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만화 라이파이 아버지 김산호]'대한민족통사' 펴내
[인터뷰/만화 라이파이 아버지 김산호]'대한민족통사' 펴내
  •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 정리/고무정 기자
  • 승인 2014.02.0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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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만 8kg,1555페이지에 달하는『대한민족통사』,중앙아시아 누비며 민족의 뿌리를 찾아 기록해

한국의 시대정신이 탄생시킨 라이파이

그는 일제 강점기 말기에 태어나 해방과 6.25를 온 몸으로 겪었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격동을 겪은 세대는 조국에 대한 감각이 피부 아래 생생하다. 그들에겐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이 강국이 되고, 세계에 위상을 크게 떨쳤으면 하는 염원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민족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상업성만을 생각하면 여느 만화가처럼 장화홍련전 같은 만화를 그리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화가가 된 스무 살의 그는 생각했다.

‘미국엔 슈퍼맨이 미국을 지키고, 일본엔 아톰이 일본을 수호하는데 왜 우리나라엔 그런 영웅이 없을까?’

▲만몽 김산호 선생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민족 통사'를 펴낸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뒷편에 그가 탄생시킨 만화 '라이파이' 캐릭터가 보인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영웅이라곤 홍길동, 임꺽정과 같은 도적뿐이었다. 그는 한국의 아이들에게 한국을 이끌어줄 수 있는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6년간 지도에서 사라지고, 해방을 맞이하자마자 분단되어 전쟁을 하느라 여념이 없던 한국은 경제력이나 과학기술 부분에서 미국, 일본에 뒤처지고 있었다. 그러나 만화가인 김산호는, 만화적 상상력과 캐릭터만큼은 그들에게 질 수 없었다.

 “과학기술에선 질 수 있지. 그들이 개발할 때 우린 잠자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미국사람들이 20년 그림 그려서 작가 되면 우리도 20년 그려서 작가가 되잖아요. 그림과 만화에서 질 게 뭐 있냐고. 실력의 출발선상은 별 게 없거든. 단 구상에 차이가 있는 거죠.”

 고심 끝에 그가 만들어 낸 캐릭터가 바로 ‘라이파이’ 다. 한국의 슈퍼맨쯤 되는 캐릭터다. 차이가 있다면, 슈퍼맨의 S 대신 라이파이의 가슴엔 ㄹ이 붙어있다. 슈퍼맨이 외계인이면, 라이파이는 맞으면 아프고 총 맞으면 죽는 일반적인 사람이다. 젊은 시절의 김산호가, 캐릭터를 사람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백발의 김산호가 대답한다.

▲1555페이지,7.8kg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수록한 '대한민족통사'(경인일보사,2013)

“슈퍼맨, 아톰 등은 다 사람이 아니잖아. 외계인, 로봇 다 이런 식이지. 그에 비해 라이파이는 사람이거든. 때리면 아프고 총 맞으면 죽어. 그래서 라이파이는 제비양이라는 동료와 함께 다녀요. 남녀가 함께 나오는 것도 당시로서는 거의 독보적이었어. 당시의 한국은 맨날 원조만 받고 미국 쫒아 다녔거든. 그래서 나는 자주적인 슈퍼 캐릭터를 만들어 한국의 자존을 세우고 싶었어요.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배경으로 만화를 그렸지. 한국의 영웅이 일본을 이끌고, 동양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라이파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그는 시대정신을 빼놓지 않는다. 그의 초·중·고는 멸공뱃지를 가슴팍에 달고 살았고, 교련을 받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그의 세대는 여느 세대와는 다른 촘촘한 반공의식과 애국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 끓어오르는 애국심과 반공 사상 속에, 라이파이라는 한국의 영웅 캐릭터의 등장은 분명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대한민족통사, 동북공정의 왜곡 이전 중앙아시아의 자료 집대성·민족사적 연구의 산실

▲만주족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문화혁명으로 말살된 만주의 역사서를 만주박물관에서 어렵사리 구한 귀한 책자다.

