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 알혼섬에서의 일주일_작가들과의 예술여행
바이칼 호수 알혼섬에서의 일주일_작가들과의 예술여행
  • 글, 사진 이은주(갤러리 정미소 디렉터)
  • 승인 2013.07.25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민족 샤머니즘 공간에서 찾는 예술의 근원적 성찰 및 회복
                                                                                                                                           

예술가들의 예술의 근원지점을 반성적 태도로 되돌아보게 되게 한다는 ‘무빙(無憑)타임라인’ 이 지난 달 26일부터 이달 9일까지 러시아의 이르쿠츠크와 바이칼 호수에서 펼쳐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바이칼노마딕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에는 한국 작가 5명(영화감독 송일곤, 시각예술 작가 이명호, 유비호, 오용석, 김정주)과 러시아 작가 4명이 참여했다. 이 글은 ‘무빙타임라인’을 기획한 이은주 디렉터가 현지에서 가진 작가들의 작업과 바이칼에 대한 소회를 기행문형식을 빌어 게재한다. 
                                                                                                                                                                 -편집자 주-

우리는 이미 바이칼이라는 거대한 의미의 호수에 정착하기 이전에 마치 의식을 치루 듯 우리 민족의 근원과 역사성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에 들렀다. 바로 고려인 역사가 기록되고 그 역사가 아직까지 살아 숨 쉬고 있는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의 방문이었다.

러시아에 한반도인의 과거역사가 어떻게 유입되었으며 또 어떻게 보존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이는 영험한 한민족의 기운이 깃든 샤머니즘 공간이라고도 불리우는 바이칼 호수에 접근하기 위한 의식이었을지 모른다. 모두 러시아에 어떻게 한국인의 역사와 같이 숨 쉬고 있는지 깨우치고 바이칼 호수로 근엄한 자세로 향했다. 초자연, 대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그곳, 바이칼 알혼섬으로 말이다.

초자연을 배경으로 전시기획
이번 바이칼호로 향한 영화감독과 시각예술가 4인과의 예술여행은 전시장 안에서 전시를 꾸준히 만들어왔던 경험과는 상이한 경험을 제공했다. 우선 초자연, 대자연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놓이게 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각자는 ‘이 부분까지 다 비우고 버려야 되나’라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호수 바이칼의 알혼섬에서 벌어졌던 일주일은 각자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 잡아 가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참여자들은 대자연이 펼쳐진 이곳에서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각자의 것들을 내려놓으면 놓을수록 더 많은 것들이 쌓이게 될 것을 예감하기도 했다.

▲오용석 작가의 작업제작 광경

알혼섬에 도착한 첫날은 한-러 양국작가들의 겸연쩍은 눈인사와 간단한 미소 교환이 전부였다. 우선 언어가 통하지 않은 탓도 있고, 섬에 들어오면서 바닥난 체력 때문이기도 했으며, 아직은 각자의 마음의 문이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가음할 수 없을 정도의 바이칼 호수의 깊이만큼 까지는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의 크기 때문 일수도 있겠지만, 동이 멋있게 트는 새벽을 맞이하는 알혼섬의 두 번째 날에는 절대 내 몸으로 가늠할 수 없는 그리고 걸어서는 하루 만에 다다를 수 없는 공간을 작가9인과 동행하며 둘러보았다. 자연, 자연, 또 자연, 가도 가도 자연이었다. 몇 시간 마다 변하는 날씨 덕에 구름, 안개 자욱한 호수와 인사를 하고 비를 수시로 만나기도 했으며, 또 금새 햇살이 반갑게 빛을 내려주면 청명한 하늘의 공기도 가슴속 깊이 마시면 계속적으로 다른 자연의 풍경을 감상했다. 마음과 정신이 맑아지는 풍광 때문에 숨을 마시실 때 마다 한껏 숨이 차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맑고 청명한 공기가 온몸으로 투입되었다.

이러한 자연을 경험한 날, 우리는 양국 작가들의 작업세계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모두 알혼섬의 해가 지는 창밖의 풍경에 기대어 마음을 열었고, 한 명 한 명의 마음이 녹아내릴수록 참여 작가 각자의 작업을 좀 더 몰두하여 알아가게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고요해 지고 더 집중하게 되었다. 모눈 낮 동안 한참이나 둘러본 자연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국작가들과의 세미나 이전에 잠시 들린 이루크추크의 세라믹 페스티벌2013에서는 한참 동안 이 곳이 전시장의 풍경인지 의아야했다. 광활한 자연풍경의 잔디위에 도자와 조각 작품들이 듬성듬성 큰 원을 그리듯 진열되어 있었다. 물론 관람 동선과 위치는 모두 없어져 버렸고, 잔디밭위에서의 덩그란히 올려놓는 것이 설치의 마무리였다. 그곳 전시장의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진지했고, 여느 전시장에서 나오는 다양한 제스쳐들이 비추어 졌다. 작품관람은 물론이고, 작업을 두고 토론이 이어졌으며, 작품을 사고 팔수도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자연공간이 바로 전시장이 되었었고, 이렇게 풀밭 위에서 전시된 몇몇 작품들은 곧 이루크츠크 도심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김정주 작가의 작업설치 광경

화이트 큐브의 물리적 전시공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전시장에서 보이지 않게 형성되는 공간의 권력과 역사성이 무너뜨리는 순간, 그 중심에는 문명이 아닌 자연이었었다. 도시와 완벽한 문명의 공간에서 바쁘게 살아왔던 예술가들이 원초적인 자연에 놓이게 되면서 실제로 먹먹해하기도 했으며, 조금씩 조금씩 각자의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조금씩 사고할 준비를 하기도 했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비워내야 할지, 얼마만큼 내가 거추장스러웠는지 말이다’.

