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칼럼] 7월 27일 되새겨보는 남북 휴전협정 60주년, DMZ과 지역 주민들-①
[이수경 칼럼] 7월 27일 되새겨보는 남북 휴전협정 60주년, DMZ과 지역 주민들-①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7.29 1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무장지대 고지전의 땅에 서서 희생된 영혼들을 기리며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현대 문명의 이기에 지치고 환경 변화로 각종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지구촌 안에 청정 공기와 자연 생태환경이 풍요로운 천혜의 땅이 한반도에 남아 있다.

깊은 협곡 속을 유구히 흘러 온 역사의 강,

숲 속에선 고라니도 멧돼지도, 때로는 호랑이의 출몰도 있다 한다.

한반도 고유의 자연이 숨 쉬는 곳.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곳은 아직도 지뢰밭이 존재하고, 동족간에 총구를 맞대고 있는 비무장지대(DMZ) 로, 그동안 사람들의 왕래나 건축 개발이 제한 되었던 곳이었기에 우리의 산하가 자연스러이 남겨져 있는 생태 환경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요즘은 다양한 축제 행사로 국내외 지명도를 높이고 있고, 지난 5월 8일의 박 대통령 방미 중에 미의회 연설에서 밝힌 DMZ 세계평화 공원 구상도 정부 규모에서 구체화 하는 등, 적극적인 세계 평화의 상징 지역으로 만들려고 하는 비무장지대는 서울서 몇 시간만 달리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먼 이국 땅을 찾지 않아도 대자연의 녹음을 느낄 수 있는 비무장지대는 그러나 민간통제선(민통선)이란 철조망에 가려져 1953년 7월27일의 정전 이후, 60년간을 민족 상잔의 비애와 남북한 긴장감을 자아내며 철의 커텐(iron curtain)을 드리운 채 시간이 멈춰져 있는 곳이다.

필자는 아시아 평화시민네트워크 주최(이대수 대표)로 개최된 [한중미일 시민 화천댐 국제추모평화대회 및 DMZ시찰]에 참가하기 위해 5월말에 중부전선인 화천(華川)・양구(楊口)・인제(麟蹄)등을 둘러보며 분단 민족의 현실을 확인하고 왔다. 일명 [파로호 전투]로 알려진 격전지 화천 전투가 있었던 화천댐 건설과 관련된 일본측 자료 조사 및 발표를 부탁받았기에 일제 강점기 조선식산은행 총재 아루가 토요미츠의 화천댐과 청평댐, 경춘선 개발 관련 조사 내용을 발표차 참석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화천 산천어 축제, 각종 문학 축제, 쪽배 축제, 창포 축제 등 다양한 축제 이벤트 등으로 지자체의 이미지 변신 기획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DMZ 주변의 현실은 지금도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며 남북한 긴장관계의 변수 속에 민족 상잔의 비극이 치유될 시기만을 기다리는 지역 주민들의 염원과 신자유주의적인 급격한 사회 변화가 멈춰진 공간 속에 있다. 그런 아픔의 역사를 치유하며 사실을 명확히 기억하여 미래지향적인 전진적 발전을 모색하려는 많은 움직임들이 정전 6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아시아 평화시민네트워크가 주최한 '한중미일 시민 화천댐 국제추모평화대회 및 DMZ시찰'을 떠나기 전 용산역에서.

그 중 하나인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의 이대수 목사 등은 대붕호(大鵬湖, 별칭은 파로호 破虜湖)로 알려진 화천댐 저수지 주변에서 한국 전쟁 때 격전을 벌이다 죽어간 수 많은 넋들을 위로하고, 정전 60주년의 의미와DMZ 기행을 통한 역사의 재인식과 평화적 미래 구축을 위한 국제 교류활동을 추구하려는 취지의 기획을 제안받았기에 필자도 중부전선 비무장지대의 현실과 그 역사 배경을 학생들에게 좀 더 사실적으로 전해줄 겸 해서 서둘러서 하네다에서 서울행 밤 비행기를 탔다.

