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카파이즘만으로 제한할 수 없는 로버트 카파의 인간미
[기자의 눈]카파이즘만으로 제한할 수 없는 로버트 카파의 인간미
  • 주세웅 인턴기자
  • 승인 2013.11.08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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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로버트 카파 100주년 기념 사진展'

지난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되던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의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이 막을 내렸다. 그 불꽃같은 일생에서 유래한 카파이즘(Capaism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자정신)으로 대표되는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는 굳이 기자가 아니어도 사진에 관심 있다면 한번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기자 또한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학도로서 사진전에 입장하기 전부터 많은 기대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5개 대륙의 전장을 누비며 참상을 고발하고, 지뢰를 밟고 산화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는 그의 기자정신은 존경을 넘어 일종의 신성함마저 느끼게 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21일 월요일 오후, 부푼 마음으로 방문한 세종문화회관은 사진전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로 성황인 모습이었다. 입구엔 기념사진 촬영용인지 카파의 대표적인 사진들로 짜깁기된 홍보판이 눈길을 끌었고, 전시장내부는 각 전시구간이 카파의 생애에 맞춰 시기별로 구성돼 있어 관객에 친절한 느낌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선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였는데, 사진 외에도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카파를 표현하고자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행방불명 수십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멕시칸 수트케이스(카파의 스페인 내전 네거티브 필름이 담긴 상자)의 전시와 여러 개의 모니터를 출력한 디지털 이미지의 활용, 그의 일대기를 다룬 PBS의 다큐멘터리(Robert Capa : In Love & War) 상영 등은 관람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전시회에 흥미와 몰입도를 높여주는 시너지효과를 가져왔고, 기자를 비롯한 관객들은 보다 입체적으로 카파와 소통하며 그 세계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충분히 다가가서 본 인간 로버트 카파

전시회 도슨트의 안내는 카파가 종군기자로서 명성을 떨치기 전인 1930년대 초부터 시작해서 베트남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54년까지의 종적을 사진을 통해 좇으며 진행됐다. 노련한 안내와 지식이 돋보였던 그녀를 따라 영웅의 흔적을 관람해가며 기자가 느낀 것은 의외의 소박함과 넘치는 인간미였다. 전시된 카파의 사진들은 풍자적이라기 보단 정겨웠고, 치밀하다기 보단 직관적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등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며 찍은 사적인 사진에선 장난스런 익살과 유머감각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미와 감성적 시선은 그를 유명인사로 만든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카파의 사진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을 담고 있다." -존 스타인벡-

난세(難世) 속에서도 웃고 울며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과 총탄 빗발치는 전장에서 덧없이 스러지는 군인들의 생명은, 카파의 사진 속에서 그 무엇보다 선명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긴장된 표정으로 사이렌에 귀를 기울이는 부인, 정전을 코앞에 두고 눈먼 총알에 목숨을 잃은 초병 등을 주제삼으며 카파는 예술적인 구도나 치밀한 계산이 아닌 순수한 사랑과 안타까움으로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알리고자 했다. 피사체를 바라보는 카파의 시선은 이성적 저널리즘이 아닌 감성적 휴머니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진전에 있어 선별의 중요성

하나의 사진사적 전형으로 자리 잡은 카파이즘, 즉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자정신' 만으로 카파를 가두고 싶지 않다는 총감독 조대연 교수(광주대학교 사진영상학과)의 역설과 같이, 이번 전시회는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휴머니즘에도 초점을 맞춰 사진의 선별과 전시구성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국내 최초 멕시칸 수트케이스 필름 전시 및 ICP(로버트 카파의 동생 코넬 카파가 세운 기념재단) 소장전이란 측면은 전시가능한 사진의 다양성을 늘려줌으로써 더욱 카파의 일생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된다. 사진의 선별에 따라 전시회의 메시지를 달리 할 수 있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구성에 따라 작가의 성향까지 다르게 표현 가능하단 것으로, 그만큼 사진전에 있어 사진선택의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겠다.

기자는 이번 전시를 보기 전까지 카파에 대해 존경에 더불어 막연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위험천만한 전쟁터만을 찾아 방황했던 그의 모습은 단지 사명감에서 비롯되었다 납득하기엔 다소 초인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그가 사지(死地)에서의 스릴을 즐기는 성격이거나 혹은 강박증적인 질환이 있던 것은 아닌지 조금은 무엄한 추측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리뷰를 작성하는 지금, 충분히 다가가서 본 카파의 사진들을 회상하며 눈을 감고 그 생애를 음미해본다. 셀 수 없는 웃음과 눈물, 희망과 절망의 파노라마들...로버트 카파가 위험을 무릅쓰고 세계를 일주했던 일생의 동력은, 카파이즘이란 이름의 거창한 사명감보단 사람을 사랑하고 동정했던 소박한 휴머니즘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