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재신 작가] 지역 무명작가, 세계 러브콜 주인공 ‘완판 작가’로 급부상
[인터뷰 - 김재신 작가] 지역 무명작가, 세계 러브콜 주인공 ‘완판 작가’로 급부상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4.03.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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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동피랑 소재로 회화와 판화 접목한 ‘조탁기법’ 독창적 작업방식 주목

▲동피랑이야기, 46x25, mixed media, 2014
통영 출신인 김 화백은 예술의 힘으로 살아남은 동피랑의 풍경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김 화백이 직접 명명한 ‘조탁기법’이란 독특한 표현법으로,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통영 바다의 기기묘묘한 물빛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피랑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조탁기법이란 회화에 판화를 접목한 김 화백만의 독창적인 작업방식이다. 캔버스가 아닌 목판에 수십 번 색을 층층이 쌓아 조각칼로 긁어내 질감을 살리고 다시 색을 칠하기를 반복한다. 이렇듯 수없이 입혀진 색들이 칼끝에서 제 몸을 일으켜 만들어낸 빛은 흡사 햇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실제 바다의 그것과도 같다.

     김 화백은 10여 년간 운영해오던 미술입시학원을 접고 돌연 전업 작가로 뛰어들기를 결정했다. 2006년에서야 뒤늦은 데뷔를 치룬 김 화백은 학원 운영시절부터 학생들에게 늘 강조해오던 ‘나만의 것’이 정작 자신에게는 부재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후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2008년부터 조탁기법 작품을 발표하며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서울오픈아트페어에서 유일하게 작품 10점을 완판시킨 작가로 주목받는가 하면, 홍콩 마카오, 미국 뉴욕 등 전 세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기도 하다.

     통영의 오밀조밀한 예쁨을 붓이 아닌 조각칼로 담아내고 있는 김 화백은 현재 국내미술계의 ‘블루칩’ 작가이다. 초대전이 이달 27일까지 서울 청담동 갤러리두에서 개최되며, 이어서 4월 1일부터는 부산 마레갤러리에서도 초대전을 가질 예정이다.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두에서 김 화백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김재신 작가
-이번 초대개인전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거창하게 설명드릴만한 건 없다. 통영과 통영의 바다를 담았다. 힘들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동피랑을 그리고 싶었다. 동피랑은 내게 사람끼리 서로 의지하며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다. 그런 걸 내 방식대로 표현해봤다.”

-회화에 판화를 접목하는 기법. 목재표면에 끌, 조각칼과 붓을 함께 이용하는 '조탁기법'으로 불리더라. 어떻게 시작된 표현법인지 궁금하다.
“작가는 오직 작가만의 것이 있어야한다고 늘 생각해왔었다. 미술입시학원을 운영해오면서도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작가 본인만의 것이 있어야만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말해왔었다. 그러던 중 2005년에 생애 첫 전시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문득 내 그림을 보니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더라. 학생들에겐 그렇게 너만의 것을 가져야 한다고 해놓고선 정작 내 자신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전시는 다가오고 그림은 그려야겠고 하니 생각에 잠겨 무작정 작품들에 덧칠만 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칠했을까… 옆에 있던 칼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진 모르겠어도 겹겹이 쌓인 색을 칼로 한 번 파보았는데, 그 순간이 내게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유레카’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오랜 시간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독특한 기법이 탄생됐다. 그리고 내가 직접 ‘조탁기법’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듣고 보니, 색을 쌓고 다시 파내어 원하는 색이 나오게 하는 과정이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닌 것 같은데, 이를 하나의 기법으로 완성시키기까지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랬다.(웃음) 바로 그 ‘원하는 색’을 얻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른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지만, 우연히 칼로 파내어 깨달음을 얻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절대로 그만 둘 수 없었다. 실패해서 버린 그림도 많았지만, 시행착오를 하도 많이 겪다보니 그냥 자연스레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됐다.”

-한 작품이 탄생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한데, 살짝 말해 달라.
“이건 나만의 비밀이니 구체적으로 말해줄 순 없다.(웃음) 간단히 말하자면, 파낸 부분에서 세 가지 색깔이 보인다고 할 때, 이는 적어도 12번은 색을 깔아야 세 가지 색깔이 보일 듯 말 듯 나타나게 된다. 얇은 색 층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많은 색이 보이는 작품에서는 내가 얼마나 많은 색을 쌓은 걸지 상상이 되나.”

▲통영풍경, 57x91, mixed media, 2014
-작업의 특성상 작품 완성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한다. 구상 시간도 필요하고, 물감이 마르는 시간도 걸리기에 여러 개를 같이 작업하는 게 효율적이다. 그러면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두 달여 걸리는 것 같다. 일요일도, 명절도 없이 하루에 14시간정도씩 작업한다. 작업할 때가 가장 편하고 밖에 있으면 괜히 불안하다.”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자개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돌출 부분들 때문에 빛을 받으면 음영에 의해 그런 느낌이 난다. 아버지께서 나전칠기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자개의 영롱함이라든지 반짝임이 내 무의식에 잠재돼 있다가 작품에서 드러나게 된 건 아닌가 싶다. 아버지께서 자개로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게 내겐 이런 식으로 발현되고 구현된 것 같다. 만약 이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우연히 칼로 파냈던 그 순간에 내가 그렇게까지 소름이 끼치진 않았을 것 같다.”

