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천명(天命)’-이애주 춤의 양면성
[이근수의 무용평론]‘천명(天命)’-이애주 춤의 양면성
  • 이근수 경희대 명예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14.01.2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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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경희대 명예교수/무용평론가

이애주 춤 공연(2014,1,6~7, 아르코대극장)의 제목은 천명(天命)이다. <중용(中庸)>의 첫 문장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늘이 내린 본성이 천명의 본뜻이다.

이애주의 삶에서 60년이 춤과 함께였다면 춤은 그녀의 천명일 수 있고 춤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묻는 반복되는 질문에 대해 ‘춤추는 나를 찾는 일’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천명이 본성이라면 본성을 따르는 길이 도(道)요, 그 도를 닦는 일이 교육이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다섯 살 때 춤 길에 들어선 이력이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그녀가 지난 30년간 교단에서 춤을 가르쳤다는 사실 역시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천명 첫날의 공연은 완판 승무와 본살풀이, 터 벌림 태평으로 이루어졌다. 두 번째 날은 살풀이, 예의춤, 태평무, 승무로 구성된 1부 공연과 휴식시간 후에 터 벌림 태평이 2부공연으로 보여 졌다. 나는 둘째 날 공연을 보았다.

이애주는 한영숙류 살풀이춤에 이어 태평무를 추었다. 붉은 색 족두리를 쓰고 앞가리개가 달린 연두색 저고리에 자주색 고름, 황금색 끝동이 둘린 군청색 치마가 장중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작년 12월 말 한강극장(강동아트센터)에서 열린 우리춤연구회의 명무전에서 입었던 의상 그대로다.

무거워 보이는 의상과는 달리 태평무는 고요함을 바탕으로 부드러운 리듬과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재미있는 춤이다. 언뜻언뜻 들리는 버선발로 종종걸음 치는 발사위가 나이를 잊게 만들고 사슴처럼 가볍고 학처럼 우아한 율동이 태평무의 느낌을 잘 살려주었다.

▲이애주의 춤 '승무'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예능보유자인 그녀의 승무는 창작적인 성격을 가졌다. 무대 중앙에 커다란 북이 놓이고 좌우로 작은 북들이 여섯 개씩 일렬로 늘어서 있다. 흰 고깔과 흰 장삼을 입고 옷 깃 속에 북채를 숨긴 전통적인 승무의상에 감색 속치마가 내비치고 어깨엔 자주색 띠를 대각선으로 둘렀다.

무대 좌우에 정좌한 악공들이 가야금과 아쟁, 대금과 피리, 장구를 생음악으로 연주한다. 다른 한 쪽에선 꽹과리와 징소리도 울린다. 승무는 산사의 고요함과 여유로움을 반영하는 느린 춤이다. 이애주의 춤 역시 가볍고 경쾌한 독무로 시작된다. 무대 한 쪽에서 승무꾼들이 등장한다.

큰 북을 중심에 두고 좌우로 도열해있는 북을 하나씩 차지하고는 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무대엔 갑자기 생기가 넘치고 어느새 군무가 되어버린 춤은 빠르고 활기찬 춤사위로 바뀐다. 전통춤이 개량된 창작 춤으로 변해버린 느낌이다. 춤 앞에 먼저 보였던 산사의 영상을 포함해서 35분에 걸친 긴 춤이다.

살풀이와 태평무 사이에 예의춤도 끼어있다. 예의춤은 춤꾼들이 자기를 낮추고 하늘을 공경하는 예올림 춤이고 자연만물에 깃들어 있는 하늘의 뜻에 감사하기 위해 추는 춤이다. 흰 옷을 입은 9명의 춤꾼들이 등장해서 두 줄로 늘어선다. 절을 하고 앉았다 일어서고 몸을 돌리면서 본래 선 자리를 거의 떠나지 않은 채 제자리에서 춤추는 예의춤꾼들은 이애주가 대표로 있는 한국전통춤회의 문하생들이다.

휴식시간을 가진 후 2부 순서가 ‘터 벌림 태평’이다. 바람맞이 씨춤, 상생춤, 길닦음의 소제목들로 구성되었는데 춤 공연이라기보다 이애주의 진보적 춤 관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짙게 나타난 기획이다.

민주화를 외치는 데모군중, 이한열의 장례행렬을 찍은 영상들, 그 가운데 노제에서 춤추는 무용가의 모습도 보인다. 무대 한가운데 정화수단지가 놓여있고 소나무가지를 양손에 들고 죽은 자의 넋을 찾는 굿판이 차려졌다. 산자와 죽은 자의 상생을 기원하는 천 가르기 등의 이벤트성 장면도 이어진다.

전통춤공연에서 뛰어난 예술성에 매혹되었던 일반관객들에게 판이한 성격의 2부 공연이 보여준 이애주 춤의 양면성은 어떻게 비쳐졌을까. 답답한 현실에 대한 카타르시스일까 아니면 예상치 못했던 섬뜩한 체험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