아파트 5층에 위치한 그의 집은 분위기가 독특하다. 5층으로 오르는 입구부터, 복도는 꼭 시골 돌담길처럼 벽면에 돌이 붙어있다.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유독 그가 사는 층만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 꾸며질 수 있었을까.

그의 말을 들어보니,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 여기에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그의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돌담부터 시작해 목조 대문, 기와 등 그의 집에선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미국에서 살다 온 이들의 상당수가 서구적인 삶을 추구하며 한국적인 것에 문화적 열등감을 느끼는 것과 달리,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미국에서 산 김산호는 집에 전통 한국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순전 애국심과 겨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라이파이를 그려낸 만화가다운 면모였다.

그러나 만약 그의 활동이 비단 만화에만 그쳤다면, 인터뷰를 위해 이렇게 그의 자택을 찾을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거실 겸 서재에 앉은 그는 최근 출판된 그의 저서 「대한민족통사」에 대해 하나씩 설명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한국이 단일민족임에 뿌듯해하는 여느 어설픈 민족주의자와도 달랐다. 한국이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짐이 허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그는, 현재 한국인을 구성하는 다섯 민족에 대해 설명했다.

첫째는 10만 년 전부터 이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이다.

둘째는 중앙아시아 천산 부근에서 살며 순록을 길렀던 유목민족이다. 이들은 따뜻한 동쪽으로 이주하며 생활하다 만주 부근에 터를 잡은 민족으로, 천산 쥬신(조선,朝鮮의 이두식 발음)족이다. 단군과 고조선 등의 국가를 이들이 세웠다.

세 번째는 키르키스탄 부근에서 살고 있던 알타이족으로, 북부여와 고구려, 백제를 세운 민족이다.

네 번째는 훈족으로, 고구려와 연나라가 전쟁하는 동안 연나라의 용병으로 들어왔던 민족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고구려에 의해 한반도에 고립되자, 이들은 남쪽으로 내려가 신라를 장악했다. 이전 박혁거세의 박씨 나라인 신라를 김씨 국가로 만든 이들이 바로 이 훈족인 것이다.

다섯 번째는 바다를 통해 들어와 신라를 무력으로 점령한 이들로, 주로 인도에서 온 민족이다. 인도 남부(스리랑카 북쪽)에서 온 인물로 석탈해가 있는데, 이들은 먼저 일본 시네마 현 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 현재의 울산 지역에서 철이 풍부하게 생산됨을 알고서 재이주했다고 한다. 때문에 석탈해가 일본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실은 인도 남부에서 이주한 것이라고. 석탈해의 ‘석’ 은 범어로 ‘대장장이’를 뜻한다. 그들은 능숙하게 다루던 철로 신라를 점령했다. 때문에 당시 신라 남부에서 쓰이던 말들은 인도 남부에서 지금 쓰이던 말과 거의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자장자장, 맴매와 같은 말들이 그렇다고 한다.

▲'대한민족통사' 발행의 근간이 된 만주의 여러 역사서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마친 그는, 유태인들이 구약성서를 역사로 가르치듯 우리의 역사에 자부심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올바른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는 몇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는 그의 목소리엔 우려가 잔뜩 묻어나왔다.

일제강점기의 교육이 정사로 자리 잡은 식민사관, 중국 모화사상, 단군상을 깨부수는 변질된 기독교가 그렇다는 것이다.

먼지가 낀 안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흐릿하고 더러워 보이는 것처럼, 그들을 통해 전해 듣는 역사는 항상 축소되고 왜곡된 역사였다.

이러한 세태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던 그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국사가 아닌, 바로 민족사적 접근이었다.

“학교에선 국사를 가르치고 있잖아요. 대한민국사. 그런데 그 결과로 압록강 이북은 잘렸어요. 그래서 강 건너의 만주벌판, 그걸 다 잊어버렸죠. 중국이 그걸 다 가져갔어요. 우리가 말이 안 된다지만 말이 되고 있잖아. 발해 넘어갔죠? 연변에 가보면 우리 환웅상 만들어둔 게 있어요. 근데 지나치게 기독교 바람이 불어젖히는 바람에 단군을 중국서 가져갔어. 단군도 이젠 중국이야. 우리가 버렸다고. 우리 스스로 다 잘라버렸어.

