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상쾌한 개관 이후 씁쓸한 뒷맛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상쾌한 개관 이후 씁쓸한 뒷맛
  • 이은영 편집국장/최영훈 기자
  • 승인 2013.11.2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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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논란에 미술계 강력 규탄…“정치담론에만 빠져” 지적도

지난 13일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두고 연일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미술계의 오랜 숙원이 한국 미술계의 큰 흐름을 주도할 서울관 개관으로 해소되는 듯 했지만, 전시 작품 철수를 두고 외압 의혹이 불거졌고 특정대학 출신 작가의 작품 편중 현상이 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서울관 개관이 한국 미술계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안임에도 전시 작품이 그 상징성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일부 전문가의 비판도 존재한다.

이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미술협회 등 미술계 단체가 모여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사퇴까지 요구하며 사태가 커지고 있다.

서울관 개관으로 미술계 오랜 숙원 풀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한국 미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1986년 지어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교통의 불편함과 지리적 위치 등으로 대중과 소통을 해야 하는 미술관의 특성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2009년 서울관 건립이 결정된 지 4년만에 서울관이 완성되면서 과천관·덕수궁관·청주관(2015년 완공 예정) 등과 함께 한국 미술의 허브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 국립현대미술관 전경

개관에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대형 화재, 종친부 건물 돌담 복원 논란, 인력 채용문제 등 부침을 었으나, 지난 13일 서울관이 개관했다. 서울관은 부지 27,264㎡, 연면적 52,125㎡, 지하3층·지상3층(높이12m)의 규모로 옛 기무사 터에 지어졌다. 총사업비 2,460억원이 소요된 서울관은 총 8개의 전시실 외에도 미디어랩·영화관·멀티프로젝트홀·세미나실 등 다양한 문화시설을 갖춰 한국 미술의 허브로서 위용을 뽐냈다.

시민들 발길 이어지며 첫 출발은 상쾌

개관 이후 시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개방 첫날에만 4000명 가까운 관람객들이 다녀갔으며 야간 개관일에도 줄이 끊이지 않았다. 일주일 간 2만 명이 다녀가며 서울관과 개관 기념전을 관람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을 축하하는 말을 전하고 있다.(제공 청와대)

문화융성을 정부 주요 정책과제로 삼은 박근혜 대통령 또한 “서울관이 인사동과 북촌, 삼청동의 화랑가와 어우러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명소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며 서울관 개관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12일 축사를 통해 “서울 도심 한 가운데, 담장도 없이 만들어져서 시민들이 지나가다 쉽게 들릴 수 있고 문화와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돼서 더욱 뜻깊다”며 “이곳에서 문화융성시대를 여는 첫 걸음이 시작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이 외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물론, 정치권·학계·시민들 모두 서울관 개관을 축하하는 뜻을 표했다. 지난 12일 개관식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중국 국립미술관장·일본 모리미술관장·한국의 문화예술계 인사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역사적인 자리를 함께 했다.

관람료 책정, 편의시설 부족 아쉬워

그러나 서울관이 개관한 뒤 일부 개선점에 대한 목소리도 들렸다. 관람료·편의시설 부족·안전문제 등에 대한 문제제기다.

편완식 세계일보 미술전문기자는 19일자 기사를 통해 “공간이 너무 획일적으로 크고 층고가 높다는 점이 눈에 거슬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치미술 등 현대미술의 대형화 추세를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소형 작품 전시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며 “건축과정에서 미술인의 의견이 수렴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예를 들며 “미국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 못지않게 기능적인 면도 중요시해서 크고 무거운 현대조각부터 작은 드로잉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19개의 전시실이 각각 다른 모양과 크기로 설계됐다.”며 서울관에 대해 향후 수정과 보완을 촉구했다.

