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기행-108]회화(戱畵)가 던지는 한 컷의 에너지 - 한국만화박물관
[박물관 기행-108]회화(戱畵)가 던지는 한 컷의 에너지 - 한국만화박물관
  • 이정진 Museum Traveler
  • 승인 2014.03.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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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박물관전경
오늘날 서점 어린이 코너엔 역사와 과학을 다룬 교육적인 서적부터 다이어트와 패션에 관한 서적까지 다양한 학습만화들이 판매되고 있다. 영화관에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으며 기업들은 홍보 웹툰을 공모하는데 여념이 없다.

문화산업을 이끌어갈 기대주로 주목되고 있는 만화는 개인 혹은 기업들과 상생하며 현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한 때 불온서적, 불량만화로 핍박받던 과거의 상처를 안은 채 움츠렸었던 한국의 만화계는 현재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날개를 펼치며 성장하는 중이다.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한국만화박물관은 만화가 지닌 근·현대사적 문화가치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만화가 가진 잠재력을 발전시키고자 설립되었다. 단 몇 컷의 그림과 몇 마디 대사를 통해 풍자된 모습 속 본질을 꿰뚫어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만화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서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 기획전시관에서는 얼마 전 문화재로 등록지정(2013.12.20.)된, 감히 역사서라 일컫고픈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선정된 작품들은 일제강점기 식민지배 당시의 아픔을 동물들의 이야기로 풍자한 토끼와 원숭이(김용환作), 6.25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사회상을 조선시대 노비 모자(母子)의 애달픔에 묘사한 엄마 찾아 삼만리(김종래作), 1955년 동아일보에 첫 기고를 시작하였던 최장수 시사만화 고바우영감(김종환作) 총 세편으로 대한민국을 다양한 각도와 시선으로 각색하여 민족의 아픔과 시대의 부패상을 소리 없는 깊은 울림으로 전달하고 있다. 전시는 문화재 등록지정 기념으로 마련되어 원작을 포함한 오토마타 및 새로이 제작된 영상 등으로 다채롭게 전시되고 있다.

▲만화가게1

모든 그림자에겐 근원의 빛이 있듯이 우리나라의 모든 만화들이 대한민국의 어두운 일대기만을 그려낸 것만은 아니다. 상설전시관에는 고 고우영 선생의 특별관이 작게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청년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수많은 작품들은 ‘만화란 알약 겉에 달콤하게 입혀놓은 당의와 같다.’ 라는 생전의 말씀과 같이 쓰디쓴 가르침이 아닌 웃음 속 깨우침을 주는 다정한 담임선생님 같은 존재로 독자들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거장의 힘을 보여주었다. 고우영 선생의 일대기와 작품들이 비춰진 작은 전시관은 오랜 옛집 속 정갈하고 튼튼한 살림살이를 구경하듯 연륜 속 견고함에 감탄이 서린다.

상설전시관에서는 그밖에 만화에 얽힌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달달한 요소가 숨어있다. 인터넷도 게임방도 없던 학창시절 즐거움을 선사하던 만화 가게가 구석 어두운 골목 가로등 밑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들과 책표지를 앞으로 향해 눕힌 채 고무줄로 막아놓은 나무 책장들이 하교 후 몰려들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의 대여점과는 다르게 옹기종기 어깨를 붙이고 앉아 책을 읽으며 정감을 나누던 공간을 바라보는 누군가에게는 깊은 향수로 남아 꽂혀있는 낡은 책 한 권에 나지막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상설전시장

아이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은 옛 감상에 젖고 아이들은 또 다른 즐거움을 만난다. 문화산업의 현재이자 미래가 될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웹툰들이 다양한 그림체와 스토리로 개성을 뽐내고 있다. 웹툰이 생소한 이들이라면 이곳에서 다양한 주제와 상상력이 합해진 만화만큼이나 새로워진 제작기술과 진보한 아이디어를 체감하고 만화가들의 작품 활동과 인터뷰들을 통해 대한민국 만화계의 현 주소를 느껴볼 수 있다. 전시장 내 체험공간에서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리기 체험을 하느라 바쁘게 손을 놀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쩐지 성실해 보이기까지 한다.

▲고우영관 입구

과거 만화가를 생업으로 삼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으나 현대의 많은 아이들이 만화가를 장래희망으로 거리낌 없이 선택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만화란 그림과 글의 융합이 아닌 문화자산의 원석으로 인정되고 있다.

문화산업의 한 줄기 맥으로 굳건히 자리매김을 할 만화가 성장하는 현재 한국만화박물관의 책임은 갈수록 더욱 더 막중해질 것이다. 갈대밭을 해치고 스스로 길을 만들 듯 우리만화가 내딛는 걸음을 함께할 한국만화박물관의 앞날을 응원해본다.

한국만화박물관(www.komacon.kr/museum)참조
위치_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길주로1(상동 529-2)/문의_032-310-3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