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가
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가
  • 윤동주 문학사상선양회
  • 승인 2009.07.10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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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인

우리는 꿈 많던 학창시절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을 애송하였다.  윤동주 시는 국민들 정신적 마음의 고향이었다. 

윤동주 시인은 함경북도 회령에 고향을 두고 민족의 얼이 숨 쉬는 겨레의 옛 땅 용정시 명동촌으로 이주, 1917년 12월 30일 태어났다. 

윤동주는 일찍이 명동 소학교 4학년 때 한글 문예지 <새명동>을 등사지로 만들어 발행 하였으며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시절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중퇴하여 용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울 연희전문(현 연세대)에서 민족의식을 키웠으며 서울시 종로구 누상동9번지 소설가 김송 집에서 하숙하며 서시 별헤는 밤 자화상 등의 명시를 남겼고 인왕산 자락 논가를 걸어서 학교를 다니며 민족의 애환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를 당하기까지의 일생이 근대 한민족의 수난사를 교훈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가 남긴 위대한 문학정신인 민족사랑과 평화정신을 기리기 위해 방치된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보존하고 문예지 계간<서시> 발간을 통해 아름다운 윤동주 서정시의 씨앗을 보존하고 싹틔우는 일을 하고자한다.

이 일은 작게는 문학운동이지만 더 큰 취지는 민족의 혼을 잇는 문화운동이며 궁극적으로는 인류평화 운동이 되는 것이다.  윤동주가 그 길을 걸어가다 마침내 옥사를 당했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서정시이다.  그래서 문학적 취향이 다르고 사상도 다른 온 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기독교적으로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도 북한에서마저 우리 민족사에 빛날 매우 소중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가해자의 나라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일찍 윤동주 연구가 성과를 거두었고 열성적인 추모 모임을 후쿠오카, 교토, 도쿄에서 십 수년째 열고 있다.  윤동주 외에도 한국 문학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기고 추앙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윤동주만큼 우리가 높이 찬미 할 모든 조건을 갖춘 문인은 없다.

첫째, 그는 사춘기 소년 소녀 같은 청순한 감각으로 서정시를 썼기 때문에 보편적 다수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둘째, 그는 강인한 저항 정신을 지니면서도 이를 겸허하고 유연한 언어로 써나갔기 때문에 다수 독자의 공감과 사랑을 받고 있다.

셋째, 그는 항일 민족시인 이지만 그것은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짓밟는 자들에 대한 저항이며, 그 기본정신은 평화주의적이고 인도주의이기 때문에 결코 선의의 타민족에 대한 배타주의가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설파한 기독교의 사상과 일치한다.

넷째로, 그의 정신은 염치 사상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 그의 사상은 정신적 순결주의 이며 그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염치 사상과 다름없다.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 정신이다.

다섯째, 그가 후기에 남긴 가장 빛나는 시는 사명시이다.

우리 민족 또는 온 세상에서 고통 받고 죽어 가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그를 통해서 우리도 이 세상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도록 사명을 받았다는 놀라운 자각을 갖게 된다. 

그것은 민족을 위한 사명이며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명이고 인류 평화를 위한 사명이다.  우리는 이를 자각하고 실천하는 대열에 나섬으로써 문화대국의 기반조성을 하는 일이 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숭고한 뜻이 담겨있기에 윤동주의 문학정신과 사상을 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윤동주는 인간의 감정을 초월한 사랑과 평화 용서를 통해 침략에 대한 항일 운동이 얼마나 위대한 저항인지 알 수 있듯이 일본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현실을 보면서 성공한 침략 전쟁도 영원할 수 없음을 세계에 고하고 있다.

그는 민족이 처한 암울한 현실 속에서 고뇌와 양심을 가지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각오로 우리말과 글의 말살정책과 강요하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순수 우리말로 시를 써내려 갔다.

그는 일제 말기 한국 문학의 공백기에 순 우리 글로 조국이 처한 시대적 상황을 투시하고 민족의 혼을 잃었을 때 나라를 빼앗긴다는 교훈을 자기희생적 실천으로 보여주었으며,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교자적 길을 걸어간 한민족이 낳은 위대한 시인이다.

옥사 64주기를 맞아 그는 분명히 부활 한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생가를 찾는 많은 사람을 만날 때 마다 한결같이 느낀 것은 윤동주의 부활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그를 처형한 자들의 땅 일본에서도 부활하고, 그의 뼛가루가 묻힌 중국에서도 부활하고 있으며, 미국, 러시아, 캐나다, 호주 스웨덴에서도 부활하고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서시>를 비롯한 그의 명시를 읽고 그가 죽는 날까지 걸어간 참된 길을 만날 때마다 마음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모습을 그리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의 근본정신은 민족 사랑이며, 자유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세우는 평화 정신이다.

민족 분단의 아픔과 인종 종교 갈등 등이 지구상에서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빛으로 부활 할 것이며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의 시비를 세우고 윤동주 시인의 언덕 조성, 윤동주상(문학상, 평화상, 민족상, 예술상, 해외동포문학상, 특별문학상 부문젊은작가상 부문)시상식을 통해 문화대국의 꿈을 펼치게 될 것이다.

윤동주 문학사상선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