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20) - 간결하고 박력 있는 채윤일 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20) - 간결하고 박력 있는 채윤일 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3.10.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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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지난 2011년에 테네시 윌리엄스는 탄생 1백주기를 맞았다. 그의 명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1947년 12월 엘리아 카잔 연출로 뉴욕 베리모어 극장에서 첫 공연되었다.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절찬 상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현대의 살아있는 고전임에 틀림없다. 국내에는 1955년에 극단 신협이 처음 무대에 올린 이후 수차례 공연되었다.

지난 8월 13일부터 9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채윤일 연출의 <욕망...>은 근래 연극계에서 보기 드믄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젊은 관객층을 중심으로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연일 만석을 기록했다. 심각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연극계로서는 일대 사건인 아닐 수 없다. 청소년 관객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금(네이버의 푸른티켓)도 받게 된 극장측으로서는 금상첨화의 행운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만석 공연만으로 작품의 질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이상, 그 성공 요인들을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로서는 무엇보다 연출의 우수성을 들고 싶다. 무대조건, 관객사정, 배우조건 등을 고려한 나머지 상투적인 사실주의 연출을 벗어나 심리적인 표현주의 연출을 시도한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연희단거리패의 훈련된 배우 앙상블이 연기의 묘미를 살려냈고, 간결하면서도 박력 있는 연출가의 판짜기 능력이 작품의 맛을 살려내었다고 생각한다.

명동예술극장은 무대가 비좁다. 그럴 듯한 무대장치를 만들어 놓고 아주 사실적인 연기를 하기에는 애초부터 무리한 조건이다. 알려진 대로, <욕망...>은 형수(블랑쉬 김소희 역)와 제부(스탠리 이승헌 역) 사이의 폭발적인 성행위 장면으로 소문난 작품이다. 그 동안 숱한 관객들이 이 유명한 장면을 목격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었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아직 남은 하기방학을 이용해 14세 이상 고등학생 및 대학생 관객들에게 현대 연극고전을 보여주자는 기획의도가 전제되어 있었다. 성행위 장면은 애초부터 시도하기조차 어려웠다. 이런 장면을 피해 가면서 작품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 연출가였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배우들은 무대에서 연기를 훈련하고 수련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일생 동안 무대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 지망생은 넘치고 넘치지만 제대로 된 작품에서 배역을 맡을 수 있는 기회란 ‘가뭄에 콩 나기’라고나 할까. 이런 현실에서 유독 돋보이는 단체가 연희단거리패이다. 연중 무휴로 공연하며 끊임없이 연기술을 다지는 집단이다. 앞서 지적한 두 주인공을 비롯해 윤정섭(미치 역), 김하영(스텔라 역), 피아노를 친 김아라나(유니스 역), 이동준(스티브 역), 색소폰을 불어준 황지하(파블로 역), 이창섭(의문의 남자 역), 이혜민(멕시코 여인 역) 등의 연기는 긴밀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즉 배역의 조건이 잘 갖추어진 공연이었다.

끝으로, 연출가 채윤일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심리적인 욕구를 면밀히 고려하면서 압축적인 상황을 보여 주었고, 빠른 심리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밀도 있게 노출시켰다. 마치 카메라의 셔터가 열리고 닫히듯이 심리적인 표현들을 확대시켰다. 김소희의 가냘픈 내면연기와 이승헌의 거친 외면연기는 절묘하게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연기는 집중적이고 집약적이고 직접적이다. 관객들은 명멸하는 장면들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무너져 가는 블랑쉬의 모습을 투시하게 된다. 그 직접성은 그녀만의 실존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욕망이 크게 무너지는 소리를 가슴에서 울리게 했다.

정도의 차이뿐, 우리는 누구나 욕망의 열차를 타고 달려간다. 욕망의 열차는 날이 갈수록 객실이 늘어난다. 그 객실에는 숱한 욕망들이 버티고 앉아 밤낮 창밖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모든 욕망이 가슴에 채워질 그 시간을 초초하게 기다리며... 그러나 자진해서 열차에서 먼저 내리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블랑쉬처럼 우리가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은 이미 병들어 폐인이 되어버린 육체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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