관람료 책정에 대한 아쉬운 소리도 들린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기부금 형식 입장료를 차용해 관람객들에게 비용 책정의 주권을 돌려주자는 의견이다. 현재 서울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5개를 관람하려면 1만 4000원이 든다. 상설전시는 무료로 개방하지만 기획전시는 유료이기 때문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우, 관람객이 기부 형식으로 자유롭게 관람료를 낼 수 있다.

▲ 미술관 실내에서 바라보이는 옛 종친부 건물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관람객 의견도 대두된다. 최근 서울관을 찾은 주부 김모씨는 “서울관의 겉모습은 웅장하고 멋졌다”면서도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확 트인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삭막해 미술관같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유리와 콘크리트 벽돌로 된 건물들에 조경이 완벽하게 구성되지 못한 점과 수변공간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 휴식공간으로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건축팀과 상의해서 추진할 문제”라며 “현재 대답할 수 있는 건 이정도 수준”이라고 답했다.

외압? 특정대학 편중? 개관 이후 연일 게속되는 잡음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전시 작품 선정과정과 작가들의 출신 대학을 놓고 벌어지고 있다.

서울관은 개관과 동시에 5개의 기획전을 통해 야심찬 출발을 알렸다. 서울관은 친근한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대중의 삶과 예술을 밀착시켜 진정한 문화 융성의 발원지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와 비전을 담아 개관 기념 5개의 특별전을 마련했다.

국내외 7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특별전은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마련한 ‘연결_전개’, 다양한 장르 간 소통과 융합의 플랫폼이 될 서울관의 미래를 상징하는 ‘알레프 프로젝트’,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제시하는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 서울관 곳곳의 현장 맞춤형 대형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 서울관 건립과정을 사진매체를 통해 다채롭게 담아낸 ‘미술관의 탄생’ 등으로 구성됐다.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50년간 수집해온 소장품 7000여 점 중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59점을 엄선해 보여주고 있다. 서용선·장화진·신학철·민정기·김호득·황인기·김홍석·전준호·오원배 등 작가의 작품이 준비됐다. ‘연결-전개’는 국외 유명 미술관 7곳의 전시기획자의 추천을 받은 작품들로 엄선, 서울관이 표방하는 국제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현장설치 프로젝트’에서는 개관 전부터 화제를 모은 대형 전시공간인 서울박스를 통해 서도호 작가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등이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의 탄생’은 서울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2009년부터 2013년도까지 5년에 걸쳐 서울관이 변해가는 모습을 노순택·양아치·백승우 작가가 사진·영상·음향 등으로 담아냈다. ‘알레프 프로젝트’는 서울관의 장르간 융합을 구현한 작품들을 모아 서울관의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 자이트가이스트 전에 전시된 작품 '장화진_1996.8.15이후_2004-2013_유리상자,중앙청모형,추와실'

“연결-전개, 개관 기념전이란 취지 살리지 못해”

그러나 외압으로 인한 전시작품 철수 의혹이 불거지고, 큐레이터와 특정대학 출신 작가의 작품들 비중이 확연히 높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개관 특별전이라는 의미가 옅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미술계에서는 ‘연결-전개’전을 놓고 거창한 기획 취지에 비해 내실이 부실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전시는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을 연결하고 그 미술관들과 지속적으로 협력하고자 하는 서울관의 염원을 담아 국내외 큐레이터들이 작가 7인의 작품을 골랐다.

최은주 현대미술관 학예팀장을 비롯, 리차드 플러드(미국), 앤 갤러거(영국), 유코 하세가와(일본), 이숙경(한국), 베르나르트 제렉세(독일), 푸자 수드(인도) 등 큐레이터 7명이 타시타 딘(영국), 킴 존스(미국), 아마르 칸와르(인도), 마크 리(스위스), 리 밍웨이(대만), 키시오 스가(일본), 양민하(한국) 등 작가의 작품 14점을 소개하고 있다.

