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아픈 상처를 극복한 통일 독일의 자존심 베를린
[여행칼럼] 아픈 상처를 극복한 통일 독일의 자존심 베를린
  •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
  • 승인 2013.10.1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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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큰 폭격을 맞았다. 교회의 반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종탑은 허물어지고 창문도 대부분 깨져버렸다. 그러나 파괴된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서있다. 전쟁에서 얼굴에 상처를 입고 팔다리를 잃은 상이군인처럼 처참한 모습이다. 다른 유적들처럼 복원과정을 거쳐도 될듯한데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전쟁의 화마를 계속 되새기며 반성을 하기 위해서란다. 전범으로서의 뉘우침을 이렇게 계속하는 나라에 오니 문득 그렇지 않은 한 나라가 생각났다. 반성하는 나라는 아픔을 치유하는 호르몬을 만들어 낸다.

하노버에서 출발한 쾌속열차의 창밖으로는 독일 남부와는 전혀 다른 평야지대가 펼쳐지고, 북부만의 왠지 모를 검소함이 느껴졌다. 왜 평야를 보고 있는데 검소함이 느껴졌을 까. 흔히 독일 남부 사람들은 북부 사람들을 촌뜨기라 부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특정 지역을 비하 하는 말이 내 머리 속에 저장되어 편견 아닌 편견을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두 시간의 기차여행의 종착점은 베를린 동물원역(Zoologischer Garten).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이 파괴된 교회. 베를린은 흐린 북부의 날씨와 함께 슬퍼보였다. 알에서 깨어난 새가 처음 본 것을 어미라고 여기듯이 나도 처음 본 이 교회가 이 도시의 모든 분위기를 규정했다.

베를린은 2차 대전 이전만 해도 유럽에서 파리에 버금가는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전쟁은 이 도시를 할퀴고 반쪽으로 쪼갰으며 그 쪼개진 틈에 높은 담을 올려 버렸다. 그리고는 그 누구도 그 담을 넘어가지 못하게 했다. 담을 넘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총을 쐈다. 장벽 바로 뒤로는 브란덴부르크 문이 승리한 자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분단의 상징처럼 보였었다. 긴 시간이 지났고 서로를 그리는 열망이 악명 높던 담을 부수어 버렸다. 장벽은 이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관광 명소일 뿐이다. 장벽을 허무는 자는 번영하고 장벽을 세우는 자는 망할 지니라. 내 머리 속에 그럴싸한 나만의 격언이 스친다.

베를린은 박물관 도시라고 불린다. 170여개에 달하는 박물관은 이 도시의 역사적 무게를 이야기한다. 명성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했던 페르가몬(Pergamon) 박물관에 도착했다. 눈으로 외었던 세계사 공부는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한 번 보는 것은 백번 읽는 것보다 낫다는 말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를 아우르는 전시물을 보는데 하루가 모자랐다.

저녁 시간에 베를린 최대의 번화가라는 쿠담거리를 걸었다. 우리가 명품이라 일컫는 모든 브랜드가 있는 듯 상점의 조명과 길거리 네온사인은 나의 그림자를 네 개로 만들어 버렸다. 쿠담거리 한쪽에 서있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마저 더 이상 아파 보이지 않았다. 베를린은 이미 통일 독일의 자존심이 되어 있었다. 자만하지 않는 자존심 베를린이 다시 탄생한 것이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

유럽을 가고자하는 모든 사람에게 베를린을 권한다. 이 도시를 들르지 않고 오면 엄청나게 후회할 것이다. 베를린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슬픔이고 치유이며 드라마다. 베를린 영화제가 세계 3대 영화제라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의 문화적 무게를 실감할 것이다. 늘 영화의 소재가 되는 도시, 드라마의 중심이 되는 도시, 그러나 무엇보다 아픔을 넘는 무한 에너지를 가진 도시가 베를린이다. 무더울 거라는 이번 여름의 피서지는 베를린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희망에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