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예체능 교육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예체능 교육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4.03.1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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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럴 때 즈음이면 초등학교 입학하는 이들의 두근거림과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는 대학에 대한 불안증, 대학에 입학하는 이들에겐 과도한 등록금과 사회생활에 대한 불안증이 엄습한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를 제외하면 불안과 초조가 늘 상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 입시라는 것에 목적을 둔 교육이 현실이지만 여기에 아이의 창의성과 미래를 위하여 예술교육을 덧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살아간다.

예체능교육은 사회의 근원을 만드는 중요한 종목이다. 여기에는 등위도 없고, 잘함과 못함도 없다. 나라에서 선택과목으로 두었지만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 초등학교에 들기 전에는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에 보낸다. 아이의 정서발달이라고 말하면서 아이의 재능이 혹 여기에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심리도 있다. 예체능을 아이 주변에 두면 아이의 정신발달에 도움이 된다. 모두들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잘 하지 않는다.

“아이 방에 그림하나 걸려구 하는데요,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고 정서적으로 어울릴 만한 것 없을까요?”라는 문의를 가끔 받는다. 아이의 교육과 정서적 안정을 위한 그림을 찾는 단다. 물론 미술품이 정서와 창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몇점의 작품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한 미술품을 딱히 권하기 어렵다. 아이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미술품에 대한 안목과 여건은 어른의 눈에 맞춰져 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 실기를 통하거나 미술관이나 전시장에서 배우게 되는 감성의 자연스런 습득의 방법이 좋다.

미술교육이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이나 감상능력 등을 기르는 교육’이라 되어 있다. ‘감상’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품을 평가’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잘했다 못했다는 식의 등위 평가가 아니라 감상자의 현재 기준에서 살피는 평가를 말한다.

개인의 취향으로서 미술에는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있으나 예술로서 미술작품에는 그러한 평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가는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인지능력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사회교육일 수밖에 없다. 감상을 위해 전시장을 찾는 것 외에도 아이를 위하여 예체능 학원에 등록시켜 볼 만하다.

생각은 자유로워야 한다. 서울대입학을 요구하는 부모의 등쌀에 서울대 입학한 후 ‘이제 되었죠.’ 하면서 자살한 청소년도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예술계통에 종사하기 때문에 예체능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아이를 기르는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의 생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바에 끼워 맞추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잘잘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선입감에 지나친 주입이 그의 창의성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아이의 거짓말은 앞뒤가 잘 맞다. 작은 거짓이기 때문에 끝까지 우기면 어른이 질 수밖에 없다.

생각 디자인이라는 말이 있다. 단순히 장식을 하거나 눈에 예쁘게 보이는 상태로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둘러싼 사회 환경과 문화, 역사를 재정비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밥을 먹는 방법에는 특별한 법칙이 없다. 법칙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법칙이 몸에 너무나 익숙하여 법칙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신기하거나 이상할 수 있다.

예체능은 특별활동이 아니다. 예체능은 생각디자인을 습관화 시키는 창의의 주요 길목이다. 예체능에 능한 교육이 아니라 그것을 습관화하고 생활화된 상태를 이야기한다. 생각을 디자인 할 수 있는 아이의 미래교육이 절실하다. 교육이 아니라 놀이를 위한 예체능 교육을 필수화 시키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