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구의 음악칼럼]인상주의 음악 II
[정현구의 음악칼럼]인상주의 음악 II
  •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
  • 승인 2014.01.14 1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필자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노바아르테 음악감독)
인상주의 음악의 수법에는 강한 선적인 윤곽을 찾기가 힘들다. 즉 선명한 선율적인 움직임은 볼 수 없다. 이것은 표현하는 사상(事象)이 발산하는 분위기의 묘사에 머무르기 때문이며, 주로 편안하고 조용한 그리고 색채적인 화성적 수단으로써 묘사하여 감각적인 만족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그저 막연한 기분만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인상주의 음악하면 드뷔시와 그의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가령 그의 「가라앉은 사원 La Cathedrale engloutie」의 경우 그저 어렴풋이 몽롱한 색채를 보는 듯한 화성을 느낄 뿐이다. 이 작품 속에서는 사원에 메아리쳐 울리는 신도의 발소리를 들으며 종과 오르간의 음을 느끼고, 그리고 심안(心眼)으로 장엄한 고딕의 기둥을 바라보며, 반쯤 어두운 내부의 신지, 조용히 기도하는 신도의 속삭임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방관적인 인상이며 어디까지나 감각적인 묘사에 지나지 않는다. 체험의 묘사나 내면적인 경건함은 이 곡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인상주의적인 특색과 경향이 주로 그 수법 여하에 있다고 하면, 반드시 근대 음악에만 한하는 것이 아니고 벌써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에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이론가가 바흐나 베토벤의 작품 속에서도 인상주의적인 수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근거가 없는 일이 아닌 것으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에서의 ‘폭풍우’CML 첫머리는 인상주의의 선구적인 수법으로서 예를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19세기 말에서의 인상주의적 경향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초기시대의 작품이다. 작곡자는 전람회에 전시된 그림을 보고서 각 그림에서의 인상을 음악적으로 재현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무소르그스키는 아직 드뷔시 이후의 인상주의적 수법인 풍부한 색채감이 넘치는 음소재(音素材)의 사용법에 능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아노곡으로서의 효과는 드뷔시에 훨씬 못 미친다. 이 곡이 라벨에 의한 관현악 편곡으로 더 유명하게 된 것은 원곡의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이다.

음악은 문장이나 말과는 다르기 때문에 음악을 가지고 표제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토론의 여지가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소리나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음악으로 나타내는 것은 쉬우며 듣는 사람도 그대로 느낄 것이지만, 푸른 하늘이나 흰구름을 음악으로 묘사하는 것은 어렵다. 거기에 죽었다든가, 괴로워한다든가 하는 것을 음악으로 나타내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다.

즉, 표제를 가진 인상주의적인 음악에 대해서도 표제나 해설 등의 선입의식(先入意識)을 빌리지 않고 작곡자의 의도나 생각을 이해하는 일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비오는 정원」,「아마빛 머리의 처녀」등의 피아노곡에 대해서도 음악 그 자체에서 오는 환상 이 외에 그와 같은 표제적인 인상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먼저 표제를 주어놓고 그 음악을 들으면 여러 가지 그에 합당한 암시를 받아서 실제로 그러한 기분이 되는 것도 우리가 잘 경험하는 대로이다.

표제음악이 일반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크게 받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대중의 요구는 더욱 고전주의나 낭만주의의 절대음악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여기에 해설적인 표제를 붙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베토벤의 많은 명작에 대한 문학적인 해설이나,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에 대한 각곡마다의 시적(詩的), 환상적인 주해(註解)도 작곡자와는 관계가 없는 대중의 요구에 응해서 계속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