▲ '연결-전개'전에 소개된 킴 존스의 '양동이와 부츠가 있는 머드맨 구조물'

그러나 이미 유명해진 작가들의 기존 작품을 약간 조정했을 뿐이라는 지적이 불거졌다. 한겨레 신문과 인터뷰한 한 미술평론가는 “굳이 국외 큐레이터한테 맡길 필요가 있었을까”라고 아쉬워했다. 국외가 아닌 우리 학예사들의 눈으로 떠오르는 작가들을 찾아내 서울관의 미래를 얘기하며, 주제를 잡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외압 의혹 제기 임옥상 작가 “들은 대로 말한 것”

가장 많은 얘기가 들리는 것은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체 소장품 7000점 가운데 ‘시대정신’에 걸맞는 59점을 엄선한 전시로 미술관의 예산, 구입자의 시각, 전시 기획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정영목 서울대 교수가 기획한 이 전시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한국현대미술의 면모와 방향성을 시대적으로 파악하고자 기획된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국내 작가 39명의 작품을 골랐다.

그러나 개관전부터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을 놓고 외압에 의한 작품 교체 의혹이 불거졌다. 서양화가 임옥상 작가의 ‘하나됨을 위하여’와 이강우 화백의 ‘생각의 기록’ 등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었는데 외압으로 인해 빠지게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청와대 직원들이 이 작품들을 (박근혜 대통령 방문 전) 먼저 훑어본 뒤 몇몇 작품에 대해 “곤란하다”는 말을 했고, 이후 전시목록에서 없어졌다는 얘기다.

임옥상 작가는 “믿을 만한 미술계 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며 “정영목 교수에게도 이 점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도 “내 입장은 기존 언론에 나온 것과 같다”고 종전의 주장을 이어갔다.

임 화백의 '‘하나됨을 위하여’는 통일운동가 고 문익환 목사가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을 넘어서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강우 작가의 ‘생각의 기록’은 1980년대 암울한 시대상을 상처가 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인물 표정들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다.

▲ 임옥상 작가의 ‘하나됨을 위하여’

전시기획자·현대미술관 “그런 일 없다”

하지만 전시를 기획한 정영목 교수와 현대미술관 측은 외압은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이다. 정 교수는 “분단 그림이 많아 다른 작품과의 조화와 색감을 고려해 내려지게 됐다”며 “작품 선별과 배치는 관장과 수시로 논의했고, 청와대에서 작품을 떼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18일 보도 자료를 통해 적극 반론에 나섰다. 미술관은 “작품 120 여점이 출품 예정작품으로 전시장에 반입된 뒤, 공간배치를 고려해 60여 점을 전시됐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최종 선정된 작품 60여 점은 일제 강점기와 전쟁, 산업화의 과정, 경제발전의 명암, 서구 문화의 유입과 한국화를 위한 노력,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이야기들을 그 시대의 작가적 관점에서 풀어낸 작품들”이라며 “전시는 기획자의 초기 기획의도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술관은 외압에 대한 의혹을 재차 부인하며 “기자의 추측에 의한 성격이 강하고, 사실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일부 작가들의 대화내용이 와전되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언급됐다”며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추측성 기사에 대해 엄중 항의하며 시정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임옥상 작가 “미술관에 이상한 분위기 감지되면 진실 밝힐 것”

이같은 내용에 대해 임옥상 작가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26일 통화에서 언론 보도 이후 상황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임 작가는 “언론에 나온 얘기와 같지만 정영목 교수는 내가 전해들은 말과 다른 말들을 한다. 이후 그와는 연락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미술관 관장과 두 번 통화하고, 만나기도 했다. 정 관장도 외압은 없었다고 말했다”며 “나는 어차피 윗선 얘기는 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진행돼봤자 문화작품에 대한 검열행위가 근절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측은 더 이상 확대시키고 싶지 않은 듯한 언지였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그는 미술협회 측의 대응에 대해 서운한 마음도 전했다. “규탄대회를 연다고 하는데 이런 외압 얘기는 없이 다른 부분들만 강조한다고 하니 논지를 벗어난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든다”며 “관장 퇴진 요구는 핵심을 벗어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임 작가는 책임 추궁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외압 의혹을 전해준 미술관계자가 누군인지 캐내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혹시라도 추후 미술관측에서 그 인물을 색출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거나 그런 움직임이 보인다면, 모든 사실을 밝히며 진실을 알릴 예정”이라며 추후 사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한편 정 교수는 같은 날 통화에서 “현재 집안 사정 때문에 통화가 어렵다”며 “기존 언론에 나온 내용과 같다”고 답변했다.

