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 칼럼]박물관장, 이제 자유인이 되자
[윤태석의 박물관 칼럼]박물관장, 이제 자유인이 되자
  • 윤태석 뮤지엄 칼럼니스트, 문화학 박사
  • 승인 2013.11.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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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문화학 박사(박물관학·박물관 정책)
얼마 전 명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세태를 꼬집은 내용이 담긴 김홍신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박물관과 연계하여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좋은 물건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박물관장들은 이 욕구를 실현하고 있어 행복해 보인다.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수단이 곧 수집활동이며 일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명품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품에는 자동차, 손목시계, 옷, 여성들의 귀금속, 가방에서부터 휴대전화기 등 필자가 아는 범위에선 이런 것들이 해당한다.

한편, 명품을 선호하기에 앞서 자신이 명품이 되기를 김 선생은 강조했다. 사람이 명품이 아닌데 명품을 걸친다고 명품이 되겠느냐는 것이며, 사람이 명품이 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들 역시, 명품이 되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생산자는 상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유명인을 내세운 마케팅과 홍보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선생은 인간 명품 론을 계속 이어갔다. 인간명품이 되는 길은 먼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인 자유는 사람에게 긍정의 힘을 주고 너그러운 포용력도 갖게 한다.

그러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이 없어 여행을 못가고, 건강에 문제가 있어 등산을 못하고, 자식걱정에 잠을 못 이루고, 살을 못 빼 속상해하고, 이렇듯 자유를 제약하는 것들은 늘 범인과 함께한다. 그러나 스테이크가 아닌 라면을 먹어도 행복한 사람이 있듯 자유를 얻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자유는 속박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내게 살포시 안겨든다. 속박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있는데, 우리를 옥죄는 속박의 대부분은 정신적인 것이다. 그것을 짊어지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다. 돈이 없어 여행을 못가는 사람은 그 여행의 기준을 낮추면 분명 고민은 줄어들 것이다. 인간 명품은 무엇보다 욕심을 버려야 자유스러울 수 있고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박물관의 홍갑표 관장은 박물관 설립의 제 과정과 삶을 정리한 자서전을 출간했다. 얼마 전 박물관을 찾았을 때 홍 관장의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책의 주요 내용은 부군인 재단법인 중남미문화원 설립자 이복형 전 멕시코 대사와의 삶과 중남미를 중심으로 한 외교관생활에서의 소소한 이야기, 박물관이 설립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팔순을 맞은 홍 관장의 삶은 자유를 얻기 위한 긴 여정의 축적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크고 작은 역경의 연속이었고 경제적인 어려움 또한 적지 않았다.

공직에서 은퇴하고 박물관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지금까지 그 환경은 개선될 조짐도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욕심에게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문화는 나누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일평생 모은 재산과 박물관을 가족들의 동의하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책을 통해 선언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는 ‘원대한 꿈을 꾸어라 꿈꾸는데 돈 드니?’를 강조하며 강남이 채 개발되기 전에 구입해 뒀던 부동산을 처분해 빚을 청산하고 남은 돈은 꿈이 큰 젊은이들을 키우고자 ‘장학재단을 만들겠다’고도 다짐했다. 사후 시신마저 기증하기위한 조치를 미리 해놓은걸 보면 두 분은 물욕에서 이미 초탈한 분들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욕심을 부리고 억지 고집을 피워도 그리 오래 못가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오랜 세월 박물관이 존재하고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까닭은 박물관에서 사람들은 사람들이 꼭 알아야하는 자명한 진리, 즉 이세상이 좋은 사람, 좋은 세상이 아니라면 사람도 세상도 의미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장은 욕심과 물욕이 누구보다 큰 분들이다. 그렇다고 자유를 얻기 위해 소장 자료를 나눠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자유를 얻어야하며, 김홍신 선생과 홍갑표 관장은 이를 위해 나누기를 강조했다. 나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며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또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 당당하게도 한다. 마음은 평온해지며, 샘물처럼 행복도 솟아난다.

박물관장에게 있어 소장품은 하나하나가 자식 같을 존재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크고 작은 소장품은 하나같이 귀중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을 빌지 않더라도 소장품이 많은 박물관장은 하루하루가 걱정이다.

그러나 소장 자료를 통 크게 개방하고 공익적 자산화를 할 수 있다면, 그 걱정은 반으로 줄게 되며 자유와 보람도 함께 얻을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인문학이 지향하는 사람중심의 목적과도 부합한다. 소장품의 노예가 되어 노심초사하는 관장님들을 현장에게 더러 보게 된다. 이제 관장을 비롯해 사람이 중심이 된 박물관이 되었으면 한다.

지난주 지인이 박물관을 하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나눌 준비를 충분히 한 후 박물관을 해도 늦지 않다. 는 말 밖 엔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