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칼럼] 7월 27일 되새겨보는 남북 휴전협정 60주년, DMZ과 지역 주민들-⑥
[이수경 칼럼] 7월 27일 되새겨보는 남북 휴전협정 60주년, DMZ과 지역 주민들-⑥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승인 2013.08.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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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문학관과 버지니아 울프와 버트랜드 러셀, 그리고 평화적 상생에의 길

교통 통신이 지금처럼 정비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첩첩산골의 험난한 비무장지대에 군복무를 배치받으면 탄식하는 말로 [인제 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 가겠네]로 불렸다는 인제와 원통 사이의 구비진 산길을 내려와서 인제의 지역 민속문화나 산촌 생활 양태를 다양한 시청각 소재를 활용하여 소개해 놓은 산촌민속박물관을 들렀다. 그 곳은 물론 이번에 방문했던 각종 시설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한국의 전시 문화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고, 참신하면서도 정겹고 입체적 감각적인 디스플레이가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비무장 지대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분명 문화 강국 한국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미처 다 못 봤던 인제 주변의 문화적 특징을 본 뒤,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박인환 문학관에도 들렀다.

시인 박인환 동상에서 사진을 찍다.

모더니즘 대표 시인이자 천재 문학인으로 불렸고, 우리들에겐 [세월이 가면][목마와 숙녀] 등의 작품으로 친숙한 시인 박인환(1926-1956). 그의 생가 지역에 2012년에 세워진 문학관은 한국 전쟁 직후에 그가 열어서 당시 문인들과의 교류의 계기가 되었던 [마리서사]란 서점이나 그가 즐겼던 명동 거리 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그러고보니 박인환은 그의 작품 [목마와 숙녀]에서 목마를 타고 떠나간 숙녀・버지니아 울프(1882-1941)를 등장시켜서 자신의 비애와 절망보다 더 아프게 살다간 그녀를 소개하고 있다.

어릴적 아픈 기억들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항상 생을 끊으려고 염세주의적 허무 속에 버겁게 살다가 결국 테임즈 강에 투신 자살을 하는 버지니아 울프.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대담하게 작품에 도입하던 모더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였고 2차 대전의 호전주의에 의한 살육대전에 참전하는 숱한 사람들을 보면서 칠흑같은 전시 공간 속에 버티지 못하던 휴머니스트였기에 삶을 놓아버린 그녀의 존재가, 일제 식민지와 해방 공간, 한국 전쟁 직후의 혼란 속에 방황하던 자신의 불안한 삶과 절망스런 감각이 겹쳐졌던 것일까?

버지니아 울프는 전쟁이란 구조와 호전주의자들의 참전 정당화에 대해서는 이미 케임브리지 대학 근처 그란체스터의 오차드 가든 카페에서 속칭 그란체스터 그룹의 1인이 되어 버트랜드 러셀(평화학자, 철학자, 수학자, 1892-1970,1950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등의 강한 반전 사상 등에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다.

물론 그란체스터 그룹에는 경제학자 케인즈나 시인 바이런(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컬리지 정원 분수에서 목욕을 했다는 괴짜이기도 하다), 철학자 비트켄슈타인 등도 참가하여 활발한 교류를 가졌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러셀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직을 해고까지 당하면서도 전쟁이란 대량살상의 구조라며, 영국이 참전한 보아 전쟁을 반대하는 선언을 했던 신념이 강한 인물이었다. 1919년에는 프랑스

의 클라를테 운동(국제 지식인 반전운동)에 피카소, 막심 고리키 등과 참가했고, 그 뒤, 평생을 통해 폭력적 구조를 반대하는 각종 평화운동에 97년의 생을 쏟아 부었으며, [사람은 왜 싸우는가?] 등의 수 많은 저서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 분석한 철학적 책들을 발표한다.

