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고갱의 첫 한국 나들이…달라진 블록버스터 전시의 즐거움
[전시리뷰] 고갱의 첫 한국 나들이…달라진 블록버스터 전시의 즐거움
  • 박희진 객원기자(과천시설관리공단)
  • 승인 2013.08.1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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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객원기자(과천시설관리공단)

‘드디어 고갱이 옵니다!’   지난 5월 국내 무대를 처음 찾는 고갱의 반가움을 SNS를 통해 필자의 지인들에게 폭풍 환호를 보냈었다. 게다가 고갱의 기념비적인 대작 3점이 전시된다는 점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었다. 전시개막과 함께 서울 시립미술관은 ‘고갱의 대작’이 이슈가 되었고, 기획 당시부터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30여 미술관에서 선별한 작품 50여점 이상이 모인다하여 시작부터 설레게 하는 전시였다. 방학 시즌 미술계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블록버스터 전시의 질이나 작품 수에 있어서 한 층 성숙된 전시가 아닐까 내심 기대했다. ‘블록버스터 전시의 지양과 자체 기획전시’를 약속했던 서울시립미술관의 행보에도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전시에 기대가 컸다.
  
국내 첫 회고전으로 마주한 고갱 전시는 덩치 큰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유일하게 기본에 충실한 전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현대미술과 연계하려했던 도전에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대중성과 독창적인 기획을 더한 두 마리 토끼 잡기를 시도한 전시이다. 고갱의 전시는 작품의 수나 질, 전시실 배치에 있어서 상당히 만족할 만하다. 시립미술관의 전시 공간을 연출하는 데에 있어서도 작품을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다. 고갱의 대작들을 다수 들여오면서 일반 관람객을 배려한 작품 분류와 디테일한 구성도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가장 이상적인 동선을 그려냈다는 판단이다.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라는 타이틀도 고갱 삶의 여정에서 ‘낙원’을 찾아 헤맸던 흔적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브르타뉴, 타히티, 마르게사스제도 등 낯선 도시에서의 소재들과 풍경들을 작가만의 화면 형태와 색채로 표현한 고갱의 작품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끝내 풀지 못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 운명에 대한 사색’이라는 고갱의 인생숙제들도 전시감상 이후에 가슴에 남아있다. 전시에 간판이 됐던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1897-1898)’作과 ‘황색 그리스도(1889)’作, ‘설교 후의 환상(1888)’作 등 이 3점의 작품도 잘 활용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1897~1898

필자는 이번 전시를 마주하고 전시후기를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눴다. 관람 이후에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가슴에 남은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감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전시기획에서 기본이 되어야 할 구성요소들을 놓치지 않았구나.’ 필자가 생각건대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전시를 즐겨야 하는 대상이 대중이라는 점이다. 욕심 부려도 될 만한 대작들이 전시에 초대될 때, 기획은 전시를 봐야할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코드 맞추기가 관건이다. 이런 점에서 고갱의 첫 회고전은 대형 전시다운 작품구성과 기획에서부터 욕심을 버려 수위조절이 적정했다는 생각이다.

 

 

(왼쪽부터) 설교 후의 환상(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 1888, 황색 그리스도 / 1889

 

하지만, 현대미술 기획력이 더해진 전시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갱의 정신을 계승한 현대작가들의 작품전은 기획부터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고갱 작품의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본다는 점에서는 대형전시에서의 첫 시도는 기발했다. 또한 현대미술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고는 생각된다. 하지만 작품선정에 있어 좀 더 대중들을 고려했어야 했다. 고갱과 연계해서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고리가 절실하다. 전시된 현대미술 작품들은 고갱의 정신을 계승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대중들의 시선에서 고갱의 작품과 연결 짓기에는 다소 억지스럽다는 느낌이다. 차라리 고갱의 비문명화 된 낯선 소재들과, 그 것들을 바라본 고갱의 시선을 한국적 정서와 연계한 현대미술이었다면 어땠을까. 우리의 정서가 더해진 작품이라며 대중들에게 좀 더 수월하게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고갱 전시에서의 현대미술 기획에 대해 다양한 평이 쏟아진다. 대중들의 생각도 다양하다. 블록버스터 전시의 한계를 지적해오던 필자입장에서는 이번 전시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관람객들의 시선과 미술계 새로운 기획에 대한 도전이 대형전시에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낼 가능성을 제시하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의 첫 회고전을 연 고갱의 전시가 그 첫 발걸음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