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사단 독서경연대회-제9회 ①
제7사단 독서경연대회-제9회 ①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3.12.0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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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 -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일병 김수철

“장병들이 책과 친해지게 합니다”

책과 친해지면 꿈과 목표를 갖게 되고, 꿈과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는 육군 제7사단(사단장 구홍모) 칠성부대가 펼치고 있는 <Army Book Start>운동의 취지다.(본지 5월8일자 인터뷰-이형주 육군 제7사단 감찰참모, 참조)

장병들이 군 복무 기간이 단순히 국가의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시간으로 자신의 인생을 허비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육군 제7사단의 <Army Book Start>운동은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군 복무기간동안  독서의 즐거움을 깨우치게하고 더 나아가 ‘청춘’의 장병들이 책을 통해 사유의 폭을 넓히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Army Book Start>운동은 책을 읽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후감을 통해 글쓰기 훈련은 물론 독서를 위한 동기유발과 군 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도 선물한다.이형주 감찰참모의 제안으로 시작된 <Army Book Start>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독후감 경연대회는 지난 2010년을 시작해 장병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 9회 독후감 경연대회에는 일선장병을 비롯 군 간부들이 함께 참여해 총 수백편의 독후감이 출품됐다.이 중 엄정한 심사를 거쳐 수상작이 선정됐다. 본지<서울문화투데이>는 육군7사단의 <Army Book Start>운동을 지지하며 그간 책보내기를 통해 후원을 해오고 있으며 이번 제 9회 독후감 대회 수상작들을 차례로 게재키로 한다. -편집자


수상자는 다음과 같으며 수상자들에게는 소정의 포상이 주어진다. 9회째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 최우수 :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일병 김수철

▲ 우 수 :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상병 서제현, 5연대 3대대 10중대장 대위 박민석

▲ 장 려 :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일병 임수종,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일병 김소중,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상병 이지학

▲ 입 선 : 본부근무대 경비소대 상병 이경서,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상병 김용준, 헌병대 소위 백승태, 8연대 3대대 본부중대 병장 이형석

 


<최우수작>

별을 보며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 사기(史記)를 읽고

본부근무대 참모소대 일병 김수철

 아버지, 여기 화천의 밤하늘에는 오늘도 별이 꽃무리처럼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야간 경계 근무하러가는 늦은 밤길에 만날 수 있는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옛 시인들이 별을 찬미한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되곤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넘어서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무한한 공간에서 조화롭고 법도 있게 운행하는 별들을 보며 저는 인간세계를 관통하는 원리나 법칙, 더 나아가 ‘역사’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세가」30편을 지은 이유를 “이십팔수는 북극성을 돌고, 서른 개의 바퀴살은 한 개의 바퀴통을 향하여 끝없이 돈다. 보필하는 팔다리 같은 신하들을 이에 비유하여 충신으로서 도를 행하고 군주를 받드는 모습을 삼십 세가로 지었다”라고 하였습니다. 

▲ 일병 김수철
이럼 점에 비추어 옛 선인들은 하늘과 별의 조화를 동경하여, 하늘을 무오류의 지극한 도(道)로 삼고 이를 인간사회 모든 것에서 본받고자 하였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저는 2013년 4월에 군입대한 이후로 규칙적인 생활과 제7보병사단의 자기계발 시스템 덕분에 풍부하고 다양한 독서를 하고 있지만 유독 손에 잡히는 건 역사책이었습니다.

그간 독서목록을 되짚어보니 27권의 독서 중 11권이 역사책인 점에 비추어봤을 때 무의식적으로도 역사에 관하여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 저는 별을 보며 역사를 떠올린 것일까요? 왜 저는 사마천의 ‘사기’가 생각났을까요?
 