또 거기 사는 우리 독립군 자손들은 중국인이 됐어요. 조국은 조상의 나라야. 그런데 그들이 여기로 돌아오려면 비자가 필요해.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냐고요. 그런데 그런 한국사를 보지 말고, 한민족사를 보면 달라져. 대한민족통사라고. 나라가 어찌 되던 간에 달라져.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우리가 구성되었는가. 그러니까, 고려인, 중앙아시아의 조선족, 미국 교포들, 전 세계의 민족으로 역사를 보면 전혀 다른 역사가 보인다 이거야.”

그가 말을 이었다.

 “1978년에 미국을 갔을 때 공산권 국가를 다니기가 어려웠거든요. 한국인으론 갈 수 없어 미국인 자격으로 중앙아시아, 만주 지방, 소련 국경지대를 다녔어요. 그 때는 우리 역사가 지나온 궤적과 흔적을 훼손되지 않은 채로 볼 수 있었단 말이야. 지금은 동북공정 때문에 뭐가 없어요. 그 당시의 나는 운 좋게도 상당히 많은 역사적 자료를 접했거든요. 이건 지금의 한국 학자들 위치로는 할 수 없는 거죠. 그 때 접했던 원서들은 복사해서 가져왔지.”

문화대혁명이 중국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후, 그가  만족 자치구를 갔을 때였다. 만족박물관을 가보니 문화혁명 때 숙청당한 전 박물관 관장이 변소를 청소하고 있었다. 모종의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관장에게 말을 걸었고, 심도 깊은 대화 끝에 전 관장에게 책을 한권 받아오기에 이른다.  바로 『만족대사전』이 그것이다.

출판되자마자 중국 정부에 의해 출판금지를 당해 전부 수거된 뒤 소각되었다는 문서로,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출판본을 그가 건네받은 것이었다. 찬찬히 책을 읽어 본 그는 만주인의 머리  '댕기' 의 본말 '단기' 가 단군의 표시라는 등, 만족과 한겨레의 밀접한 관련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붉은색으로 줄쳐진 부분이 '흑룡강 도록'에 기록된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어진  '백제국''에 대한 기록. 실로 놀라운 기록이다.

문화혁명이 휩쓸긴 했어도, 동북공정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지금보다 양호한 상태의 역사를 날 것 그대로 만났다는 그는 서재에서 다시 『만족대사전』과 같은 처지의  「흑룡강 도록」을 꺼내왔다.

『만족대사전』은 문화혁명에 의해 사라진 서적이라면, 「흑룡강 도록」은 동북공정에 의해 사라진 문서라고 할 수 있다. 「흑룡강 도록」의 내용은 실로 놀라웠다. 한반도의 백제가 아닌 흑룡강 유역 치치하얼과 하얼빈 부근의 백제에 대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이 짜서 자살했다는 비류의 유민들이 남쪽의 온조에게 흡수되어 세워졌다는 백제가 아닌, 점점이 이동하는 동안에도 당당히 담로국으로 존재하던 '진짜 백제' 의 역사가 「흑룡강 도록」에 담겨있었다.

현재 지방자치와 같은 형태인 담로제국으로서의 백제는, 그 담로(탐라)를 제주도에도, 심지어 일본 오사카 아래에도 두고 있었다. 김부식, 이병도와 같은 그릇된 역사가에 의해 축소되고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김산호는 이처럼 이역만리 중국땅에서 발굴해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가지고 온 이러한 수많은 자료들과 원서는 바로 현재, 그의 저서 「대한민족통사」의 든든한 바탕을 이루고 있다.

