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평론] Body Orchestra-누가 그녀의 빨간 구두를 훔쳤을까?
[무용평론] Body Orchestra-누가 그녀의 빨간 구두를 훔쳤을까?
  •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3.10.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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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명예교수)
구두는 여성에게 어떤 의미일까. 차진엽이 안무한 <Body Orchestra-누가 그녀의 빨간 구두를 훔쳤을까?>(10.4~5,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의문이다. 지난 봄 강동아트센터가 주최한 대학무용제에서 GDF's Choice로 선정되어 5천만원의 제작지원금을 받아 완성된 작품이다. 여성의 구두는 아무리 많아도 늘 부족하다고 한다. 구두는 패션의 완성이고 그치지 않는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구두를 소재로 한 작품 중에서 ‘신데렐라(Cinderella)’는 여성신분상승의 상징물로 유리구두를 사용했고 ‘분홍신’이란 번역으로 더 잘 알려진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the Red Shoes)’는 인간의 욕망과 구두를 연결시켰다. 

1열로 늘어선 12개 의자에 앉은 남녀무용수들이 번갈아 작품 줄거리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줄거리는 이렇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처녀 카렌은 부모를 여읜 후 부잣집 양녀로 들어간다. 빨간 구두를 사기 위해 카렌은 양모를 속인다. 그 신을 신으면 춤을 추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장례식 날에도 카렌은 빨간 구두를 신고 무도회에 나가 춤을 춘다. 춤을 멈출 수 없어 가시밭길과 돌밭 위에도 춤을 추며 지나가야 한다. 여인들은 누구나 그 신을 신고 싶어 한다. 빨간 구두는 바로 여성들의 욕망인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신은 구두는 벗겨지지 않는다. 빨간 구두는 발목을 잘라서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삶의 질곡이고 형벌인 것이다.”

제목 <Body Orchestra>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작품은 거의 군무로만 이루어진다. 상명대학 무용과 학생들이 출연자 들이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처럼 이들의 젊은 에너지가 때로는 협동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빨간 구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든 장면들을 구성해간다. 형형색색의 구두 들이 소도구로 등장해 무대를 채우고 여러 겹으로 구성된 원통형 모양의 벽들은 출연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공간을 만들어간다. 빼앗으려는 사람들과 뺏기지 않으려는 발버둥, 나의 욕망 앞에 타인들은 모두 적일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를 위해 이합집산이 이루어지고 목적을 위해 왕따와 보복도 서슴치 않는다. 구두를 차지한 자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구두의 운동에 의해 운명 지워지는 삶의 비극을 깨달았을 때 벗어나려고 애써보지만 이는 욕망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 그가 지은 허영과 거짓과 욕망의 죄에 대한 징벌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빨간 구두를 신은 채 두 발이 잘린 카렌은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검은 수녀복을 입은 여인들이 춤의 마지막을 장식해준다.

원작과 달리 무대에 공포적인 분위기는 풍기지 않는다. 춤은 경쾌하고 조명도 밝다. 안무가는 욕망이 건강한 젊음의 자연스러운 욕구이고 갈등과 경쟁을 우리 사회의 필연적인 구성요소로 해석하는 것 같다. 이러한 해석은 미국에서 제작된 발레영화 ‘분홍신’(1948)을 닮았다.  죽음 외에는 끊을 수 없는 춤에 대한 발레리나의 열망을 빨간 구두로 묘사한 마이클 파월 감독의 작품인데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그 해의 10대영화로 선정된 발레영화의 고전이다.

(왼쪽) <Body Orchestra-누가 그녀의 빨간 구두를 훔쳤을까?> 포스터, (오른쪽) 무용가 차진엽

차진엽의 춤은 서정이나 기교보다 힘이 앞선다. 젊은 무용수들이 발산하는 힘을 바탕으로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구성을 통해 현실사회를 바라보는 예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성 무용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신선하고 패기 있는 작품들이 내년 대학무용제에서도 선정되어 관객들을 찾아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