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싸이의 강남스타일 그 이후
[독자기고]싸이의 강남스타일 그 이후
  • 오주연 텍사스 어스틴 주립대학 퍼포먼스스터디 박사&
  • 승인 2014.02.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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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지속 방안과 퍼포먼스 스터디 학과 건립의 필요성

 지난 해 싸이(PSY)의 뮤직비디오 강남 스타일이 세계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후 한류 특히 K-pop 에 대한 미디어와 대중 및 학계의 관심이 더욱 뜨겁다. 필자는 미국에서 퍼포먼스 스터디(Performance Studies)를 전공하면서 간간히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한국 미디어의 한류에 대한 묘사와 미국 내에서 보이는 한류 모습 간의 간극에 놀라곤 한다.

예를 들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 미디어에서 “세계 정복”, “신화” 등 상당부분 민족주의적으로 묘사되는 반면, 미국 내에서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성공이 백인우월주의의 한 결과였을 수 있다고 보는 견해도 상당하다.

▲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 YG엔터테인먼트

 사실상 K-pop 공연들은 음악과 같은 한 장르의 이론만으로 분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예로 들자면, 국내 언론의 싸이에 대한 민족주의적 묘사는 역사적 담론에서 보았을 때에 아시아의 식민지적 열등감 극복 및 문화적 전복을 꾀하는 한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인종학, 민족지학, 무용학, 혹은 젠더연구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는 싸이의 다소 훈련되지 않은 몸과 우스꽝스러운 ‘말춤’ 안무가 어떻게 서구의 백인우월주의적 시각 내 “열등한” 아시아 남자 스테레오타입에 들어맞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강남스타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K-pop 이 더 이상 음악이라는 장르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K-pop은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종합적인 “퍼포먼스”로 이에 대한 연구 역시 하나의 이론 및 장르로 설명하기보다 다양한 예술이론(음악, 무용, 시각예술 외), 문화연구(대중문화 및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및 인문학(철학, 심리학, 민족지학, 인종학, 젠더연구 외)등을 포괄한 학제 간 연구 혹은 간학문적 접근이 요청된다.

 필자는 K-pop 을 비롯한 한류의 중요성이 단순히 문화예술로 세계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에 있다 생각지 않는다. 한류는 한국의 정체성, 즉 한국인이 한국인을 정의하는 것과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그 시선들 사이 역동하는 문화의 장이다. 한류는 자본주의적 가치 창출의 측면을 넘어, 아시아 국가들이 식민지 역사에 기반을 둔 서양 문물의 수동적 수용을 넘어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한 과도기적 현상으로서 더 큰 사회문화적 의미가 있다

 혹자는 세계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한류에 대한 이론화는 차후의 일이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 국가 간의 원활한 이해와 의사소통을 장려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 및 학계의 문제가 아니다. 한류가 진정으로 국제사회로 발돋움하고 세계인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세계 속 한국, 그리고 상대방 문화, 역사, 다양성을 이해하는 간학문적(間學文的)이고 폭넓은 시야가 요청되어야 한다. 

 한 예로 미국의 경우 인종 담론과 그에 대한 평등이 보다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주요한 사회 과제로 여겨진다. 급속히 다민족 사회로 변모해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인종에 대한 이론 및 사회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얼마전 K-pop 이 미국 미디어에서 KKK-pop (Ku Klux Klan 또는 KKK): 유색인종이 동등한 권리 가지는 것을 반대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의 보수백인우월주의 단체)이라 명명되며 비난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는 과거 몇몇 한국 가수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분장을 하고 나온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것은 노예시대 백인 지주들이 흑인 노예를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minstrelsy 전통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의 대표적인 예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가수 비의 LA Song 역시 흑인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K-pop 의 인종적인 재현에 대한 문제는 현재까지도 외국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이론적 작업의 결여는 곧 문화적 몰이해성 혹은 의도치 않은 차별 나아가 폭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론 작업은 실제 한류 콘텐츠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류 콘텐츠의 생산이 문화 다양성과 인권에 대한 이해와 병행되었을 때에 세계인과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존중 받을 수 있는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 스터디는 미국에서 1980년대 경에 시작된 새로운 학문 분과로 인류학, 언어철학, 문화 연구, 연극 이론 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UT Austin 을 비롯하여 Northwestern University, New York University, UC Berkeley, Brown University, Cornell University 등 미국 내 주요대학을 중심으로 예술학, 공연학, 여성학, 철학,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문화연구, 커뮤니케이션 스터디 등 다양한 학문분과를 접목시키며 발전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퍼포먼스 스터디를 설립한 학과 혹은 대학이 없다.

간혹 한국에서 공연학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퍼포먼스 스터디의 연구 과제는 단순히 공연예술이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퍼포먼스 스터디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퍼포먼스로 본다. 퍼포먼스 스터디의 연구 대상은 공연예술을 넘어 일상생활의 모든 것, 예를 들면 젠더, 인종, 성과 민족 정체성 등 고정된 것으로 여겨지던 요소들부터 일상생활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연구의 대상이 되며 이를 연구하기 위해 끌어오는 이론 역시 한 장르보다는 학제 간 연구와 다양한 이론 간의 융합을 격려한다.

여느 간학문적 학과와 다른 퍼포먼스 스터디만의 차별성은 고정된 카테고리로 받아들여지던 현상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본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당위적인 것으로 여겨져 이데올로기적 힘을 가지던 그 개념들이 사실상 어떤 주체 및 권력에 의해 퍼포먼스적으로 구성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으로, 니체에서 푸코로 이어지는 모더니즘적 주체에 대한 공격으로서의 포스트모던 담론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많은 후기식민지 학자들이 비판해왔듯 학계야말로 서구제국주의가 가장 활발히 작동하는 장이다. 한국 학계와 교육 역시 상당부분 서양, 특히 유럽과 미국 중심의 이론에 의지하고 있다. 필자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제국주의적 인식론의 반복을 염려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발생된 퍼포먼스 스터디가 한국의 구체적인 지역성, 역사성, 민족성을 떠나 그대로 한국 상황에 적용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퍼포먼스 스터디 학과 건립이 이루어짐을 촉구하는 필자의 마음은 장르 간 경계가 견고히 보수화되면서 새로운 배움에 나태해지고 이에 따라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을 꿈꾸는 학자 및 학생들의 열망이 제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학문적 유연성은 많은 것이 혼종적으로 변모되어가는 다문화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선행 요건이다. 한 학문 분과의 독립성은 중요하지만 학제간 연구가 그 학문의 독립성을 침해하지는 않는다. 외려 간학문적 연구는 한류와 같은 한 문화 현상의 의미를 다양한 방법론과 이론을 사용해 하나의 담론안에 통합시킴으로 국제사회, 문화, 정치, 역사적 선상 위에서 가지는 총제적인 의미를 드러내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내주요대학들의 간학문적 통합예술학과정들의 설립은 시대변화에 상응하는 바람직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퍼포먼스 스터디와 같은 학제 간 연구 학과의 설립은 한 장르의 이론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지점들을 발견케 해주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시켜주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한 장르에 만족할 수 없었던, 혹은 어느 한 장르에 속할 수 없어 소외되었던 많은 창의적인 젊은 인재들을 육성시킬 수 있는 보다 자유롭고 역동적인 지식 생성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