 올바른 역사관이 미래를 끌어갈 원동력

지난해 7월, 방대한 분량의 대한민족통사에 마침표를 찍은 그의 머릿속엔 다시 작업에 대한 계획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호는 만몽(萬夢)이다. 만 가지 꿈의 의미다. 그의 호에 걸맞게, 그의 직업은 만화가, 역사가, 민족사학자, 사업가, 발명가 등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하는 모든 일은 민족과 겨레를 향했다.

▲만몽 김산호 선생

이번에 구상하는 그의 작업도 예외가 아니다. 10m가 넘는 거대한 화폭에,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그는 안중근에 대한 호칭을 의사라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대한의군참모중장의 신분으로 왜적장을 ‘총살’ 혹은 ‘격살’ 한 것이지, 의사로서 암살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 자리에서 체포된 안중근의 첫마디는, “난 대한의군참모중장이므로, 적장 포로로 체포하라” 는 것이었다고.

그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이렇듯 그는 우리 역사와 관련된 설명을 이어나갔다.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로잡고 한민족의 뿌리를 알아나감으로써, 우리는 하나로 결집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스무 살부터 민족과 겨레를 위해 치열히 붓을 놀려온 그의 머리는 어느새 서리가 내려앉았다. 선하게 살아온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이 백발이라는 말이 있다. 선민사상을 지닌 유태인들에게, “우리는 천손족이다” 라며 대응했다는 미국에서의 그의 일화가 떠올랐다. 하늘의 자손임을 자랑스레 여기며 살아온 그의 인생에 하늘이 백발로 화답한 것일까. 남은 생을 민족을 지향하며 살아나가겠다는 그가 말한다.

“중국과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잘못 가르치고 있는데, 거긴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밝혀야 해요. 우리의 의식이고 혼이거든요.”

만몽 김산호 선생 프로필

 1940년 서울 태생 (만화가/ 화가/ 민족사학자)
· 1958년 서라벌 예대 서양화과
 잡지 <만화세계>에 독립군의 이야기를 만화로 다룬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
· 1959~1962년 한국 최초의 SF 만화이자 최대의 히트작인 '라이파이' 전 32권 발표
· 1958~1966년 한국에서 약 200여 편의 작품 발표
· 1966년 미국으로 진출 미국에서 만화가 데뷔
· 1966~1978년 미국에서 최초로 동양 만화 및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며,
   300 여편 작품 발표
· 1974~1987년 패션, 관광, 테마파크 등의 사업 경영
· 1979~1988년 사업과 함께 역사 연구 병행
· 1988년 사업 정리 후 만주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역사 연구 시작
· 1993년 연구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형식인 회화극본[繪畵劇本]으로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 1, 2, 3권 출간
· 1995년 “대쥬신제국사[大朝鮮帝國史]” 4, 5권 출간
· 1995~1996년 “대쥬신제국사” 전국 50여 회 순회 전시
· 1996년 분단의 아픔을 주제로 한 회화극본 “두만강” 출간
 신한국인상 수상
· 1997년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회화극본 “대불전[大佛傳]” 전 3권 출간
· 2002년 “한국105대천황존영화집[韓國百五代天皇尊影畵集]” 출간
· 2002년 “한국105대천황존영 전시회”, 서울
· 2003년 “백제, 일본 그리고 왜[倭]” 발행
· 2005년 “한민족의 군신 치우천황[蚩尤天皇]” 출간
 “단군조선[檀君朝鮮]” 출간
 “조선해군의 대제독 이순신[李舜臣]” 출간
 황금펜촉상 수상
· 2006~2007년 “한민족사 역사회화 전시회” - 광주, 용인, 서울
· 2007년 “부여사[夫餘史]”, “부여백제사[夫餘百濟史]”
· 2008~2009년 “태권도의 명인” 시리즈 출간-영어/스페인어
· 2009년 “한민족사 역사회화 전시회” 약 3개월간 광주광역시 시립미술관
 옥관 문화훈장 수상
 한민족대상(한민족사 부문 사학자) 수상
· 2011년 “슈벽, 가라데 그리고 태권도”-태권도의 기원
· 2013 “대한민족통사”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