게다가 그 당시 러셀의 자택이 그란체스터의 오차드 카페 바로 옆에 있었기에 시대 상황의 담론을 즐기던 그들은 과수원 속의 오차드가든 카페에서 다양한 쟝르의 화두로 모임을 자주 가졌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케임브리지대학에 다니던 오빠를 통해 그들 그룹과 교류를 하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필자는 박사 논문에서 버트랜드 러셀과 아인슈타인, 피카소, 앙리 바르뷰스 등이 참가했던 근대 문화사상 연구를 했던 터라 2010년에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인류에게 절대 핵무기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며 과학자, 지식인들의 사회적 역할을 역설했던 1955년 7월9일의 러셀・아인슈타인 선언(노벨상 수상자 11명을 포함한 12명의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인류에 영구히 핵사용을 금해야 한다는 양심 선언을 표명)의 친필 원고가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안식년을 떠났다. 그 곳에서 러셀의 당시 선언문 원고 등을 제한된 시간과 조건 속에서 연필로 베꼈던 기억도 있고, 러셀이 버지니아 울프 등과 담론을 즐겼던 오차드 가든 카페에서 익어가던 과수원의 사과를 보면서 시공을 넘어선 그들의 흔적에 만족했던 기억도 있다. 러셀이 살았던 자택은 당시 공사 중이었으나 오차드 가든 카페는 많은 방문객들로 북적거렸다.

카페의 낡은 홀에는 그란체스터 그룹의 멤버들이 즐겼던 공간과 벽면에 걸려진 당시 그들의 사진 등이  어우러져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전쟁의 20세기를 바라보며 우행을 탄식했던 그들의 한탄과 전쟁을 포장하는 [애국]이라는 이름의 [희생 요구 구조]를 분석하던 그 예리하고 현명하던 그들의 고뇌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기에 평생을 행동으로 보이며 [살상의 전쟁]이 아니라 [상생 화해의 지혜]를 주장했던 러셀이었다. 하지만 여자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제한이 많던 당시였기에 더더욱 예민해질 수 밖에 없었던 버지니아 울프는 전쟁터로 사라지는 생명체와 너무도 뻔히 보이는 그들의 행위를 고통스러워하였던 것이다.철저히 짓밟혔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다시 살아나는 죽음에의 충동과 양심과의 갈등, 거대한 전쟁 구조 속에 행해지는 살인행위, 파괴되는 생활 환경…그런 자신의 경험과 오버랩 되는 아픔과 한계 속에서 명성을 누리며 편안히 살기에는 너무나도 가책스러웠던 자신을 용서치 못한 버지니아는 결국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참전하는 남편의 아내로서의 길도 모두 끊고 마는 것이다.

◆전쟁으로 찢어진 산하, 숱한 피눈물이 스며있는 비무장지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는 그 지역을 안보관광 및 생태관광의 대규모 평화공원으로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남북한 신뢰 프로세스를 주창하며 적극적인 남북간 대화도 시도 중이다. 국제정치에서 본다면 상호 신뢰란 힘의 논리를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동족간의 상잔이지만 서로가 체제를 달리한 국가로서의 역사가 이미 60년이 지난 역사가 있다. 그렇기에 반드시 남북의 경제적 시너지 효과만의 남북 신뢰 프로세스 형태는 효율성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과거, 초강대국의 대리 전쟁으로 이용된 남북이 무엇보다 다져야 할 일은, 그 많은 인명들이 희생이 된 한반도의 비극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남북간의 국경을 낮춰서 [동족간 전쟁]의 희생자들을 함께 추모하는 공동 추모제 및 인적 교류를 통한 정세 완화책을 펼쳐가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런 남북간 긴장완화정책에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협력적 관계 및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비극이 반드시 남북한에 기인되는 것이 아님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65년에 남한과 일본은 정상화 조약을 맺었으나 북한은 아직도 일본과 식민지 지배 청산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 적지않은 북한측 동포(조총련)가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래를 생각한다면 일본과의 역사적 청산은 어떤 형태든 이뤄져야하고, 한반도와 관련되어 왔던 주변국들의 협력과 더불어 북한의 개방 정책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남북 긴장에 의한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심할수록 한국의 부담도 그만큼 커진다는 현실은 인식을 해야 한다.

