하여 그 가치 정립을 통해 민족정기를 되살리려는데 일생을 바치신 민족의 선각자요 1세대 미술사학자이셨다. 

그분의 족적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문화융성의 시대로 발돋움하는데 초석이 되고 있으며, 연구 성과는 지금까지도 후학들에게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 조국광복도 못 보고 요절하신 선생의 한이 얼마나 크셨을까? 연구를 가장 왕성하게 할 한창의 나이에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요절한 유업은 또 얼마나 막중한 것이었을까? 선생의 유업은 유족을 넘어 우리 모두가 이어나아가야 할 소명이었다는 것을 고 선생의 영전에서 새삼 느낀다. 

아마도 고 선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의 과업을 등에 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선친의 논저를 묶은 『한국미술문화사논총』, 『고유섭전집』, 『한국건축미술사 초고』, 『구수한 큰맛』 등도 그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고인의 마지막 유업이 된 『우현 고유섭 전집』전10권 (열화당) 역시 그녀의 헌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지난 5월 11일 강릉 선교장에서 가진 출판기념회에는 병중이라 고인은 참석하지 못해 뵐 수 없었으며,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병석에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자리를 빌어 열화당 이기웅 대표께 감사를 드린다.  

▲ 민학회 박경리문학공원 답사(2011.11) 시 - 사진중앙(박경리선생 동상 좌측)이 고인의 모습

한편 2005년에 고인은 인천문화재단에 선친의 아호를 딴 우현상(又玄賞)을 제정하는데도 기여하여 미술사연구자들에게 선친의 정신을 면면이 잇게 했다.

고 선생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초 국립중앙박물관에 ‘박우(博友)학습회’를 결성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학습 탐구, 문화유적 답사 등을 주도하였으며, 국립중앙박물관회 이사로도 활약했다. 또한 서울역사박물관 등에 개인적으로 수집한 유물을 수차 기증한 바도 있으며, 민학회(民學會) 회원으로 기층문화(基層文化)연구에도 열정을 보여주었다.

1998년, 한국박물관협회에서 제정한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1회 수상자로 선정된 우현선생을 대신해 유족대표로 고인께 상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박물관협회에서는 큰 영광과 보람이었다. 우현선생과 고 선생의 유업이 영전에서 새삼 새롭다. 고병복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