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수첩 속에 기록된 추억의 전시<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Ⅰ>
큐레이터 수첩 속에 기록된 추억의 전시<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Ⅰ>
  • 이은주 갤러리정미소 디렉터
  • 승인 2014.01.26 1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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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큐레이터 토크 35

우리가 인식하지 않아도 시간의 유유한 흐름 안에 점유하고 있으며, 또 눈 앞에 사라지고 지나가는 시간이 완벽하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2013년이 지나고 또 다른 한해 2014년에 서 있지만, 우린 과거와의 꾸준한 연결고리를 스스로 찾게 된다.

최근 2013년 마지막을 보내며,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이 '현재의 시간성'이 절실하다는 소재를 다룬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도 시간은 흘러 사라지지만, 영화의 구체적인 스토리에서는 실제로 과거, 현재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사라져버린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기억하고 붙잡고 있는 만큼 과거, 현재, 미래를 공유할 수 있다. 2012년 마지막 한해를 보내며 기획했던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Ⅰ>전은 그 해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개최되었다.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Ⅰ 전시 장면

무엇보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있지만, 사라지고 소멸된다는 것은 단연 아쉽거나 지체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 또 다른 창조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전시였다.

이와 같이 본 전시에서는 '시간성'에 관한 내용도 중요하게 작용하였지만 이와 더불어 우리를 둘러싼 사람과의 관계와 이미지의 물질과 비 물질성, 공간과 탈 공간화 등의 다양한 논의들을 부각시켰다. 실제로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과는 자신의 작품이 물리적 공간에서 그 형태가 모두 사라져 가는 현상을 두고 현재의 시간성 훨씬 이후에 벌어질 소동에 관한 구성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다.

김주리, 신기운, 정재욱 등의 참여 작가들의 작업 오브제들은 모두 물리적인 요인으로 파괴되거나 소멸된다. 하지만 그 파괴와 소멸은 또 다른 영속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 전시를 통해 조금 더 근원적으로 예술에 대한 태도는 어떠해야 되는가를 궁극적으로 고민하게 하는 자리였다.

실제로 “죽은 작가의 모든 원작이 존재하지 않고, 단지 그 작업을 유한 매뉴얼만이 존재 한다는 것은 시대와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작업을 포장하는 재료만 달라지는 것이지, 작업의 중요한 개념과 영혼은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보다 더 영원한 예술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두고 5명 작가의 작업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을 주목하였다.

영원히 보존될 수 없는 흙 조각을 모태로 제작에 임하는 김주리(Kim Ju ree)의 작업은 세심하게 다듬어져 있는 집들의 형태와 밀집적 치밀함이 물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가는 상황을 연출시킨다. 다양한 자연재해를 통해 도시의 집과 건물 혹은 생태계들이 무너지고, 파괴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불가피하게 즉 예상하지 못했던 무너짐이 아닌 이미 짜여진 각본에 의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어쩌면 사라져버리고 소멸되어 버리는 자연법칙을 스스로 자각하여 우연히 인간에게 벌어지는 상황이 일시적 최악의 해프닝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물성을 가지고 있는 특정 오브제를 꾸준히 가루화시켜 그 물성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 역사성, 사회성, 제도성 등을 와해시키는 작업을 진행시키는 신기운(Shin Ki woun)의 작업은 그야말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환희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그 무너짐은 전쟁과 자연재해에서 오는 파괴와 폭력과는 상이한 맥락을 가지며, 소멸과 사라짐은 오히려 더 길어질 수 있는 시간성, 더욱 물질화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저항, 부재가 되면서 더욱 더 확연히 드러나는 특정대상의 현존성에 관한 이야기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청명한 하늘에 검은 연기가 자욱히 덮혀 건물의 형태가 한 순간에 붕괴되는 화면을 담아내는 목정욱(Mok Jung Wook)의 작업에서는 ‘건물이 무너진다’라는 어떠한 사실근거에 의해 전달적 측면보다는 그 무너지는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파도치는 것과 같은 검푸르면서도 현란한 연기들의 향연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러한 장면이 연출될 때 쨍쨍하고 푸르른 하늘의 장면이 하나의 샷으로 담겨져 있어 사라진다는 것에는 그 어떤 애틋함이 더해진다.

그래서 그의 무너지는 사진에는 붕괴함의 파괴성 보다는 로맨틱한 상황이 예상된다. 이러한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사진은 건물폭파 장면을 담고 있었고, 그 붕괴와 사라짐은 특정 그 무언가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찾아보기 힘들다. 관객은 그 건물이 어떤 건물이었는지, 또 어디에 위치하는지 모른다. 목정욱은 자신의 사진에서 그러한 컨텍스트를 모두 제거하여, 붕괴하고 무너지는 것에 대한 경의적 표명에 가까운 장면을 보여주며, 그러한 붕괴가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기 위한 약속임을 예상하고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수 초 내에 굳어버리는 얇은 석고를 소재로 작업을 제작하고 있는 정재욱의 작업은 그 작품을 향해 누군가의 감각이 더해지면 곧 바로 ‘스스삭’하고 석고의 특정형태가 부서진다. 정재욱(Jung Jae Wook)의작업은물리적인소재가사라져없어지는오브제는아니지만, 그가 전시장에 상정해 놓은 특정 대상의 형태가 으깨지고 변형된다. 그것이 만약 석고로 떠낸 물건일 때, 사람이 손이 닿게 되면 깨져버리고, 그 형태는 곧 깨진 석고잔재로 남게 되어 그 이전의 형태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신건우(Shin Gun Woo)의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 인물, 장소성, 사건의 네러티브, 공간성, 시나리오등의 상황들은 모두 과잉되어 있기에 어떠한 특정 스토리를 찾기 힘들다. 본 전시에서는 그의 작업을 통해 덧없이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연출보다는 무언가 덧없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상황과 암시를 드러내려고 하였으며, 더 나아가 덧없이 무언가 사라진다는 것은 과잉되고, 넘쳐나기에 무의미한 정황들을 내포하고 있음을 포착한다.

그의 이미지에는 하나의 단일이야기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명쾌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서 이처럼 사라지고,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들의 총합을 아무것도 없는 ‘무(無)’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의 이야기들이 무한으로 펼쳐질 수 있다는 상황을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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