서울대 동문전? 특정대학 출신 편중 지적에 사태 커져

이와 함께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을 둘러싸고 특정대학 출신 작가들의 작품에 치중됐다는 지적도 많다. 일각에서는 “서울대 미대 동문전 같다”는 말도 들릴 정도다. 39명 작가중 82%인 32명이 서울대 출신 작가로, 전시기획자 정 교수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동문들이 대부분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비 서울대 출신 작가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획자가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서 작가들이 특정 학교 위주로 선정되던 과거 사례들이 또 답습됐다는 얘기가 제기되고 있다.
한 중견작가는 "미술계에서 유독 '라인 타기'가 심한 것 같다"며 "이번 사태를 떠나서 넓게 봐도 미술계 전반에 걸쳐 학연을 중시하며 타 학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외부 기획자의 전시 자율성을 존중했다”며 문제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술계, 규탄대회 통해 미술관장 사퇴 요구

▲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이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급기야 범 미술계가 행동에 나서며 실력을 행사했다. 11월 초 ‘문체부 갑질 논란에 따른 산하기관장 사태’ 때 연극계가 뭉친 것에 이어 문화예술인들이 11월에만 두 차례에 걸쳐 들고 일어난 것이다.

서울관 사태 관련, 한국미술협회·민족미술협회·한국전업작가협회·서울미술협회 등이 범미술인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규탄대회를 열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00여 개 미술단체가 모인 대책위원회는 27일 서울관 앞에서 정형민 관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규탄 대회를 열었다.

대책위는 미리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시민을 외면한 채 서울관을 특정대학 미술관의 분원으로 전락시켰다”며 미술관과 정교수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이어 “미술인 모두를 경악케 하는 참담한 상황을 연출했다"며 "20여 년 가까이 서울관 개관을 열망해온 미술인의 바람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오직 조직 이기주의적 독선과 불통의 폐쇄 행정만 난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관 개관식에 미술협회 등 주요 미술단체들이 초대받지 못한 것도 논란이 됐다. 미술계가 오랫동안 힘을 합쳐 서울관 개관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최성규 공동대책위원장은 “협회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 개관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개관식에 단 한 명도 초대받지 못했다"며 “미술인 대다수를 무시하고 미술계의 화합을 저해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최 위원장은 "미술관 측에서 초청장 문제는 행정상의 오류라 해명했지만 핑계"라며 "특정 대학 동문전 열어주자고 50만 미술인이 17년을 고생한 것이 아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개관 기념전의 기획자 및 작가선정 과정도 투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정 학맥에 치우쳤다며 이는 국민화합과 문화융성을 정책기조로 내건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도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정 관장 및 관계자의 사퇴를 외쳤다. 한발 더 나아가 “예술에 의한 국민 대통합정신을 외면한 개관전을 철회하라”며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사과까지 요구했다.

육근병 “국립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고른 기회 주어져야”

미술계 원로와 중견작가들도 서울관을 둘러싼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 육근병 작가
제 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육근병 작가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전화를 통해 “작가로서 한국 미술계를 상징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아 속상하고 안타깝다”며 국립현대미술관에 ‘국립’이라는 위상에 걸맞는 활동을 요구했다.

