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행 -105]제국주의 역사의 아이러니, 야나기 무네요시의 일본민예관
[박물관 기행 -105]제국주의 역사의 아이러니, 야나기 무네요시의 일본민예관
  • 이정진 Museum Columnist
  • 승인 2013.12.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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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일제에 의해 힘없이 국권을 박탈당한 우리 민족의 미(美)를 애처로움 속에 비치는 아름다움, 즉 기댈 곳 없는 쓸쓸함이라하여 ‘비애미’라 지칭한 이가 바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이다.

일제 강점기에 비애미라는 말에 울분이 섞인 비판의 목소리도 당시 크게 일었으나 한편으로는 그를 동조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일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의 정당성을 표하며 조선 총독부를 비판하는 글을 기재,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우리 문화가 손실될 것을 염려해 광화문 철거에 강력히 반대한 일본의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다.

1924년 경복궁내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하는 등 일찍이 우리민족 문화의 보존에 노력한 공로가 인정되어 1984년,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그가 한 발언 및 행적들에 대한 옳고 그름은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나라를 빼앗긴 침통함 뒤로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우리 민예의 가치를 발견하고 조선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등 우리 민족문화유산 보존에 일조를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를 동양 민예연구가로서 마땅히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견해에는 동조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일본 동경 시부야역(渋谷駅)에서 시모키타자와(下北駅) 방면 전철을 타고 두정거장을 가면 코마바-토다이메(駒場東大前駅)가 나온다. 이곳에 일본민예관과 동경대학 코마바 제2캠퍼스, 일본근대문학관이 있다. 기차역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 골목 안, 간간히 붙어있는 표지판을 따라 걷다보면 고즈넉한 2층 목조주택이 나타난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설립한 일본 민예관이다.

1936년 설립된 이곳은 조선민족미술관에 있던 작품을 옮겨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베트남, 필리핀의 민예품과 멀리는 아프리카 것까지 동서양의 다양한 생활 공예품 17,00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여 타 박물관들과는 다르게 들어서는 현관에서는 신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하는 수고를 관람객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바로 동양문화의 한 단편으로 이 역시 민예적인 요소라고 보여 진다.

입장하는 순간부터가 동남아시아 특유의 입실, 좌식문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남의 집에 방문한 듯 한 기분과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1층 중앙에는 계단이 날개를 펼친 것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져있고 갈라진 좌우측에는 적당한 크기의 전시실에는 각국의 민예품이 국가별 또는 용처별로 배치되어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나무 바닥이 삐꺽이는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따라 울린다. 다소 긴장되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우측 편에 원적지에서 유폐된 채,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서글픈 우리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곳이 민예관의 백미(白眉)인 조선시대 도자 전시실이다.

민예관에는 조선시대 도자 총1,6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나 주로 50점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간혹 관요사기도 눈에 띠나 민가의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서 피어난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민예품에서는 소소한 소박미가 도자나 회화에 함께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 모양과 종류, 각자 가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어 친근하며 애처롭다. 무엇을 담았는지 누르스름하게 물이 든 백자각주병과, 경건한 마음으로 음식을 담아 올리던 백자 제기, 선비들의 올 곧은 정신을 잘 드러내고 있는 연적 등 모든 것들이 우리민족의 품성을 담아내고 있어 애틋하다.

또한, 목재로 구성된 전시실바닥과 진열장, 전시실 중앙에 놓인 의자는 민예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고 있다.

문자도(文字圖) 병풍과 그 앞에 놓인 백자 대호 두 점이 우측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나머지 세면에는 무작위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는 여러 점의 도자가 있다. 특히, 조선백자진채호랑이호는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수작이다. 여러 조각으로 깨진 것을 수리해 복원한 모습은 일제에 의해 상처받은 우리민족의 처지 같아 서글프다. 전면에 그려진 호랑이는 고개를 떨 군 채 어깨마저 구부리고 있어 고향을 잃은 슬픔을 말해주는 듯 애처롭다. 언제나 고국의 품에 안길 수 있을까?

이외에도 일본의 도자들을 소개하는 전시실에선 일본 민가에서 쓰이던 그릇들과 도자기 등 민예품들이 전시되어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름과 겨울에는 도자의 목록이 다른데, 여름엔 코발트를 발라 푸른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도자들을, 겨울엔 진하고 어두운색과 따뜻한 색을 쓴 도자들은 전시하여 관람객들에게 시각적으로 계절감을 느끼게 해준다. 다른 전시실 한 곳엔 염직된 일본 오키나와의 의상이 구김 없이 반듯하게 펼쳐져 있다, 화려하고 복잡한 기모노와 달리 밋밋한 듯 소박한 무늬와 차분한 색상이 민가의 소소한 하루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민예관, 먼 세월을 타지에서 보내왔지만 바래지 않는 조선의 빛은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 내고 있다. 한때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예술품을 알아준 것이 지배국이었던 일본의 국민이라는 것이 우리로써는 못내 찝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민예관에선 조선의 민예품들 모두를 소중히 다루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나기 무네요시로 인해 우리의 민예의 아름다운 가치가 되살아나고 조금씩이라도 세계에 알려진다면 침략국 일본인이 아닌 예술가 혹은 수집가로써의 그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일본민예관은 한일 간의 겪었던 역사의 아이러니와 함께 우리 문화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일본민예관 The Japan Folk Crafts Museum , 日本民藝館
(www.mingeikan.or.jp)참조
위치_153-0041 東京都目黒区駒場4-3-33/ 문의_03-3467-4527 

이정진 Museum Traveler(wumolong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