 사마천이 밝히듯 역사의 가치는 지극합니다. “위로는 도를 밝히고 아래로는 인간사의 기강을 가리고, 의심나는 바는 구별하고 시비는 밝히며, 결정하지 못한 것은 결정하게 하며, 망한 나라의 이름은 보존하고 끊어진 세대의 후손을 잇게 하며, 모자란 곳은 메워주고 못 쓰게 된 것은 다시 일으켜 세운다” 는 것입니다. 매우 명쾌한 평가이지만, 군대에 복무 중인 저의 특수한 상황까지 설명해주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저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덧붙일 수 있는 한 가지는 역사는 저에게 크나큰 “위로”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기’에는 인류의 지혜의 정수가 담겨있기에 많은 명문이 나오지만, 특히 “인패위성(因敗爲成)”이라는 말은 제 주변의 공기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런 문구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시듯이 저의 20대는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거듭된 사법시험의 낙방으로, 가족들에게는 내색하지 못하였지만 제 영혼은 피폐해져갔었습니다. 체력도 고갈되어 어깨통증이 심해져서 하루에 몇 시간 못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피가 마를 듯한 긴장의 순간과 영원과도 같았던 불면의 밤도 아팠던 기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사기’에 나오는 많은 군상들, 자신이 품었던 이상을 성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모습이 제겐 많은 위로를 주었습니다. 특히, 어려운 시대에 굴복하지 않고 영웅적인 인내력으로 발분하여 한 계단씩 성취하는 모습이 제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실패를 딛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역사를 통해서 얻었다 생각합니다. 장제스를 물리치고 베이징에 입성한 마오쩌둥의 가방에는 ‘사기’가 들어있었다는 점도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봅니다.
 
 별을 바라보며 사마천의 ‘사기’가 떠오른 또 한 가지의 이유는 바로 “아버지”입니다. 사마천은 정쟁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개인과 가문의 치욕을 목숨을 잃는 것만큼이나 두려워하던 시대였기에 사마천이 궁형을 택한 것은 힘든 결정이었을 겁니다. 사마천은 “어떤 이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이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라는 말로 해명하려 하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기에 부족해 보입니다. ‘치욕을 피하고 목숨을 내놓자’는 생각이 한 켠에 떠오를 때, 그는 아버지를 떠올렸을 겁니다. 평생을 걸쳐 사관으로서 전심전력한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 본인이 못다 한 숙명을 완수하라는 아버지의 유훈이 떠올랐을 겁니다. 아버지가 이룩한 성과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마천 이었기에, 사마천은 선택이 망설여질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치욕을 인내했을 것입니다.

사마천이 아버지를 지극히 여기는 마음이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여기 화천에서 군복무하는 저를 감화시켰습니다. 아버지,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있어 별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를 항상 바라봐 주시고 저에게 지침이 되어주시지만, 별처럼 아스라이 멀리 떨어져있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십 수 년 간 중국에서 일하셨기에 공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거리가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 되돌아보니 우리 가정의 가운의 성쇠도 계절의 운행처럼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계절의 운행에 빗대어 춘추(春秋)라 말했던 것처럼, 우리 가정에도 눈부신 봄이 있었고 시린 겨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이역만리 중국에서 십 수 년 간, 혼자서 가족의 생계와 회사 직원들의 안위를 짊어지시기에 얼마나 고되셨습니까?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그 어떤 거대한 흐름에 내맡겨져 회사의 정리와 중국법인 철수를 결심한 그 시린 겨울밤에 혼자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사기’를 읽노라면, 엄청난 분량의 사료와 풍부한 서술에 놀라곤 합니다. 자료의 집적과 체계화가 어려운 당대의 열악한 상황 하에서 이러한 대 작업을 해냈다는 것이 경이롭다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고된 작업 가운데 인간의 필연적인 한계를 작자인 사마천은 절감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사마천은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수없이 스스로 되물어 보았을 겁니다.

사료를 정리하다 어마어마한 양에 치일 때면, 글을 적다가 문장이 나오지 않을 때면 잠시 책을 덮고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아버지를 불러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사기’는 사마천 혼자만의 작품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마천은 ‘사기’에서 각 편 말미에 “태사공왈”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버지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역사를 저술하고 있는 주체가 아버지 그리고 자신으로 일체가 되었기에 ‘태사공’은 아버지를 지칭하는 말이 될 수도 있고, 그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받고 이를 이어가는 사마천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기에 혼자서 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보잘 것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백년 남짓의 생명시간 틀 속에서 우리가 천년을 고민할 수 있는 건, 생명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때문뿐만 아니라 이전세대의 유산과 큰 뜻이 다음 세대에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위대해 질 수 있는 것은 오롯이 둘 이상의 인간의 합심 탓이며, 생명과 사명을 이어받은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야말로 지극히 숭고한 관계임을 ‘사기’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혼자가 아니었고 아버지도 혼자가 아니십니다.