자연이 만든 위대함에서 찾는 소소함
각자의 작업은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그 어떠한 요령도, 술수도 취임새도 부릴 수 없었다. 그저 대 자연에 폭 싸여 그 자연이 조금씩 내놓은 인간스케일의 작은 풀에 그리고 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더불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땅의 길만큼 그리고 내가 가늠할 수 있는 만큼의 주변 환경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눈으로는 저 멀리를 인식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며 걸어갈수록 출발지점에서의 예상시간과는 다르게 목표지점이 멀었고, 또 내가 걸으면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마다 마치 땅의 지형이 바뀌듯이 내 주변의 그리고 내 시야의 모든 풍경들이 달라졌다. 심지어 하늘의 구름이 호화스럽게 변하여 멋진 자태를 뿜어낼 때마나 빛이 찬란하기도 했으며, 또 비가 갑작스럽게 오기도 했다. 어디를 가야겠다는 내 의지만이 드러날 뿐이지, 정말 나 외의 다른 요소들은 어느 것 하나도 예측할 수 없었으며 또한 내 눈앞에는 인간이 약속해 놓은 규칙과 약속이 하나도 없었다.

차도와 인도, 건물, 신호등이라는 인간문명의 기본 시스템이 생성되어 있지 않는 공간에서 오로지 남은 건 보잘 것 없는 나의 작은 의지였다. 저 언덕까지 가야 할 것 같은 그 임무, 하지만 꼭 하지 않아도 변할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아주 사적이고, 소박한 의지 말이다. 이때 나는 완벽히 문명과 떨어져 자연 그 자체에 묻혀져 있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풍경은
좀 전에 내가 본 풍경이 아니요
내가 지금 걷고 있을 때 마주하는 풍경은
앞으로(목표점에 도달했을 때) 내가 볼 풍경도 아니요
내 발이 닿았을 때
그때 느낀 풍경이
비로소 내가 보고 느끼는 참 풍경이요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풍경은
과거의 풍경도 아니요
또 앞으로의 것들도 아니요
그리고 언제 변할지 모르오

자연이 인생을 알려주는구료

광활한 자연이 전시장이 된 하루
이번 예술가들과의 여행 묘미는 아무래도 큐레이터로서 작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작업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밀접히 접했다는 점이다. 전시장에서 전시를 기획할 때 물론 작업실에 방문하여 전시작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면서 전시의 방향을 확정짓는 것도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바이칼이라는 초자연에 놓이게 되면서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키는 공간에 함께했다.

▲유비호 작가의 작업제작 광경

기존에 작가들이 지켜왔던 자신의 예술적 행위를 위한 사고를 고수하기도 했으며, 또 그와 동시에 버려야 될 것들을 비워내기 시작하였다. 오히려 많이 비워내고 비워낼수록 자신이 꼭 지켜야 될 것들만을 채에 걸렀다. 그리고 자신의 본연의 색깔위에 또 다른 새로운 작업여정을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작업제작으로 바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또 지금까지의 작업선 상에서의 중요한 핵심을 깨닫는 계기도 되었으며, 그간의 예술행위의 반성적 성찰과 회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함께하고 또 작업으로 연결되는 현장에 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로도 우리들의 예술여정에 크나큰 동반자적 힘을 서로 생성시켰으며, 또 이제는 덜 외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의 응집된 개개인의 세계를 일반적 세계에 끄집어 설득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대미술을 비롯해 동시대 예술은 대중들과의 밀접한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이칼 전시오픈 후 작업관련 발표장면

어느 날 하루는 작가의 작업현장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시야로는 획득되는 공간이지만 한 번도 그 땅을 밟은 적이 없기에 꼭 한번은 그 공간으로 몸을 옮기고 싶은 욕망도 내재되어 있었다. 숙소를 기점으로 시야 앞쪽으로 보이는 산둥성이처럼 높은 언덕 중턱에서 촬영에 임하는 작가와 또 숙소를 기점으로 바닷가근처에서 설치를 하고 있는 작가의 현장을 찾아 대화도 나누고 기록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대로 산둥성이 중턱에서 촬영을 위해 모델과 미팅을 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나 또한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 갈길을 갔다. 산둥성이에 오른 후, 360도로 펼쳐진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순간 각별한 안도감을 획득하고 마치 하산하는 등산객처럼 언덕을 내려왔다. 이제 저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 설치를 하고 있는 작가를 찾아할 순간이었다.

▲한-러 예술가들과의 접견이후, 이루크츠크

단지 여기서 저기까지의 거리인 것 같지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동이었으며, 이때 ‘왜 가야한다는 내 의지가 발연 되는걸까’라고 고민하는 순간, 마치 이 광활한 자연이 전시장에서 설치하는 장면들과 꼭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시장에서 발동되는 나의 임무가 그곳에서 발동되는 순간, 이 대자연의 공간이 바로 전시장이었다.

광활한 초원과 언덕,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거리, 그리고 몇 분이나 걸릴지 전혀 예감도 오지 않지만, 아직도 그곳에서 설치를 하고 있을거란 믿음만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자연이 결국 전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에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