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권기철 화백]먹과 오방색… 극과 극 오가는 대범한 색감
[인터뷰 - 권기철 화백]먹과 오방색… 극과 극 오가는 대범한 색감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4.03.17 2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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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구인당미술관서 700여 평 규모 기획초대전 예정

     ‘소리를 그리는 작가’로 유명한 권기철 화백은 제도에 얽히지 않은 철학으로 담백한 붓놀림을 구사한다. 강렬한 색채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음악을 영감으로 마음껏 표출해내는 리듬감을 통해 관객에게 자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해 평균 200점을 그리는 그는 다작하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드로잉까지 합치면 그 수는 배로 늘어난다. 음악을 동력 삼아 화선지 위에 붓을 놀리며 무아경에 빠진다. 하루라도 붓을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그이다.

     권 화백의 지난 한 해는 고됐다. 늘 해오던 대로, 익숙한 대로 이끌어오던 작업에 문득 회의가 들었단다. 예정돼 있던 전시들을 줄줄이 취소하고 고민에 빠졌다. 이게 슬럼프라면 슬럼프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겪어온 가난에 내성이 생길만도 했지만, 전시를 하지 않으니 작품을 팔 수 없어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친구로서 주변에 미안함이 더해져만 갔다.

     그런 그를 동면에서 깨워준 것은 대구의 한 대규모 미술관으로부터의 기획초대전 제의와 본지 문화대상에서의 최우수상 수상 소식이었다. 이는 지쳐있던 그에게 활력이자 획기적인 동기 부여가 돼 줬다. 특히 기존 작품메시지에서 나아가 사회와 본인과의 관계 모색에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작품 전개에 대한 열의를 다질 수 있도록 했다.

     ‘세월에 풍화되어도 오롯할 수 있는 작품’을 위하여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겠다는 그를 만나 보다 더 깊은 속내를 들어봤다.

1963년 경상북도 안동 출생 / 개인전 : 달성문화재단 초대전(2012), 일본 세이카 갤러리 초대전(2008), 목인갤러리(2006) 외 다수 / 단체전 : 늘 푸른 일레븐 (2013 서울인사아트센터), 고암 미술상 추천작가 초대전 (2012 이응노의 집), 상하이국제아트페어(2010 중국 Shanghai Ever bright Convention Center), Five From Korea (2009 미국 Triton Museum) 외 다수 / 작품소장처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구시청, 대구검찰청 서부지원, 울산 현대중공업 외 다수

-제5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 한 말씀 부탁한다.
“개인전을 30회 넘게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관성에 의존해 이어오지 않았을까 회의가 들던 때가 있었다. 그저 익숙함에 빠져 흘러온 건 아닌지 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특히 지난해는 예정돼 있던 개인전들을 다 취소할 정도로 여러 생각이 많은 해였다. 그러던 중 미술관에서의 대규모 개인전 일정이 잡히면서 맞물려 문화대상까지 수상하게 됐다. 이번 상은 내게 활력이자 ‘획기적인 까닭’이 돼 줬다. 이걸 기점으로 작품에 변화를 맞게 될 것 같다.”

<무탄트> 2012

-작품에 새로운 변화가 있을 거라니 기대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아직 시리즈명은 정해지지 않았다. 완전 새로운 작품도 있고, 예전 시리즈에서 연장돼 이어지는 작품도 있다. 지금까지는 내 정체성을 짙게 드러냈었다면 이번에는 사회성을 담아보려고 했다. 사회와 나와의 관계라든가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평면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나무를 이용한 입체작품도 몇 점 선보일 계획이다. 이전부터 종종 입체를 작업해왔지만 이번에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다.”

-꼭 나무로만 입체작품을 하는 이유가 있나?

<무제> 2012

“아마 나는 그림을 하지 않았다면 목수가 됐을 거다. 아버지가 손재주가 좋으셨는데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 때문에 5살 때 오른손을 작두에 잘려 봉합수술을 받기도 했다. (기자에게 손을 보여주며) 봉합을 해놓긴 했는데 주먹을 쥐거나 손가락 접는 건 힘들다. 평소에 거의 쓰지 못하고 딱 2가지 경우에만 사용하고 있다. 바로 밥 먹을 때와 작업할 때. 오히려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할 땐 오른손으로만 한다.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고 그림을 그릴 때면 다들 신기해하더라.(웃음)”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작품이 추상적이면서도 굉장히 역동적이다. 특히 오방색 등 과감한 색감이 인상적인데, 어떤 의도가 담겨있나?
“강렬한 색감에 빠지게 된 건 인도여행을 다녀온 후 부터이다. 인도에서 경험한 색에 대한 대범함…. 보색이라 할지라도 대범하게 사용하는데 거기서 묘한 조화를 느꼈다. 혼란 속의 질서랄까. 또 무거움을 벗어보고자 하는 마음에 밝은 색을 쓰기 시작했다. 밝은 색감이나 화려함은 대중들이 좋아해주는 요소이니 판매와도 연결됐으면 하는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먹 작업을 간과하지 않는다. 먹은 늘 내게 과제와도 같았다. 내가 개발한 먹을 통해 보통의 수묵과는 좀 다른 형태의 작업을 하고 있다. 화려한 색 작업이 주는 강렬함과 달리 먹 작업의 그것은 내 안의 강한 응집의 폭발을 담고 있다.”

