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랑 이종상 화백 특별기고]Ⅱ. 벽화의 史的 고찰
[일랑 이종상 화백 특별기고]Ⅱ. 벽화의 史的 고찰
  •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4.03.2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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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에 이어)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 회원/서울대 초대미술관장/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
선사시대의 회화양식이 원시미술을 벗어나면서 역사의 변천에 따라 동양화에 서로 간섭하며 발달하여 온 과정을 볼 때 동양인의 관념적인 직관성과 유심론적인 취상성의 높은 정신적 차원에 긍지를 가지며, 그 위에 우리의 문화적 기존 소질은 다시 한번 유전적인 우수성을 발휘하여 현대의 창조적 미술활동에 기여할 가능성이 족히 넘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Ⅱ. 벽화의 史的 고찰

1. 서양의 벽화
(1) 선사시대의 벽화
가장 오랜 세월을 거의 원상태로 유지되어 온 Altamira동굴의 Bison벽화는 BC. 30,000~20,000년 경에 그려져 1879年 서반아 Santander부근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France남단 Lorthet지방의 동굴과 Font-de-Gaume동굴에서도 유사한 벽화가 많이 발견되었다. 또한 4,000feet에 달한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로서 그들이 암흑상태에서 인공적인 조명 아래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수렵생활하에서 생명원인 동물에 대한 일종의 마술적 동정와 원시신앙의 양식 속에서 생활의 효능과 형태에 대한 만족이라는 이종의 예술적 충동이 회화에 결합되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동部 서반아에서는 양식의 판이하고 난해한 4inch 정도의 소품으로 인간과 동물을 군상으로 표현한 구석기시대 벽화가 발견되었다. Santander와 P?rigord, Pyr?n?es의 순록 수렵자들의 조상에 의한 Franco-can-taberia미술과 북Africa의 서반아 Levant의 Capcian미술은 元始原野(원시원야)에서는 진보할 수가 없어 Garonne 江 유역에서 발전 완성된 것이다.

한냉기가 그치며 순록의 절멸과 함께 제4성층기 말에는 벽화제작이 쇠잔하고 구주 북단으로 이동한 듯하나 후대의 근동 상고문명과 확실한 관계를 찾기 힘들며 이로써 순록시대의 동굴미술은 소멸되고, 이후 호소 처거인의 금동 발견으로 미미한 장신도구의 선조적 장식미술이 있었다.

(2) Nile江 유역의 벽화
BC.4000~3000年代 본격적인 벽화 제작이 이루어졌으며 고대 Egypt 제4왕조시대 meidum의 아조와 Beni Hasan, Nakht분묘의 향연도와 제물도, Theban분묘의 포금도, Akhnaton궁전의 마루 장식도 등이 남아 있고 Mesopotamia Mari유적의 freseo와 Kreta조, Aegae족의 Knossos궁전 벽화 등이 있다.

미의 관념을 표현하려는 포렵미술 이전에는 영존 관념이 Egypt벽화와 위력 관념의 말대아 벽화로 양분되었으며, 당시 회화는 분묘와 궁전의 장식용으로 특히 분묘에서는 영생불사의 마술적 목적에도 사용되었다. 분묘 건축은 BC.4500~2475年頃의 古代 Egypt와 고왕조시대에 발달됐고 종교적 신앙의 벽화와 채색 정각은 현세대의 시각적인 것 보다 정신적인 것에 기반을 두었다.

이 때부터 왕족과 고위 집권자의 생전생후의 위안물로서 종교적으로 장식화된 벽면 구상을 벽화工에게 사역시켰을 것이다. 그들은 현세 육신의 부합물인 「Ka」의 존재를 신앙으로 하여 사후에 육신은 목내이로 「Ka」는 예물을 헌납하였으며 靈界(영계)에서의 필요품과 열락을 보장키 위해 분묘벽에 생시의 화상을 그려 고유한 주문과 함께 후세 영생불사의 신앙을 동기로 함을 보여준다. 고왕시대에는 벽화는 정각과 건축에 부속되었으나 중왕조와 제국시대에는 화가와 독자적으로 벽화 구상을 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3) Euphrates-Tigris 溪谷과 Persia 벽화
슈메리안은 Egypt 人과는 달리 현세생활을 중요시하여 내세관념에는 회의적으로 표현했다. 분묘나 벽화는 기념비적이 아니며 생의 친밀감도 주지 않고 생시향락을 위한 화려한 궁전의 내장벽화와 물질적 번영을 위하여 제신 봉안을 한 신전들이 있다. 동을 입힌 미목과 연와로 쌓은 궁전의 기단과 사자수위상이나 frize(화양대)에 신선한 색채를 도장한 것이 있다. 이것들은 Babylonia, Assyria, Persia 벽화양식의 공통적 특징이다.

BC. 1000~612년 경의 Assyrea의 Ashurbanipal궁전의 향연도와 수렵도는 장식성보다는 일화성을 띠나 동물 생활에 관한 웅대한 표현이 엿보이며 수렵이 생활수단이 아닌 오락과 향락으로써 희극적으로 화면에 구성되어 있음이 흥미롭다. 또한 찬란한 원색조 채색의 전통적 사실주의로 생명감이 충일된 양식이다.

석재가 귀한 Assyria는 채색연와로써 궁전의 구형광실과 내정회랑에 벽화와 얕은 정조나 그 위에 채유로 효과를 노린 대회양대를 만들었다.

BC. 612~539年頃의 Chaldea人들도 에나멜의 현란한 타일을 썼으며 유약으로 도상을 연와표면에 그렸으며 평면적인 것이 많다. 사실적 표현방법으로 Egypt의 영존 관념에 대해 위력 관념을 표현했다.

그 후 Darius 치하에서 Persia의 영향을 받아 Iran족의 신앙의 추상적 정신주의가 반영되어 Assiria의 동적 사실주의와 다른 장식적?설화적인 준엄성이 있는 표현을 했다. 특히 평면회화 이외에 石材?煉瓦?유와의 채색의 活用 범위가 넓어, 색채 구현이 자유자재하였다.


*이 원고는 일랑 이종상 화백님의 '고대벽화의의 史的(사적) 고찰과 신벽화의 재료및 기법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발췌해 연재로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