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수호 춤 50년
[이근수의 무용평론]국수호 춤 50년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
  • 승인 2014.03.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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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국수호를 어떻게 말할까. 남성무용수로서 조택원, 송범 이후 가장 화려한 길을 걸어왔으면서도 한 때 오욕의 시절도 경험한 바 있는 그는 이제 66세다.

1964년 전주농고 농악대 장구잽이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처음 출연한 이후 반세기만에 그가 춤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열었다. ‘국수호 춤 50주년 춤의 귀환’(2014. 3.5~7,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이란 타이틀이다. 춤의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다는 뜻일까. 그가 이제 다시 본래의 춤 자리로 돌아왔다는 의미일까. 첫날 개막공연을 보고 셋째 날의 마무리공연을 다시 보았다.

첫날은 국수호의 레퍼토리작품인 장한가, 남무와 함께 이번 공연을 위해 그가 안무한 두 편의 신작 ‘고독’과 ‘용호상박’의 초연무대에 그가 직접 올랐다. 축하행사를 겸한 만치 명창 안숙선이 ‘춘향가 중 사랑가’를 부르고, 김영재의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가 연주되었다. 이어령, 최태지, 김성녀의 무대 인터뷰도 있었다.

김영재는 15호 거문고 예능보유자다. 고수 장덕화가 장고로 흥을 돋우자 연주를 마친 김영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무대를 휘젓는 그의 즉흥 춤에 장단을 맞추는 관객들의 추임새야말로 바로 우리 춤 자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고독’은 첫날 국수호가 직접 춤을 추고 셋째 날은 김승일이 출연했다. 어려운 시절을 경험한 자신의 처지를 셰익스피어의 비극인 리어왕에 빗대어 그려낸 작품이다. “꿈이로다, 꿈이로다...”무대를 가로지르는 소리꾼의 노래가 여운을 남기며 사라져갈 때 무대 뒤에서 춤꾼이 등장한다. 푸른 도포와 갓으로 정장을 갖춘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꿈속을 헤매듯 느리고 장중한 춤사위가 무대를 채운다.

▲국수호의 춤 '고독'의 한 장면

 동자 둘이 등장해서 도포를 벗기고 갓도 벗겨 내린다. 춤꾼은 이제 흰 바지저고리에 상투차림이다. 고목에 힘없이 매달린 매화 꽃송이가 영상으로 비쳐진다. 세월의 흐름과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곁을 떠나버린 인생의 무상함이 이런 것일까. 거문고(허윤정)의 저음과 대금(이용구)의 깊은 음색을 배경으로 눈먼 소경처럼 느린 동작으로 무대를 헤매는 춤사위가 객석을 숙연하게 한다. 홍해리의 시 한편이 생각나는 춤이다.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
눈물 젖은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용호상박’은 삼국시대 위(魏)나라와 오(吳)나라간의 전쟁인 적벽대전을 소재로 만든 판소리 적벽가가 바탕이다. 가무악이 일체가 되어 남자 쌍무로 안무된 춤은 제목대로 용(龍)과 호랑이(虎)간의 치열한 대결을 경쾌하고 속도감 있게 그려내면서 희극적 요소까지 가미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무대 뒤편에 나란히 앉은 네 명의 고수가 청아한 목소리로 불러대는 판소리에 화답하면서 국수호와 이정윤의 춤 대결이 벌어진다.

한예종 출신으로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인 이정윤은 국수호의 30년 연하다. 그러나 춤에서는 나이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국수호는 힘이 넘치고 이정윤은 오히려 상대를 놀리듯이 노회한 춤사위를 과시한다. 마당극과 같은 연극적 구성을 통해 노소의 화합과 국수호의 춤의 귀환이라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수작이었다.

‘금무(琴舞)’는 이번 공연을 위해 국수호가 안무한 세 번째 신작이다. 둘째 날엔 채향순이 출연했고 마지막 날엔 전순희가 무대에 올랐다. 서경대 교수인 전순희는 보랏빛 저고리에 흙(土)색 치마를 입었다. 이서윤이 디자인한 의상미가 특이하다.

무대 뒷벽에 이규보(李奎報)의 시 한 수가 영상으로 떠 있다. “나는 도연명을 사랑한다. 토해내는 언어가 담백하고 순수하기 때문이다(我愛陶淵明 吐語淡而粹). 최고의 음악은 소리가 없으며 최상의 말은 문자로 표현되지 않는다(至音本無聲 至言本無文).” 선비의 서재를 보여주듯 그 옆에 놓인 난초 한 그루가 섬세한 줄기를 허공에 뉘이고 있다.

전순희의 춤은 도연명의 시어와 같이 담백하고 순수하며 휘어진 난초 잎과 같이 맑고 거침이 없다. 시와 꽃이 하나 되어 선비의 매서운 절개와 그 속에 품은 세련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맛깔스러운 춤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듯한 국수호의 춤 세계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축구선수 박주영이 그리스전의 골 한방으로 모든 기우를 날려버렸듯 ‘춤의 귀환’으로 명실상부하게 무대로 복귀한 창조적인 안무가며 지칠 줄 모르는 무용가 국수호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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