중국 땅에서 시린 겨울을 인내하시던 아버지에게는 제가 있었고, 고시촌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던 저의 뒤에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작년에 있었던 저의 시험합격의 결과가 영광이라고 한다면, 그 영광의 주인은 바로 부모님이십니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점, 일 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는 점을 용서해주십시오.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처럼, 역사 속 수많은 인물들은 제게 어떠한 영감을 줍니다. 자신의 전공을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 앞세워 옛것을 배우지 못하고 패왕의 대업이라면서 힘으로 천하를 굴복시키려한 항우의 종말을 통해서도, 합병을 할 때의 방법과 취한 다음 지키는 방법을 달리하지 못해 단명한 진시황의 진나라 왕조를 통해서도 큰 가르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세계 천만가지 변화 중 정수만을 짚어내어 근원을 밝히는 “역사의 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를 통해서만이 큰 시야를 가질 수 있고, 사마천이 말했던 것처럼 일의 처음과 끝의 변화를 보고 존망의 낌새를 살피는 지혜를 체득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기에 인용된 ‘과진론’에서는 “군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는 상고시대를 보고 현재에 시험하였다. 인정과 사리를 참작하여 성쇠의 이치를 살피며, 권위와 객관적 형세가 적합한지를 헤아렸다. 또 순서에 맞게 거취를 결정하고 때에 맞게 변화하였기 때문에 오래가고 사직도 편했던 것이다”하여 역사의 가치를 되짚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왜 별을 보고 역사를 떠올렸는지, 왜 책을 선택할 때 역사를 고집하는지를 ‘위로’, ‘아버지’, ‘역사의 힘’ 세 단어로 해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오늘 밤에도 별은 무심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겪는 많은 일들이 짧게 보면 고통일 수 있으나 길게 보면 기쁨이요 큰 성취의 양분이라 생각합니다.

고난과 성취는 한 형제와 같이 얽혀있는 것임을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된 훈련과 단절된 생활이 저에게 ‘갈증’을 주었지만, 이를 통해서 주변 많은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마치 수많은 밤 지나쳐온 저 별들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여기 화천에서 사무치게 감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아버지, 그렇기에 저는 저 별을 보고 시정(詩情)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역사를 떠올리고 더 나아가 세상을 구할 지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북극성 주위를 법칙에 따라 운행하는 수많은 별들처럼 사회의 시스템도 법도에 따라 운용된다면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저 별들의 조화로움을 노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역사를 궁구하여 옛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근원을 캐고, 진실된 독서를 통해서 나라에 보탬이 될 지혜를 찾아내겠습니다.

이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정진한다면 큰 의미에 ‘봉사’에도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는 충실한 군 생활을 통해서 저 자신을 더 갈고 닦아 나라의 큰 일꾼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것처럼 ‘큰 사람’이 되겠습니다. 앞으로의 저의 행보를 지금처럼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세요. 항상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표창수여식

<심사평>
우선 이 독후감을 작성한 필자의 필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문장의 완급조절능력, 문단의 구성, 적절한 비유와 표현 능력 등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이는 필자 스스로 밝혔듯이 평소 방대한 독서량에서 비롯한 듯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한다.

편지라는 독특한 형식을 사용해 풀어낸 필자의 이야기는 마치 과거의 아버님 전 상서를 연상케 한다. 깍듯하게 격식을 갖춘 필자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까지도 숙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필자는 역사의 가치를 ‘군생활의 위로’에서 찾았다. 역사 속 인물들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삶에 위안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힘든 순간마다 자신에게 위로가 되어준 아버지(부모님)를 떠올린다. 역사적 사실에 자신을 대입시켜 아버지와의 관계로 나아가는 필자의 능력은 가히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