-일명 '동피랑 화가'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밥그릇시리즈’, ‘연탄시리즈’ 등을 선보이다가 현재 ‘동피랑’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소재가 동피랑으로 넘어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밥그릇 이전에는 풍경 등 사실적인 걸 그렸다. 그러다가 메시지를 담아 밥그릇이나 연탄을 하다가 조탁기법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동피랑에 매진하게 됐다. 여백을 넣으며 비워내는 과정에서 구상과 비구상이 공존하는 느낌으로 가다보니 이렇게 변화한 것 같다. 세 가지 소재가 다른 것 같지만, 실은 모두 같은 일직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달픈 삶 속에서도 서로 간의 정겨움과 따뜻함 말이다. 부산서 대학 다니겠다고 온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 간 적이 있었다. 같은 바다였는데도 부산에 있으면 왜 그렇게 답답했는지 모른다. 주말이면 통영에 가 언덕에 오르면 숨이 탁 트이곤 했다. 통영 바다란 내게 엄마와도 같은 존재랄까. 모든 걸 주고, 모든 걸 품어주고…. 그래서인지 내가 강렬하거나 센 색을 쓰기 싫어한다. 어둡거나 너무 원색적인 색 보다는 파스텔 톤 같이 부드러운 컬러가 통영 바다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첫 개인전을 2006년에서야 가졌다. 나이에 비해 굉장히 늦은 시기에 데뷔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생활 때문에 그랬다. 미술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먹고 살기에 바빴다. 학원 하면서는 그림을 거의 하지 못했다. 가끔씩 붓 가지고 노는 정도였지만 그러나 작업에 대한 갈망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작업이 내 갈 길이란 걸 뒤늦게 깨닫고 학원을 정리하곤 더 늦기 전에 작업에 뛰어들었다.”

-학원을 접고 전업작가를 선언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
“물론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내 의지대로 결단을 내렸던 거다. 학원 그만두면서 생활은 힘들어지긴 했지만, 늦게 시작한 만큼 해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고나 할까….”

▲동피랑이야기, 61x37, mixed media, 2014.jpg

-어렵게 가진 첫 전시의 의미가 남달랐겠다. 당시 소감이 어땠나?
“앞서 말했듯이 내 작품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남들과 똑같은 그림을 걸어놓고 창피했다. 보는 사람들은 밝은 색감의 풍경그림을 좋아해줬지만, 나는 하루빨리 그 풍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더더욱 조탁기법 개발에 힘을 쏟았다. 조탁기법 작품은 2008년부터 서서히 발표하기 시작했다.”

-데뷔만 따지고 보면 실은 신진작가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지난해 서울오픈아트페어(이하 SOAF)에서 출품작을 완판한 유일한 작가이기도 했으며, 통영 및 서울에서의 전시도 줄줄이 이어지는 등 중견작가 못지않은 주목과 판매력을 보여준다.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아무리 고민해 봐도 사람들이 왜 좋아해주는지 모르겠는데…, 내 삶의 흔적과 굴곡이 녹아들어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곤 한다. 작년 SOAF에서 작품이 모두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지방의 무명작가 작품을 사준다니, 좋으면서도 동시에 불안감과 책임감이 들기도 했다. 당시 전시 기간도 짧았고, 더군다나 100호짜리도 있었기 때문에 모두 나갈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전시 첫날 100호짜리가 모두 나갔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진부한 표현이지만…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파노라마로 머릿속을 싹 스쳐가더라.” (김 화백은 기자에게 그때의 얘기를 하면서 여전히 만감이 교차하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지역 기반 작가로 활동하다가 짧은 시간 안에 중앙에 진입했다. 언론에서는 ‘블루칩 작가’라고 주목하고 있다. 서울에서의 첫 전시는 어땠었나?
“2012년 갤러리평창동에서 초대개인전이었다. 갤러리 대표가 통영에서 우연히 내 전시를 보고 날 초대한 거였는데, 내 생각에는 당시 갤러리 대표도 나에 대해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시 첫날부터 작품이 판매되기 시작했고, 기대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열흘로 예정돼 있던 전시기간이 한 달로 연장되기도 했다. 그때 동피랑 그림이 모두 판매됐고, 내 그림이 판매되는구나, 사람들에게 어필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바다, 91x65, mixed media, 2014

-올해 예정된 전시나 활동 계획이 있다면 알려 달라.
“4월에는 부산 마레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있고, 5월에는 SOAF에 출품한다. 또 홍콩 마카오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고, 뉴욕과는 현재 얘기가 오가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궁극적인 목표와 꿈은 무엇인가?
“꿈이라기보다는 작업을 통해 내가 자연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자연과 보다 더 가까워져 내가 자연의 한 부분이 되고 싶다. 그리고 작업에 있어서 목표는 나의 있는 그대로를 숨김없이 표현하자는 것. 내 안의 더러움이 있다면 더러운 그대로 표현하고, 맑음이 있다면 맑은 그대로를 담아내고 싶다. 숨기고 꾸며내지 말고 진실되게 그림을 하고 싶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여전히 밖을 나오지 못한 분들이 많다. 그 분들에게 힘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