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관람객 ‘배려’는 부재중! 알폰스 무하展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전시리뷰] 관람객 ‘배려’는 부재중! 알폰스 무하展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 박희진 객원기자
  • 승인 2013.09.0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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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백일몽>

체코를 대표하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화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가 예술의 전당(7/11~9/22)에서 전시되고 있다. 몽환적인 이미지로 타로카드나 일러스트 그림풍의 대표적인 작가로, 이름만 들었을 땐 생소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들은 우리들에겐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다.

토요일 오전, 그나마 전시인파가 몰려드는 시간을 간신히 피해 기자도 관람에 나섰다. 그의 그림은 장식성이 강한 곡선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식물적 모티브에 의한 곡선들, 나뭇잎이나 넝쿨을 이용한 선의 부드러움, 여인의 머리카락을 표현한 선과 신비로운 색채가 시선을 끌어들인다. ‘어떻게 그린 걸까. 무엇을 봐야 할까.’ 비록 화가 이름이 낯설고, 미술에 까막눈이라 해도 관람객들은 무하가 만들어낸 화려한 전시장에 눈을 쉽게 뗄 수 없었다.

필자도 한껏 기대를 품고 전시장 막을 열었다. 순간,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입구부터 빼곡히 전시장 벽을 채운 작품들이 좁은 공간에 가득 찬 인파 속에서 드문드문 보인다. 작품과 작품사이가 손바닥 한 뼘 차이로 줄을 섰다. 게다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도 그 비좁은 틈에 줄을 길게 늘어섰다. 비좁은 공간에서 많은 작품을 보려하니 동선도 꼬이기 마련이다.

무하의 전시는 주제별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제별 구성 전시에서는 관람객 스스로가 관람 전에 작가와 작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관람해야 한다. 시기별 전시에서야 작가의 입장이 되어 작품변화의 패턴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작가의 삶과 작품의 사연을 짐작할 수 있어 전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만 주제별 전시에서는 작가와 작품 전반을 전시장 한 바퀴 도는 것으로는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안 그래도 ‘알폰스 무하’라는 화가가 생소한 대중들에게 이번 전시는 가깝고도 멀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미술을 모르더라도, 나이가 어리더라도- 최근 전시들은 친절함을 무기로 교육과 감상, 예술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사이드메뉴로 준비한다. 하지만 무하의 전시에서는 ‘친절’은 찾아보기 힘들다.

애초부터 전시감상을 돕는 교육은 계획도 없었고, 그렇다고 전시를 설명해줄 수 있는 도슨트를 활용한 것도 아니다. 도슨트 교육은 당연히 없었고, 작품설명에 대한 시나리오도 없다는 관계자의 답변이 참 대담해 보인다. 도슨트가 모두 전문가이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 없다는 답변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주말에는 도슨도 설명도 없다. 생각보다 작품은 많지만, 많은 작품을 관람객이 이해하기 쉽게, 작품 한 점이라도 그 작품의 매력을 최대로 살리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관람객 배려는 전시 연출도 큰 몫을 한다. 알폰스 무하 재단의 요청에 의해 전시된 작품의 조도를 낮췄다. 진품 전시에서 필히 지켜줘야 하는 약속이다. 작품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기에 관람자 입장에서 이 점은 충분히 공감하고 양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도를 낮췄다면, 최소한 전시실 벽면 색을 포함한 전시연출 전반에 대하여 대안을 마련할 고민을 했어야 했다. 무하 작품 특유의 감미로운 화면과 장식적 색감들, 화려함을 더하는 프레임 등. 무하 작품의 그 어떤 것도 살려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크다.

무하의 그림들은 화면 정중앙에 여신을 배치하고 그 둘레를 화려한 식물패턴이나 머리카락 곡선 등으로 둘러싼다. 이러한 선들을 검은 윤곽선으로 마무리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특유의 화법이 무하 그림의 특징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한 뼘 차이로 줄지어 걸어놨으니 작품의 집중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 유난히 채색 석판화 작품이 많은 이번 전시는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관람하기에도 쉽지 않다. 반사된 유리액자로 보호해놓은 작품을 보기위해 안경을 썼다 벗었다- 시선을 낮췄다 올렸다- 인파 속에 집중하긴 더더욱 어렵고 뒷사람이 미는 통에 한 점 제대로 보기가 별 따기 이다. 차라리 도록 이미지이라도 사서 보려하니 대도록은 이미 현장판매 품절이란다. 기자도 우편으로 일주일 뒤에 받아봤다.

체코를 가지 않고도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서울하늘 아래서 볼 수 있어 특별했다. 하지만 친절한 전시를 만들기 위한 전시 기획단계에서부터의 노력이 간절히 요구되는 전시이다.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오디오 가이드로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세심하고 친근함으로 관람객 입장에서 ‘어떻게 전시를 보면 좋은지’ 방향을 제시해주는 배려가 요구된다.

전시를 준비한 전문가들이 미학적 연구 결과물을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진중하고 겸손한 고민이 필요한 전시가 아닐까 싶다.

 ■서울문화투데이 객원기자 박희진(과천시시설관리공단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