8월22일부터 중국을 견제한TP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각료 협상이 브루나이에서 개최되고 있다. 미국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이자 하버드 동기인 프로먼(속칭 tough negotiator) 통상대표가 일본의 아마리 대표와 연내 타협을 타진 중이다. 한중일 FTA관계도 포함하여 지금 세계의 통상관계는 급변하고 있고, 정치적 안정은 절대적이다. 일본은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강력한 미일동맹을 조성하는 중이다. 그리고 한일 역사문제 청산보다 영토문제를 구실로 한 방위산업 및 군사력 증강과 더불어 교전권을 갖춘 군대 확보를 위해 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북한 갈등으로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서로에게 결코 이익이 될 수 없다. 섣부른 통일 문화의 환상을 꿈꾸기보다 일단 현실적인 남북한 협력 관계의 로드맵을 작성하여 비무장지대의 상호 활용 및 인프라 정비에 협력하며 긴장 완화 관계를 해외에 널리 알려서 관광 기반 및 경제 산업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한반도 관계가 안정되지 못하면 비무장지대 인프라 정비도 무의미하게 된다. 그렇다고 비무장지대 평화공원조성 등을 북측이 외교 카드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신뢰란 서로가 정직하고 순수하게 임할 때 만들어지는 축적물이다. 외교적 카드로 잣대를 재고 신뢰를 깨트리면 이젠 신뢰관계 구축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란 것도, 북한측 자신의 득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평양시내의 택시 및 휴대전화 사용의 증가, 백화점 내의 서양 명품 상품 판매 등, 이미 첨단 과학 문화를 포함한 자본주의 진영의 바람은 북측에서도 향유를 하고 있다. 숱하게 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두바이나 연해주 등지에서 외화획득을 위해 파견되어 있고, 그들은 벌써 신자유주의 사회의 문화적 변화를 지니고 있다. 동남아 각지의 탈북자 등의 실상을 생각하면 기존의 정신 무장만으로는 체재유지가 힘든 시대이다. 그렇기에 시대적 변화를 현실적으로 수렴하는 용단과 현명함이 필요하고, 북한의 장점인 인적(노동력), 휴대전화에 절대 필요소재인 rare earth와 같은 희소금속 및 각종 에너지 자원의 활용을 위한 기술 협력을 통하여 사회적 경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과의 경제적 정상화를 역사 청산의 카드로 들고 있는 일본과의 협상과 지원책의 타당성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북한측도 가능한한 사회 개방책을 도입하여야 하고, 남북한 협력하의 비무장지대 정비를 통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신뢰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면 지난 비극들의 과거를 넘어설 수 있는 관계 개선은 물론, 남북한 공동 발전의 가능성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DMZ방문 및 화천댐 전몰자 추모제를 통하여 삶과 죽음의 의미, 평화 유지와 기억의 풍화, 서로가 살기 위한 협력적 방법 모색 등,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여정의 마지막 스케쥴이었던 박인환 기념관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기억하고, 러셀의 반전 평화운동의 일생을 기억하며, 잔인한 살육 행위를 반복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러한 우행을 지양하고 평화를 만드는 것도 인간의 힘이란 것을 확신하였다.

많은 피해를 받았던 피해자측은 그러한 폐단을 두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지혜로 이어져야 하고, 호전주의의 의도를 간파하는 시민 의식도 높여야 한다.

숱한 사람들의 핏물이 뿌려진 이 땅에 전쟁 보다는 상생 발전의 구조가 구축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갈 수 는 평화된 길이고, 그런 세계를 만들겠노라고 참전했다 죽어간 희생자들의 영혼이 조금이라도 구원을 받는 길도 될 것이다.필자의 일행은 춘천역에서 재회를 기약하며 헤어졌고, 가슴 속에는DMZ지대 방문을 통해 알게된 현지민들의 생활을 걱정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전방이라는 격리된 공간에서 총구를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 비인간적인 환경보다 하루 속히 비무장지대가 해제되어 서로의 땅에서 구수한 방언을 즐기며 한민족의 문화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실현되길 진심으로 고대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번 여정의 기획 담당이셨던 이대수 목사 및 관계자 여러분, 협력을 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