몇 년 전에 들렀던 동해안 최전방인 고성군의 통일전망대 철조망 뒷편으로 보이던 아름다운 해변이 참으로 멀게 느껴졌던 기억이 아릿하게 떠올랐다. 이번엔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비행기에 타서 몇 종류의 신문을 읽자니 옆자리에 앉았던 인도 출신의 비즈니스맨이 남북한 상황 및 주변국 관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물으며 자신의 지론을 펴기 시작했다. 아마도 필자가 북한의 최룡해 특사가 중국에 파견되었다는 특필의 기사를 각종 신문으로 읽고 있어서 궁금했던 모양이다. 대략 한반도 상황 설명을 해주었더니 매우 진지하게 듣고 그의 의견도 말한다. 한국에 서너번 가 본 적이 있다는 그 청년이 그렇게 한반도에 신경 쓰는 것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업무차 한국 가는 청년도 이토록 한반도 정세에 관심을 가질 정도건만, 한국에선 [야스쿠니 신사]가 [젠틀맨]이고, [안중근 의사]가 내과의사냐고 묻거나 [일본군 위안부]가 어느 군부대 이름이냐던 수험생을 보도하던 뉴스를 떠올리고선 씁쓰레함이 교차했다.

그렇게도 숱한 희생을 치루며 독립 국가가 된 대한민국이 자국의 근대사 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국민을 양산하고 있으니 매우 심각한 현실이다. 이런 범국가적 문제를 위기의식으로 대처하기 보다 글로벌리즘 시대라고 영어 교육만 외쳐대고 대중영합주의만을 우선하는 모순을 보다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나 걱정이 앞섰다.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은 건전한 국가 기능과 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자신의 역사를 이해하기에 자국에 대한 긍지와 애착이 생기는 법이다. 물론 이 역사는 반드시 일방적인 국수주의나 민족 우월주의에 기인한 내셔널리즘 주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되려 내 나라와 국제관계의 미래구상도를 염두에 두며 과거의 아픔을 기록 기억하고, 불행한 역사를 다시는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는 미래 지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위해선 과거 역사도 알고 현실도 염두에 두고 글로벌 시대에 발전하는 한국 사회가 되어야 한다.

현재 100만명이 넘는 한국민이 미국에 살고 있다. 한국을 떠나서 이주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역시 한국은 서민층이 애들 키우며 살기엔 매력적인 환경이라곤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부유한 사람들에겐 풍요로운 사회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이라면 개선책이 필요하다. 전쟁 후 바둥거리며 살기위해 물질우선주의를 선호한 결과,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너무 표면적 화려함을 추구하는 소비문화 속에 건전한 국민성을 잃어가는게 아닐까? 그런 노파심을 느끼면서 서울 시내로 들어왔다.

예약했던 호텔에 체크인을 하니 밤 12시가 넘었건만 영국에서 친분을 쌓아왔던 친구가 다음날 강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와줘서 남대문의 심야 데이트를 하며 오랜만에 자유스런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둘 다 [의지의 한국 여성]이란 소리를 자주 듣는 입장이지만, 서로 과로를 무시한 채 새벽 다섯 시 반까지 추억 만들기로 버텼으니 가히 대단한 정신력의 지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랑 새벽에 헤어진 뒤, 풀지도 못한 짐을 그대로 챙겨서는 용산역행 택시를 탔다. 필자가 컬럼 등에서 소개했던 아루가 미츠토요(有賀光豊; 조선식산은행 총재)가 경춘선을 만들었을 때는 자그마한 역이었을텐데 지금은 큰 규모의 역이 되어 있었다.

경춘선 티켓 구입을 도와주던 역원이 내게 외부에서 왔냐고 묻는다. 왜냐고 물으니 서울 사람은 바쁘게 다니기 때문에 아침에 손님처럼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란다. 필자의 도쿄 생활이 초인적인 만큼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싶어서 여행객처럼 느긋이 움직였더니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그 분의 설명을 들으니 경춘선 itx는 2012년에 개통된 고속철도라고 한다. 6900원 정도로 춘천을 갈 수 있으니 비교적 저렴한 여행 수단이다.

첫 경춘선 여행을 수면부족의 몽롱한 상태로 즐기자니 앞과 옆자리에 탄 여성 나들이객들이 필자에게 갑자기 가래떡 하나를 건네주며 같이 먹자고 한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했지만 모두 긴 가래떡과 과일 등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음식들과 땅 투기 이야기, 남편 이야기 등을 하며 깔깔 웃는다. 예상 못한 환영이었지만, 춘천에 자주 놀러간다며 밝게 웃던 그녀들의 자그마한 인정이 고맙게 느껴진 춘천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