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마음을 열고 세상과의 ‘소통’을 희망한다
닫힌 마음을 열고 세상과의 ‘소통’을 희망한다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7.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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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쇳대박물관장

 

“마음을 열고 와라. 처음부터 부담 가지고 보면 볼 것도 안 보인다. 그냥 쉽게 생각하고 편하게 와서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즐겨라”

▲ 최홍규 쇳대박물관장
최홍규 쇳대박물관장이 말하는 박물관 관람비법이다. 물론 알고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우선 박물관과 그 곳에 전시된 유물들과 친해지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최 관장은 박물관에 오면 휙 둘러보고 30분도 안 돼서 나가는 한국 사람들의 관람 자세를 지적하며 “일본사람들은 박물관에 오면 함께 온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질문하고 메모한다. 자꾸 관심 있게 보고 즐기다 보면 흥미를 느끼고 애정이 생겨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 관장은 박물관 관장이기 이전에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최가 철물점의 대표답게 일찍부터 자물쇠의 가치와 매력을 알아버렸다. 그렇게 30여년을 열쇠와 자물쇠를 사 모은 것이 4천여 점.

자물쇠로 세상과의 소통을 꿈꾸는 최 관장은 쇳대박물관이 고구마 감자먹던 세대와 피자와 햄버거 먹는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최 관장은 “우리 조상들의 정신이 담겨있는 자물쇠를 연다는 것은 전통과의 ‘소통’을 의미한다”며 “작은 자물쇠 하나에도 많은 바람과 염원이 자물쇠의 문양이나 형태, 글에 담겨있다. 같은 물고기모양의 자물쇠라도 조각 하나에 따라 만든 사람들의 의도나 생각 등이 표현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자물쇠를 가구의 일부정도로만 생각한다. 심지어 상인들은 자물쇠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냥 가져가라고 할 정도로 천대했다”며 속상함을 드러냈다.

때로는 속아서 비싼 가격에 사기도 하고 때로는 턱 없이 싼 가격에 구입하고, 어느 시골집을 지나다 발견한 자물쇠에 심취해 도둑으로 몰리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는 오히려 남들이 찾지 않는 것이라 더 수월했다고 한다.

하지만 옛날 가구들이 현대적인 것들에 밀려서 자취를 감추면서 붕어자물쇠도 보기 힘들어져 천대받는 만큼 자물쇠 하나하나가 너무 귀중한 자료가 돼버린 지금, 자물쇠의 가치와 의미를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자물쇠에 대한 자료를 모아 만든 시스템이 올해 구축될 예정이다.

더불어 자물쇠의 형태, 기법, 특징 등을 계승·보존·발전시키기 위해 장인들을 발굴해서 자물쇠를 만드는 장인의 동영상을 만드는 등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수집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쇳대박물관에 웬 토기인가 했더니 이건 일부에 불과했다. 이미 집에는 토기류가 수백 점, 대장간용품들도 수천 점에 이르며, 그림, 모자 등 추스르고 추슬러도 각각의 수집품들은 평균이 1백여 점이다. 요즘에는 어렸을 때 쓰고 봐왔던 것,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근대의 물건을 모으고 있단다.

“모든 수집가들은 정신이상자들이다. 나는 '철장이'라 불만 보면 흥분하고 쇠붙이만 보면 발길이 멈춘다”라고 말하던 그는 인터뷰 중에 동네 주민이 다가와 옛날 자물쇠를 발견했다고 하자 엉덩이를 들썩이며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렇게 애지중지 모은 자식 같은 수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최 관장은 오는 9일부터 한 달 동안 지난해 일본에서 했던 소장품들 그대로 전시하는 ‘일본 귀국전시회’ 준비로 얼굴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그 물건에 대한 원래의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식 같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알릴 것인지 생각하는 일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다. 매번 전시를 통해 배우고, 만족하고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자비를 들여 해외 전시도 하는 것”

하지만 항상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 관장은 지난해에 이 일본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슬프고 노여운 일을 겪었다. 75년 전통의 일본 민예박물관에서 한국 박물관으로서는 3번째로 초청받은 전시회였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박물관의 특성상 법에 대해 다 알지 못해 대행업체를 통해 문화재 운송작업을 진행했다. 세관에 신고를 하고 대한상공회의소의 아타카르네(외국으로 물건이 나갔다가 들어오는 조건으로 관세를 면제해 주는 통관 증서) 보증보험까지 들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고 한 환경 운동가가 그것을 문제 삼아 신고해 조사를 받고 언론에도 보도됐다.

“조사결과 법원판결에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해결 됐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타격이 컸다. 영향을 많이 받아서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이렇게 힘들게 박물관 운영해야 하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는 최 관장은 실제로 그 해 외국에서 초청을 받았지만 조심스러워 전시회를 취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자물쇠의 가치와 쇳대 박물관의 가치를 알아보고 계속해서 초대전을 요청해 오는 10월 9일부터 6개월 간 뉴욕의 코리아쏘사이어티와 플러싱타운홀에서 하게 될 전시회 준비에 한창이다. 더불어 초대전이 끝나면 미국 3개 대학에서 순회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박물관도 경영이 필요하다는 그는 사립 박물관들의 적자난 해소와 운영을 돕기 위해 지난해 2월 (주)최가문화를 설립, 서울시의 지원 및 후원을 받아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문화를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기본으로, 최가문화를 통해 사립박물관들이 박물관 관련 상품을 개발해 수익을 창출하고 수출도 이끌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최 관장은 “사립박물관이 언제까지고 적자에 시달리며 있을 수는 없다”며 “문화 사업이 수익사업이 되도록 새롭게 풀어서 혁신적인 경영으로 우리나라의 사립박물관을 모두 흑자박물관으로 만들 것”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의 나이 열아홉. 철물점과의 인연이 닿지 않아 ‘쇠 맛’을 알지 못했다면 그는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꿈’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바쁜 일정에 지친 기색을 걷어내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단번에 답했다.

“배우. 아마 그 때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막연히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볼 수 있는 배우를 동경했다. 예전에 우정 출연을 몇 번 해봤지만 쉬운 일이 아니더라. 발성이나 시선처리도 어렵고 전문가들은 따로 있구나. 하지만 다시 태어나면 꼭 하고 싶다”

 

서울문화투데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