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김운미의 <2013 신화상생>이 보여주는 우리 춤의 미학
[이근수의 무용평론]김운미의 <2013 신화상생>이 보여주는 우리 춤의 미학
  •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3.11.1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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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지성과 신선한 감성

▲필자 이근수 교수
무용과 회계의 유사성을 찾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회계가 기업경영의 언어라면 무용은 몸의 언어이고 기록과 커뮤니케이션이 핵심기능이란 내용이었다. KUM 무용단의 <2013 신화상생;11.9, 호암아트홀>은 이러한 춤의 언어적 특성을 진솔하게 보여준 수작이었다. 차가운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토요일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춤은 마지막까지 따뜻했다.

<누가 이들을 춤추게 하는가>란 평론집을 내면서 우리시대 무용가 30인에 포함된 김운미를 ‘학문과 예술, 더블타깃의 학구파’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한양대 무용과 교수로서 KUM 무용단을 창단한 후 <1919>, <함(函)> 씨리즈 등 한국의 역사와 여성의 홀로서기를 주제로 한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우리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편 ‘우리춤연구회’와 ‘우리춤연구소’를 중심으로 학구적 활동을 계속해온 그녀에게 가장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김운미의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춤이다. 힘차고 빠르게 회전하는 버선발차림 여인들의 민첩한 춤사위가 무용수들의 연습량과 고른 기량을 말해준다. 그들의 춤에는 광기가 흐르고 얼굴에 배어 있는 감정이 음악과 만나면 춤은 그대로 시가 된다.(함 2, 2001)”

“13명 무용수 모두의 표정과 눈매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충분한 연습량으로 다져진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춤사위는 간결하면서도 한국무용의 특징적 춤사위를 다양하게 보여주어 발레의 디베르티스망을 보는 것처럼 즐거웠다.(1919)”

김운미의 작품을 보고 d;렇게 썼던 그 때의 느낌은 <2013 신화상생>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버선을 벗었고 춤사위에 현대춤과 발레동작이 가미되어 간결함보다 현란한 아름다움이 강조된 것이 변화라 할 수 있고 김신아, 장윤기, 이현경, 김은정 등 그 때의 주역들이 서연수, 지제욱, 안지형, 이영림 등으로 바뀐 것은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때문일 것이다.

작품은 2부로 나누어진다. 김운미가 장덕화의 장구반주에 맞춰 추는 30분간의 승무가 1부공연이다. 그녀는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이수자이다. 제2부가 ‘신화상생(神話相生)’이다. 겨울에서 시작되어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90분 동안 계절이미지를 통해 보여지는 것은 무용가 어머니(이미라)로부터 춤을 전수받은 후 춤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삶이며 KUM무용단 창단 후 20년 역사의 궤적이다.

향초를 켜든 지제욱이 무대 끝자리를 천천히 돌아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온다. 시간의 흐름을 통해 계절의 순환과 인생의 윤회를 상징한다. 계절의 변화는 뒷벽을 가득 채운 정해운의 영상 퍼포먼스와 허환의 감각적인 조명으로 표현되고 한진국의 풍성한 의상이 이를 받쳐준다.

겨울은 검고 황량한 대지로, 봄은 푸르른 색으로 갈아입은 초목들로,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은 붉은 색의 바다로 상징된다. 황금빛으로 물든 산들이 첩첩이 이어지는 가을에 이어 다시 찾아온 겨울은 하얀 색이다. 예전의 어둡고 칙칙했던 겨울이 아니다. 역사와 여성이란 주제가 힐링과 상생으로 확장되고 있음이 읽혀진다.

서양악기 위주로 기존음악을 다양하게 편성한 음악(강은구)은 춤의 각 장면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한국 춤의 세련미를 더해준다. 작품의 대부분은 군무로 짜여 진다. 8명의 남성무용수가 보여주는 여름의 춤은 다소 경직된 듯하면서도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에너지가 객석으로 전이되고 표정이 살아있는 20여명 여인들의 군무는 부드러운 가운데 활기가 넘친다.

서연수와 강요찬의 듀엣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눈 쌓인 벌판에 날아든 한 쌍의 백로처럼 그들의 춤은 세련되고 우아하다. 한국춤의 정서에 현대무용과 발레테크닉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서연수의 춤사위에선 몸의 자유를 찾은 편안함이 있다.

다시 서른 명 군무로 이어지는 에필로그, 모두가 조용히 제자리에 앉아 객석을 향해 한껏 몸을 굽힌다. 1993년 호암홀 무대에서 처음 막을 올렸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후 20년 연륜을 쌓아오는 동안 단단한 지성과 신선한 감성을 바탕으로 그들이 오늘 도달한 춤 자리가 ‘힐링과 상생’이라면 이제부터 새롭게 열리는 춤 세계에서 KUM은 또 어디로 비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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