-흩뿌리기, 튀기기, 번짐 등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언젠가는 손바닥이나 발자국을 찍은 작품도 봤는데, 자유로운 표현방식이 눈에 띈다.
“작업행위를 통해 난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내가 화선지 위에 행위를 할 때면 내 스스로도 내가 뭐하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은 이게 단순히 내 배설물인지, 점층적인 내 의식사유의 집합인지 고민이 많다. 작품이 그저 유희로만 끝나면 안 된다. 작가의 고독과 고뇌가 응축돼 표현돼야 하는데, 가끔은 자유로운 표현방식이 내 그림을 가볍게 만드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곤 한다. 반대로 너무 무거운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 위해선 작업 중의 무아지경인 상황을 보다 더 철두철미하게 이끌어내야 할 것 같다.”

<러브> 2011

-클래식음악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음악를 영감으로 화선지 위에 리듬감을 표현하고 있다. 음악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예전에 나는 하루라도 붓을 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심했다. 그러지 않으면 불안하고 그 불안함에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 그 상황을 타파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게 바로 음악이었다. 내겐 동력과도 같다. 클래식음악뿐만 아니라 팝, 재즈 등 모든 음악을 사랑한다. 음악에, 소리에 몰입하면 어느새 소리에 내가 얹혀서 흘러가고, 리듬을 타게 되고, 그러다보면 작품이 나오더라. 음악이란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자양분이다.”

권 작가가 캘리그라퍼로 참여한 경주문화엑스포 포스터
-작품에 캘리그라피를 접목하고 있다. 책 표지, 대구시 행사 서체 및 슬로건 등을 통해 캘리그라퍼로서도 활동 중이다.
“캘리그라피는 내 작업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작업에 방해되지도 않을뿐더러 양식糧食 해결에 적절한 역할도 해준다.(웃음) 글씨를 쓴다는 것 보다는 글씨를 만든다, 그린다는 느낌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무리 고민해도 3시간 이상 작업시간을 넘기지는 않더라. 3시간 안이면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건 다 뽑아낼 수 있다.”

-국내 미술시장의 계속되는 침체기 속에 극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작가들이 온전히 작품에만 매진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는 전시를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힘들지는 않았나?
“작년만 힘들었겠나. 계속 그래왔다.(웃음) 비용은 마이너스에서 충당한다. 질러놓고 수습하는 스타일이라…. 그래도 어떻게든 해결되더라.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가난했다. 밥을 거르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가난을 괴로워하거나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니 마냥 내 자신만 생각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작품 외에 하는 일은 거의 없다보니 작품이 안 팔리면 힘들어지는 거다. 작가로서의 나는 작품이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큰 상관이 없지만, 가장으로서의 내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회의가 들기도 한다.”

-반면에 작가가 되길 잘했다고 느낄 땐 언제인가?
“작가들 대부분 그렇겠지만, 마음먹은 이상으로 작품이 나왔을 때의 그 희열은 말로 표현 못한다.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도 참 괜찮은 작품일 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도 나는 간직하지 않는다. 작품의 최종의 완성은 적절한 위치에 걸리는 것 아니겠나. 내 작품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사갈 때면 보람차다.”

-주로 대구에서 활동하며 지역기반 작가로서 활동 중이다. 중앙으로의 진출에는 관심이 없는지 궁금하다.
“지역과 중앙을 비교하면 지역이 아무래도 답답하긴 하다. 소통의 범위기 그리 넓지 않으며, 시장 자체도 월등히 좁다. 한땐 중앙으로 나오려고 애를 쓰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아니다. 어디에서의 활동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에는 작품이 가장 중요한 거더라. 유명한 작가가 되기 위해선 용의주도함이 필요하다. 계획적으로 내 자신을 이끌어야하지만 난 억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방송에 나오면 작품가가 오른다는데 실은 그게 작품성과 연결되는 건 아닌 듯하다. 중앙으로의 진출 기회는 언젠가 오지 않을까 하면서도 안 와도 상관없다는 주의다.”

-올해 계획된 전시나 활동이 있다면 알려 달라.
“개인전 3개가 예정돼 있다. 다 규모가 제법 커서 집중적으로 전력투구하면서도 완급조절하며 달려가고 있다. 특히 하나는 미술관 기획초대전이라 지금까지의 개인전보다 5배 정도 큰 규모의 전시가 될 것 같다. 대구 보건대학교 내에 있는 인당미술관인데 전시관이 무려 700여 평이나 되더라. 연말로 예정돼 있으나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 또 다른 하나는 9월 서울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가진다. 이 전시는 내가 직접 대관해 진행하는 것으로, 내 의지대로, 내 마음껏 해보려고 대관했다. 나머지 하나는 아직 일정 조율 중으로 얘기하기 힘들다. 올해 전시들이 외적으로도 크지만,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기대감이 있어 기분이 좋다. 그리고 미술전문출판사에서 40-50대 작가 시리즈 중 하나로 나에 관한 책이 발간될 예정이다. 되도록 미술관 전시 전에 출간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가로서의 꿈은 무엇인가?
“한 시인이 말하기를 ‘좋은 시를 써서 사람들을 울리리라’고 했는데 나 역시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얼마만큼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현실과의 타협을 져버릴 순 없지만 분명 그 중간 접점이란 게 있을 것이다. 그 지점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내가 글 쓰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와 관련해 언젠가 꼭 화문집을 내고 싶다. 표지부터 내부 편집 디자인까지 모두 직접 다 해서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