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는 표류중
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는 표류중
  • 이은영ㆍ최영훈 기자
  • 승인 2013.10.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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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신청에도 2년째 ‘보류중’

정부 ‘미온적 대응‘에 일부선 국부 해외 유출 우려도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증도가자(證道歌字)의 문화재 지정 신청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증도가자가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선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러 근거들이 나왔고 이에 기반해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으나 문화재청에서 즉답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 지정이 계속 늦춰질 경우, 해외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증도가자는 1232년 이전에 경기도 개성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다. 현재 보물로 지정돼 있는 목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1239년·이하 증도가,보물 758호·삼성출판박물관 소장))'가 증도가자로 찍혔다는 설명이다.

2010년 경북대 남권희 교수가 증도가자를 처음 공개할 당시 위작 가능성을 두고 학계에 논란을 가져왔다. 출토지와 출처가 불분명한 것을 두고 의문이 제기됐다.

이후 언론 및 대중의 관심 속에 탄소연대 측정 등을 통해 진위 논란은 어느 정도 잦아든 상태다. 그러나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등록이 보류되면서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모종의 음모론’까지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증도가자 첫 공개..직지보다 앞선 최고 금속활자

증도가자가 세상에 첫 선을 보인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지난 2010년 9월 2일이다. 서지학자인 경북대 남권희 교수는 “다보성고미술이 소장한 금속활자 100여 점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2점이 1377년 활자본으로 간행된 직지보다 훨씬 앞선 13세기 초의 금속활자인 '증도가자'(가칭)임을 확인했다”고 알렸다.

남 교수는 명(明)·소(所)·어(於)·보(菩)·선(善)·평(平)·방(方)·법(法)·아(我)·복(福)·불(不)·자(子) 등 12개 금속 활자 실물을 공개하며 “‘증도가자’와 목판본 증도가의 서체와 활자 높이·각·삐침 등에서 거의 똑같다는 게 분명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 ▲ 국내 유일하게 실물로 남아 있는 금속활자 ‘복’(국립중앙박물관 소장)자와 형태나 구리·주석·납 등의 성분 비율이 비슷하다는 것 ▲ 오늘날의 장인도 따라 만들 수 없을 정도로 글씨체의 깊이, 상하 분리된 주물 구조 등의 만듦새가 탁월한 것도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다보성고미술 김종춘 회장은 “역사책을 다시 쓸 만큼 중요한 사실이자 세계적으로 위대한 발견”이라며 “전세계에 한국의 우수성이 다시 한번 입증될 기회”라는 의견을 보였다.

불거진 위작 논란..“증도가와 서체가 달라”

그러나 일부 학자들이 진위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며 위작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활자의 정확한 제작 연도를 알 수 없는데다,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 출토지 또한 명확하지 않다는 점과 과학적인 입증 결과 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점을 기초로 많은 이견이 나왔다.

출토지와 출처에 대해 남 교수는 “수년 전 개인 소장가가 일본에서 구한 것이며, 일본 소장가는 '개성에서 일본으로 가져왔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다른 논란은 증도가와 증도가자의 글씨체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서지학자인 이장수 중원대 교수는 “5개 글자 모두 번각본 증도가와 남 교수가 발견했다는 '증도가자'와는 서법이 전혀 다르다. 글자 모양이 비슷하더라도 글씨를 써나가는 운필법이 완전히 다르다. 증도가를 인쇄한 실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강남대 문헌정보학과 조형진 교수도 "사진으로 된, 확대된 (글자)체의 획 사진을 실물로 봤을 때 활자의 필 획이 너무나 깨끗하다. 문자가 없는 기타 여백 부분은 부식이 많이 됐다. 땅 속에서 나왔으면 왜 하필 필 획은 부식되지 않고 다른 부분만 부식되느냐"며 활자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남 교수는 추후 공개석상에서 반박하고 나서며 진실임을 거듭 주장했다. 남 교수는 “증도가는 목판 번각본이기에 증도가자와 글자체가 완벽히 포개어지는 것은 무리”라고 전제하며 “목판활자를 새길 때는 획이 거칠고 두꺼워진다. 또 11명의 각수가 작업한 증도가는 면마다 서체와 판형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증도가자와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대응했다. 이어 나무의 수분이 마르면서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정확히 일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남 교수의 반론에 이 교수 또한 재차 반박하며 논란을 키워갔다. 이 교수는 "목판에 글자를 새길 때 마른 나무를 사용하지 생나무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남 교수 주장의 오류를 지적했다.

