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19) - 최초의 근대극장 원각사는 복원 되어야
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19) - 최초의 근대극장 원각사는 복원 되어야
  •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3.09.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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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최초의 근대극장 원각사는 복원 되어야 한다. 원각사는 1908년 7월 신문로(현 새문안교회)에서 문을 연 극장이다. 1902년 8월에 정부는 왕실 소속 봉상시 건물의 일부를 개조해 협률사(극장이자 관리기관)를 설립했고, 다시 그 건물을 근대식으로 개조해 새 극장으로 사용한 것이 원각사이다. 1958년 12월 을지로 2가 명동입구에 원각사 소극장이 개장되었다. 식당을 개조한, 부실한 극장이지만 당시 우리 문화사를 재정립하려는 의지가 투영된 공간으로서 영원히 잊을 수 없다. 1960년 12월, 화재로 사라질 때까지 원각사는 소극장운동의 산실이었다.

필자는 1984년 12월 런던 방문 때 글로브극장(이하 글로브) 자리를 찾아 보았다. 맥주공장 벽에 붙은 구적(舊蹟) 표시 동판만 보고 템스강가를 거닐다 허무하게 돌아선 기억이 생생하다. 1995년 1월 방문에는 극장이 재건되어 가는 일부 모습만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1999년에 재건이 완료되었다. 2003년 2월, 마침내 8년만에 완공된 글로브를 찾는 감동은 지금 그대로 남아 있다. 글로브는 템스 강 남안의 사우스워크 다리 서편 인근, 옛 상업지구에 자리하고 있다. 다리 끝에서 도보로 불과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원래의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라 하지만 복원의 의의가 중요하지 아무러면 어떤가.

최초의 글로브는 1576년 제임스 버베지가 런던시티 북쪽 쇼리디츠에 세운 최초의 연극전용 시어터 극장을 그 아들인 카스버트가 1599년에 남쪽으로 이전한 것이다. 1613년에 극장은 불타버렸다. 이듬해 화려한 장식의 기와지붕을 얹은 제2차 글로브로 재건축되었다. 극장은 1644년에 다시 소실되었다. 겨우 52세로 타계한 셰익스피어(1564-1616)는 최초의 글로브에서 무거운 책임을 진 채 그의 많은 걸작을 남겼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글로브’라는 명칭이 생겼다.

재건을 둘러싸고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짚어볼 수 있으나 특히 미국배우 샘 워너매이커(1919-1993)의 헌신을 간과할 수 없다. 1949년 청년으로 영국을 방문한 그는 셰익스피어의 유산과 글로브 구적을 둘러본 뒤 극장 재건의 의지를 품고 귀국하였다. 그리고는 일생 저축과 세계적인 모금운동을 펴나갔고, 1989년에는 글로브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연간 5만 명의 청소년들이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글로브의 무대에서 직접 연습하고 공연하고 연구하게 하자는 취지의 교육재단이었다. 이 재단을 중심으로 한 헌금과 모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사이에 극장 재건이 이루어진 것이다. 재단은 청소년 프로그램 이외에도 전문공연, 특별전시, 문화재관광의 취지까지를 포함해 운영되고 있다.

완공 전인 1995년과 1996년 시연(試演)에는 가설무대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사항을 찾아내었다. 그런 후에야 현재와 같이 아담하고 기능이 탁월한 무대를 완성하고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창출해내게 되었다. 1613년 셰익스피어의 <헨리 8세> 공연 중 대포 발사의 불꽃이 지붕에 날려 극장이 전소되었고, 당시 한 명의 남자가 약간의 화상을 입었을 뿐 3천 명의 관객이 한 시간 만에 모두 무사히 대피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의 글로브는 원형(실제로는 목조 20면체) 3층의 노천극장으로 전면 무대를 향해서 4개의 출입구가 있으며, 지붕은 갈대로 두껍게 이은 형태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양식을 그대로 살렸다. 4백 년 만에 원형을 되찾은 글로브야말로 세계인들의 문화유산이 아니고 무엇이랴.

원각사를 복원하자는 필자의 주장은 우리 연극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좀 잘 사는 나라로 도약했지만 문화적으로, 특히 연극 분야에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극은 그 나라 모든 공연예술의 기초이자 기반이다. 연극이 잘 돼야 공연예술 전체가 발전한다. 내부는 현대식 시설로 하더라도, 외부만이라도 옛날의 멋을 살린 원각사가 재건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