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콘텐츠
인왕산 콘텐츠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07.09 14:2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의 우백호 인왕산은 ‘낮으면서도 격이 높은 산’이다. 종로구와 서대문구를 가르며 높이 불과 340미터로 솟아 있지만 지정학적으로나 역사 문화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산이다.

1시간 남짓 등산코스로 슬쩍 둘러보아도 깊은 계곡 샘물과 아기자기한 소나무길, 바위길, 성곽길, 웅장한 정상까지 기기묘묘한 자연을 음미할 수 있다. 가는 곳 길마다, 보이는 정경마다 역사와 문화와 사연을 담고 있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는 이 산을 주산으로 백악과 남산을 좌청룡 우백호로 삼아 왕궁을 동쪽 방향으로 앉힐 것을 주장했다. 정도전이 이에 반대, 백악(현 청와대 뒷산, 일명 북악산)을 주산으로, 인왕산과 낙산을 좌청룡 우백호로 삼아 왕궁을 남쪽방향으로 앉힐 것을 주장해 관철시키고 말았다. 무학대사가 크게 울며 200년 뒤에 큰 변란(임진왜란)이 일어나며 500년 뒤엔 왕조가 끝날 것을 예언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 진경산수 발현지

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선바위(서울시 민속자료 제4호)는 중이 장삼을 입고 있는 모습과 흡사해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기도하는 명소가 됐다. 이 선바위 아래 국사당은 무속신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산 정상부 하단을 이루고 있는 커다란 치마바위는 조선조 중종이 임금이 되기 전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던 신씨 부인과의 애틋한 사연이 서려있는 곳이다.

중종은 반정에 의해 연산군을 몰아내고 임금이 되었지만 신씨 부인의 아버지인 신수근은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이에 반정공신들이 죄인의 딸을 왕비로 삼을 수 없다며 끝내 사가로 내몰고 말았다. 중종은 임금이 되기 전 10여 년간을 화락하게 살았던 신씨 부인을 잊을 수 없어 가끔 경회루에 올라 인왕산 기슭 신씨 부인의 집을 멀리서 바라보곤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신씨 부인이 전날 잠시나마 대궐에 있을 때 입었던 치마를 인왕산 높은 바위위에 걸어 두어 화답했다는 사연이 있는 바위다.

인왕산은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발현지이기도 하다. 지금의 경복고교 부근에서 태어난 겸재는 고향인 인왕산 기슭을 샅샅이 누비며 ‘인왕 재색도’ ‘청풍계’ ‘청송당’ 등 근대에 훼손되기 전의 인왕산 옛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진경산수의 현장을 따라 인왕산 기슭 동네를 탐방하다 보면 겸재시대 전후의 많은 인물들과 유적을 만날 수 있다. 필운동 배화여고 뒤안 바위에 필운대(弼雲臺)라고 새겨진 곳은 임진왜란 구국의 영웅인 권율 장군이 사위인 백사 이항복에게 물려 준 집터다.

옥인동 송석원길 일대는 조선시대 중인들의 문학인 ‘위항문학’의 거두 천수경이 초가를 짓고 문학활동을 한 곳이다. 이곳에서 고개를 넘어 국립 농학교로 들어가면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이씨를 모신 사당 ‘선희궁’이 있다.

그 옆 대로변 청운초등학교 일대는 송강 정철의 생가터다. 그리고 그 뒷 골짜기는 겸재가 진경산수로 표현한 그 유명한 ‘청풍계’(淸風溪)다. 인왕산 기슭이 절벽으로 머물며 소나무와 계곡이 어우러진 신선지경이었다.

그곳 바위에 백세청풍(百歲淸風), 양산동천(陽山洞天)이라 새겨진 글씨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청운초등학교를 건너 경복고 입구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한 척화대신 김상용 김상헌 형제들이 살던 장동 김씨 옛터다. 거슬러 올라 율곡 이이가 그의 제자들과 ‘백악사단’을 형성하며 문인활동을 하던 무대이기도 하다. 최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했던 10. 26 총소리의 현장인 궁정동은 바로 그 앞이다.

◆ 역사 문화자원 무궁무진 

발 딛는 곳마다 역사의 현장 아닌 곳이 없는 인왕산 기슭이다. 이 인왕산 동북쪽 언덕, 자하문 고개와 맞닿는 곳에 ‘시인의 언덕’이 조성된다. 윤동주 문학사상선양회가 주최하고, 종로구 문화관광협의회가 주관해 윤동주 시비를 세우는 등 기념사업을 펼치는 것이다.

때마침 일본에서도 교토부 우지시민들이 윤동주와의 작은 인연을 고리로 그의 시비건립을 위한 1만명 서명운동에 나섰다는 소식이다. 한ㆍ일 양국에서 일어난 기막힌 ‘윤동주 타이밍’이다. 어찌 윤동주뿐이랴. 인왕산 기슭의 시인으로 치자면 이상도 있고, 노천명도 있고, 정철도 천수경도 이항복도 김상헌도 다 시인이다. 이토록 풍부한 인왕산 기슭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의 콘텐츠로 엮어 브랜드화 함으로써 서울 관광의 한 키워드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 필자의 오래된 생각이다.
 
서울문화투데이 권대섭 대기자 kd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