육 작가는 “특정대학 출신 작가들의 작품으로 몰렸다는 얘기는 제외하더라도 한국 미술의 상징인 국립미술관은 사설 미술관과는 달리 국립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며 “신진과 중견, 원로 작가들의 작품을 고루 안배해서 한국 미술작가들에게 기회를 줘서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재조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자신과 현대미술관과의 인연을 얘기하며 “나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전을 통해 큰 기회를 얻은 사람인데,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작가들의 업적을 기리고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종상 “첫 전시부터 불평은 시기상조…예술인다운 너그러움 필요한 때”

한편 5000원권과 5만원권 지폐 영정 등을 그린 한국화가 이종상 화백은 미술계의 원로로서 미술계에 당부의 뜻을 전했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이 화백은 “서울대 작가들로 작품이 몰렸다고 하는데, 서울대에 뿌리를 두고 깊게 관여해 온 나도 이번 전시에 참여하지 못했다”며 보다 성숙한 비판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이 화백은 서울관이 개관과 동시에 논란에 휩싸인 것을 두고 안타까워하며 “첫 전시부터 많은 비판이 쏟아지는데,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예술인들이 너무 정치인들처럼 일희일비하고 있다”고 차분한 어조로 강조했다.

그는 이어 “예술인으로서 순간순간 불평을 쏟아내는 것보다는 작품을 하듯 너그럽게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함께 미술계와 미협을 향해 “서울관이 개관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규탄대회 등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성숙하고 인내하는 자세를 요구했다.

“단조로운 구성이 문제…정치적 담론만 다루는 언론도 반성해야”

한편,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이 서울관 개관 특별전으로서 구성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술평론가인 이인범 상명대 교수는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을 두고 서울관 개관이라는 의미에 어울리지 않는 기획이라고 총평했다. 이인범 교수는 “수십년전 베를린에서 전시됐던 자이트가이스트란 이름과 개념을 현재, 그것도 서울관 개관 기념전에 착용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기획전시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의 한계”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또 “개관전을 상주 큐레이터가 아닌 객원 기획자에게 맡긴 미술관이 더 큰 문제”라며 “미술관 운영을 큰 틀에서 볼때 전체적인 인선과 조직구성에 문제가 있어 이 부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술평론가인 강수미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는 “새로운 맥락을 보여주기에는 전체 구성력이나 작품 큐레이션이 단조롭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미술평론가 강수미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강 교수는 “시대정신이란 개념은 헤르더에서부터 헤겔의 역사철학으로 전수돼 20세기에 굉장히 유행한 것”이라며 “20세기 말부터 시대나 거대 역사에 대해 회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던 것으로 2세기가 다 되어가는 소장 품들을 21세기 개관 특별전에 전시할 때는 맥락이 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고는 “200년 전 개념어와 그 의미를 그대로 차용할 게 아니라, 현대에 맞게 변형했어야 한다”며 “새로운 맥락을 보여주기에는 전체적으로 구성력이 아쉽다”고 전했다.

또 특정대학 편중 주장에 대해서는 “기획력의 부재로 인해 불거진 현상”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특정대학 출신 작가의 작품으로 100% 기획되더라도, 개념을 충실히 이행하고  미술관의 비전을 보여줄 만한 좋은 전시로서 미학적 성취가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 이런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 교수는 “전시가 단조롭고 경직돼 있는 게 문제”라고 재차 강조했다.

강 교수는 이와함께 전체적인 사태를 종합하며 “본질은 짚지 못하고 겉핥기만 하고 있다”며 언론과 관련 인물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강 교수는 “언론들이 역학관계나 외압 의혹에 대해서만 크게 다루고, 정작 전시에 대한 얘기를 다루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라며 “전문가나 관계자 말고 관람객들에게는 어느 대학 출신의 어떤 작가인지는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닌데도, 이런 부분만 강조하며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이런 외압 의혹이나 작가 편중 등 정치적인 담론에서 벗어나 미술이나 미학에 관한 얘기들이 언론을 통해 거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