진본임을 입증하는 증거들

이처럼 일부 학자들의 이견 제기로 진위 논란이 가열되는 듯 했지만, 증도가자가 진본임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나왔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금속활자가 고려시대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속에 탄소가 포함돼 있지 않았기에 활자에 묻은 먹을 대상으로 탄소 연대 측정을 하는 방식으로 우회, 입증한 것이다.
첫 번째 측정은 방송국이 의뢰했다. 2010년 12월 KBS ‘역사스페셜’ 제작진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한 ‘증도가자' 2개에 묻은 먹이 고려시대 것이란 분석 결과가 나왔다. 2011년 6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7개 활자의 먹을 채취해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大(대)'자는 서기 770년에서 980년 사이, ‘人(인)’ 자에 묻은 먹은 서기 810년에서 1210년 사이 것으로 확인됐다. 또 2013년 7월 다보성고미술관 측은 "최근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원이 ‘중(衆)’자와 ‘광(廣)’자에 묻은 먹을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을 한 결과도 고려시대(확률 94.2%, 각각 1200~1300년, 1185~1265년) 것으로 나타났다”고 추가했다.

이와 함께 증도가자의 진위논란을 끝낼 만한 사료도 나왔다. 금속활자가 담겼던 고려시대 유물 청동초두(주전자)와 청동수반(대야)이 공개된 것이다. 이 유물들을 x선으로 촬영, 분석한 결과 바닥에 남아 있는 흙에서도 활자가 1개씩 묻혀 있었다. 이를 감정한 이오희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명예회장은 “청동에 부식된 녹들이 인위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파라타카마이트(paratacamite)’로 이는 상당히 오랫동안 흙 속에 묻혀있던 증거"라며 “흙에 섞여 있는 검은색 물질이 먹으로 보여 연대측정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문화재 지정 신청에 거듭 ‘보류’

이같이 자료들이 계속 계속 공개되고, 수차례 학술대회 및 논문 발표 등으로 연구가 이어지면서 학계에서의 논란은 잠잠해진 상태다. 그러나 증도가자에 대한 문화재 지정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소장자가 2011년 10월 문화재지정 신청을 했지만 문화재위원회에서는 계속 보류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가장 최근인 지난 2월 14일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출처 불분명 및 일부 학자들의 진위에 대한 의문 제기”를 들어 보류 결정을 내렸다. 

문화재청 유물관리과 관계자는 “학계에서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국가 공인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 학계에서의 이견이 연구나 조사를 통해 일치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취재 결과 2011년 중반 이후에는 뚜렷한 이의 제기가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2011년 중반 이후에 학계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가 있나”고 묻자 이 관계자는 2012년 1월 원로 서지학자 천혜봉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출간한 <한국 금속활자 인쇄사>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중앙일보 이경희 기자는 지난 7월 18일자 기사를 통해 “천 교수가 MBC PD수첩 등 방송에 기대 위품일 가능성을 제기한 게 전부다. 남 교수는 이를 반박하는 논문을 6월 '서지학연구'에 게재했다. 아직까지 천 교수의 재반박 글은 나오지 않았다.”며 상황을 정리했다. 즉, 최소 2012년 1월 이후에는 학계에서 눈에 띄게 ‘증도가자 진위’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학자가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 차원 연구 조사 이뤄져야

