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손병호 주연, '내 심장의 전성기'
[리뷰]손병호 주연, '내 심장의 전성기'
  • 고무정 기자
  • 승인 2014.04.0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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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기법,배우들의 ‘클로즈업’ 된 심리 느끼게하는 참신한 연출 돋보여

대학로 자유극장에 오른 「내 심장의 전성기」는 어느 철없는 아빠와, 그에게 진저리치는 딸의 이야기다.

왕년 잘 나갈 뻔한 헤비메탈 밴드 ‘핵폭탄’ 이 불의의 사건으로 해체된 지 30년, 다른 멤버들과 달리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한 광현(손병호)는 조그마한 주점을 차리고 그 곳에서 매 주말마다 공연을 연다. 그러던 어느 날, 후두암에 걸려 6개월 후면 목소리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그는 앨범을 내기 위해 옛 멤버들을 끌어 모은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에피소드가 극의 전개를 이끌어나간다.

주요 멤버들은 386세대다. 80년대, 치열한 격동의 시대에 저항의 몸부림을 치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고 안정적인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즉, ‘꼰대’ 역할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외 없는 규칙은 없듯, 모두가 안정적인 사회의 중심부에 있진 않다. 더러는 라이브 카페에서 기타를 튕기며 살고, 누구는 젊은 시절, 헤비메탈을 하던 때를 잊지 못한다. 그들의 20대는 지금처럼 사회의 안정적 구성원이 아닌 세상의 한 축이었고, 명료한 절대악을 향해 저항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퇴색된 듯한 열정을 끄집어내는 이 극은 세상의 뒤켠으로 물러선 그들의 삶을 드러냄으로써 우리를 돌이키게 한다.

광현은 인사부장으로 대기업에서 일하는 석주를 꼬드긴다. 재결성한 핵폭발의 멤버가 되어 다시 드럼을 쳐달라는 부탁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못 들어가 안달인 대기업을 누가 제 발로 걸어 나오겠는가. 석주에겐 젊은 날을 돌이키게 하는 ‘헤비메탈밴드 핵폭발’ 은 되려 희망고문 같은 것이었으리라.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오래전에 죽은 멤버 베이시스트의 자리를 누군가가 채워야 한다. 예전 리드기타를 하던 두영은 선뜻 베이스를 맡지만, 6줄 통기타만 잡고 산 세월 탓인지 베이스에 영 어설프다. 이 와중에 보컬 광현은 병걸린 목 때문에 자꾸만 각혈을 한다. 그들이 앨범을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386 세대의 삶만을 담고 있지 않다. 이 극엔 ‘가족’ 이 있다. 광현이 철없는 아빠로서 꿈을 좆는 동안, 그의 부인은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다. 남은 딸 보람은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복싱을 시작한다. 경기를 마치고, 얼굴에 멍자국이 난 채 아빠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들어선 보람은 묻는다. 아빠에게 음악은 뭐냐고. 그러자, 수술 때문에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광현은 답한다. ‘이젠,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보람은 아빠에 대한 원망이 자신으로 하여금 자꾸만 링 위에 서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복싱을 계속 해야만 하는 것처럼, 아빠도 계속 인생을 걸고 음악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토록 싫었던 아빠의 음악을 응원하게 되고, 결국 광현은 목표했던 ‘딸이 흥얼거리며 부를 수 있는 곡’을 남기게 된다.

격동의 시기를 헤치고 살아낸 그들의 인생과, 우정과, 가족애를 담은 이 작품은 독특한 연출이 돋보인다. 그 중, 두 번이나 등장하는 슬로우 기법은 영화에는 자주 쓰이나, 무대에서 보기 흔치 않은 연출이다. 등장하는 슬로우 기법은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들의 ‘클로즈업’ 된 심리를 느끼게 한다. 또한 전혀 다른 상황에서 쓰인 두 번의  슬로우 기법은 각각 다른 느낌을 받게 만들어 연출의 참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헤비메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컬의 그로울링과 샤우팅이다. 배우들은 극에서의 헤비메탈 공연을 위해 오랜 시간 헤비메탈의 창법을 연습했다고 한다. 극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그들의 공연은 그들이 ‘가장 사람 같았던’ 음악을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쾌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시간 연습한 창법과 그들의 연주는 극에서의 또 하나의 볼거리.

각자의 치열한 삶을 보이고 싶었다는 작가와, 386 세대의 자화상인‘내 심장의 전성기’ 로서 우리를 되돌아보고, 우리의 심박동을 체크할 수 있길 바란다는 연출가의 의도가 적절히 어우러졌다.

3일 ~ 6월 1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구 PMC자유극장)
(문의: 공연기획 감탄사 02-765-1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