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행-104]문화로 발효된 향기로운 한 모금 - 전주전통술박물관
[박물관 기행-104]문화로 발효된 향기로운 한 모금 - 전주전통술박물관
  • 이정진 Museum travler
  • 승인 2013.11.1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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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박물관 입구
우리나라 1인당 술 소비량 세계 2위, 직장인 47.6%가 술은 사회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답할 정도로 술은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소주, 맥주, 양주, 와인 등 세계 각국의 수많은 술들이 넘쳐나는 지금,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 땅에서 우리 전통주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많은 이들이 현재의 소주를 우리나라의 전통술로 알고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지금의 소주는 고구마, 타피오카 등의 전분을 이용한 희석식 소주이며, 일제 식 양주장(釀酒場)의 도입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른바 ‘가짜소주’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가양주(家釀酒)라 하여 각 집집마다 독특한 매력을 가진 술들로 넘쳐났으나 1909년 일제에 의해 주세법이 제정되고 문화말살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대다수가 사라지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양주장을 통해 값싼 곡물에 첨가제까지 넣은 저질 희석식 소주가 생산됨에 따라 우리 입맛 또한 획일화되기 시작하였다. 애주가라 불리어지는 이들 중에서도 우리소주의 애석한 역사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술은 그 나라의 중요한 식문화중 하나이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문화의 척도인지라 수많은 전통주들이 사라졌다는 현실이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전라북도 도청 소재지 전주는 예부터 멋과 맛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전주 한 복판에는 전주의 전통문화를 현대에 변용해 그 가치를 발산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한옥마을이다. 전주전통술박물관은 바로 이곳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 환경과 매우 잘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목어가보이는 계영원 마당전경

전라도 전통한옥의 특징인 ‘ㄷ’자형 기와집은 고즈넉하여 술박물관에서 풍기는 솔솔 풍겨 나오는 술 향기를 더욱 정감있게 해주고 있다. 처마아래 매달린 목어는 마치 그 술 향기에 취한 냥 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휘청휘청 오는 이들을 넉넉하게 맞이해주고 있다. 입구 좌측에 위치한 계영원(誡盈院: 잔이 넘치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이란 이름을 가진 전시장엔 재밌는 유물이 하나 있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 속에 등장하는 술잔-가득차면 술이 새는 것으로 유명한 계영배[戒盈杯: 계영원과 같은 의미로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함]를 실제로 만나볼 수 있다. 이곳은 술의 기원 및 주조과정 등의 지식을 알려주는 곳으로 특히 술을 마셔보기만 했던 젊은이들에겐 발효와 주조과정이 신비롭게 느껴질 것이다.

▲술빚는과정을 보여주는 닥종이인형들

전시실 한편에는 술 빚는 모습을 양각한 목판에 찍어보는 탁본 체험 및 직접 끓인 모주 거르기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데, 알코올 함량이 적은 술이라 하여 부모를 동반한 어린이들도 술 향기에 취할 염려 없이 참여하기도 한다.

제2 전시실인 양화당(養和堂)은 화합하여 술을 빚는 곳이라 하여 술을 빚는데 있어 필요한 정성과 기술에 대해 느낄 수 있다. 신윤복과 김홍도의 그림 속 서민들의 음주문화를 그린 풍속화 밑에는 각 지방의 전통주들이 아름다운 주병 안에서 술 한 잔을 권하듯 요염하게 전시되어있다.

주병의 모습들만 해도 다양하여 담양의 대나무주병, 경주의 첨성대주병, 안동의 하회탈 주병 등 지역의 특색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재미있는 술병의 생김새에서 병에 담긴 술맛을 궁금해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술맛을 돋궈주던 토기술잔, 술자리에 빠지면 섭섭한 안주들을 담던 짚으로 만든 안주그릇은 지금 술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정취를 담고 있다.

아울러 예의와 풍류가 녹아있는 향음주례(鄕飮酒禮)에 쓰이던 술잔에는 품위와 격식이 담겨있어 옛 선인들의 평화스러운 음주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지금의 우리 술 문화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깊이 돌아보게 한다.

▲풍속화와 지방주병들

이곳 전통술박물관은 그 어느 박물관보다 술에 관한 체험전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일제에 의해 사라졌던 가양주의 맥을 이어가고자 다양한 연구를 통해 현대로의 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통주 빚기, 막걸리 거르기 등 직접 제조한 술을 시음하는 행사 및 기획 상품으로 막걸리 칵테일을 판매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들과 노년층 관람객 등 나이를 불문하고 한데 어울리는 마당에선 술맛모르는 이도 우리 술의 매력에 빠지고 간다하니 우리 술 문화를 살리는데 노력하는 박물관의 활동이 숭고해보이기까지하다.

전국 각지에 분포된 지방마다의 소주, 막걸리 등 우리 술이라는 이름아래 만들어지는 공산주(工産酒)에는 불안한 발효를 막기 위한 각종효모제와 쓴맛을 감추는 아스파탐이 들어간다. 이는 고유의 맛을 해칠 뿐 만 아니라 진짜 우리 술의 명성을 추락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한다. 술을 만들고 판매함에 있어 이익을 생각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정이라 하더라도 우리 술을 알리는 것까지 망각해선 안 된다.

오로지 곡식, 누룩, 물로만 빚었다는 순수한 마음의 우리 술엔 ‘민족의 얼’이 들어가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량생산과 브랜드가치만을 추구하는 작금의 현실을 잠시 접고 우리 전통 술 문화의 맥을 잇는 것에 대해 좀 더 진중함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전주의 전통과 우리 술 문화를 발전 계승하는 전주전통술박물관의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 참조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납동 3가 39-3
문의 063-287-0904
Museum travler 이정진 (wumolong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