이같이 문화재청이 일부 학자의 의견만 앞세운 채 정부 차원의 연구 조사를 행하지 않는 것은 2011년 9월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적이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에서는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당시 문화재청을 상대로 ‘정부 차원의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며 문화재청의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의 직지심경이 프랑스에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빨리 만들어진, 더구나 활자본이 아닌 금속활자 자체가 발견됐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문화재청은 학계 의견의 보편화를 거론할 것이 아니라 증도가자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한 확인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정부 차원의 연구 혹은 확인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전 의원 측은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문화재청에서 이후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알렸다. 문화재청 관계자도 “현재 회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태”라고만 알렸을 뿐 자세한 계획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문화재청이 내세우는 또다른 이유는 ‘출처 불분명’이다. 일본에서 처음 발견돼 한국으로 들어와서 공개되기까지 서류 등이 미비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소장자 측은 최근 반론 의견서를 통해 “처음 신청할 당시 서류에서 미비한 부분을 보완해서 매매계약서까지 제출했는데도 뚜렷한 이유없이 보류중이니 이에 대해 명확히 해달라.”는 요지로 이를 반박하며 재차 답변을 요구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 매매계약서에는 1995년 한 일본인이 박모 씨에게 금속활자 200여 개를 판 것으로 나와있다. 매매증명서 작성 날짜는 2012년 12월 12일인데 이는 이 일본인이 최근에 재증명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소장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금속활자 ‘복’자에 대한 국가지정문화재 신청 과정을 지적하며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소장자는 “‘복’자 출처에 대한 소명이 없었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이 ‘고려 금속활자 복원 5개년 사업에 착수, 조사를 하고 있으니 검토후 처리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를 비춰봤을 때 증도가자에 대해서만 상세한 출처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론했다. 그러나 이같은 소명 자료 제출과 반문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의 답변은 듣지 못한 상태다.

일부에선 증도가자가 문화재 지정에서 거듭 보류되는 것을 두고, 보류가 아닌 지연이라며 ‘음모론’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문화재 지정은) 절차에 따라 객관적 증거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으로 일부 문제제기는 잘못된 것”이라고 답했다.

국부 유출 가능성도 제기

증도가자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문화재 지정이 계속 미뤄질 경우, 국부 유출에 대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문화재로 등록돼 있지 않은 증도가자가 해외로 반출돼도 이를 제지할 근거가 전혀 없는 상태다. 실제 소장자 측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독일 쪽에서 구매 의사가 있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고 몇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일부에선 “2001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에 있는 것처럼, 증도가자도 위와 같은 전철을 밟아 외국 박물관에서 볼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우려감을 표했다.

한편 문화재청 관계자는 증도가자와 관련 “현재 예산 집행 문제 등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향후 회의를 거쳐 해당 안건을 좀 더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역사로 보는 ‘최초’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추정)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

700년대 초~751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다. 너비 8cm 전체길이 620cm 정도의 두루마리로 목판으로 불교 경문이 인쇄돼 있다.

역사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사료지만, 중국과 분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당나라 때 만들어 신라에 준 것”이라며 “당나라 측천무후가 만든 새로운 글자 4자가 다라니경에 있다.”며 다라니경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학자들은 “그 글자가 신라에 들어와서 쓰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다라니경에 사용된 종이와 먹이 신라의 것”이라며 반박에 나서다.

상정고금예문(1234년) - 기록상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역사상 기록에 남아있는 최초의 금속 활자본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고려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이 책을 1234년(고종 21)에 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추정된다.

김성수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2012년 2월 “상정고금예문도 증도가자로 구성됐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직지심체요절(1377년) -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정식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 직지심체요절’이다.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으로, 본래 상·하 두 권으로 구성돼 있으나 현재는 하권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있던 이 책을 박병선 박사가 발견, 수년 간의 고증 끝에 ‘구텐베르크의 인쇄물보다 앞선 것’임을 밝히고선 1972년 발표하며 출판 역사를 다시 썼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현재,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선 증도가자가 발견됨에 따라 인쇄술의 역사가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