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발레단, 강수진 표 2014년 <라 바야데르>
[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발레단, 강수진 표 2014년 <라 바야데르>
  • 이근수 무용펑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4.04.0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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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펑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라 바야데르>를 즐길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코 발레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무용평론가 클립 반스(Clive Barnes)의 말이다.

신전의 무희인 니키아에 대한 두 남자(솔로르와 브라만)의 사랑, 솔로르의 약혼자 감자티 공주의 니키아에 대한 치명적 질투, 사랑과 세속적 권력사이에서 잠시 방황하지만 결국은 죽음으로 사랑을 찾아가는 솔로르의 순애보, 파계승 브라만의 니키아에 대한 정욕...인도의 신전과 왕실을 배경으로 발레를 구성하는 스토리만으로도 엄청난 로망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라 바야데르>의 전부가 아니다. 공주의 계략에 의해 독살당한 니키아가 순백의 망령이 되어 서른 한 명의 다른 망령들과 함께 느린 아다지오음악에 맞춰 춤추는 군무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이고 클립 반스의 말을 탄생시킨 명장면이기 때문이다.

‘망령들의 왕국(the Kingdom of the Shades)'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라 바야데르( La Bayadere)>의 원작(1877)은 백조의 호수, 슬리핑 뷰티, 돈키호테 등으로 유명한 마리우스 프티파다. 루돌프 누레예프와 나탈리아 마카로바가 각각 영국 로열발레와 아메리칸 발레시어터를 위해 재 안무했던 이 작품을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국립발레단을 위해 새로 안무한 것은 작년이었다. 나는 5회의 공연(2014, 3.13~16, 오페라극장) 중 초연(2013.4.9)과 동일한 캐스팅(김지영, 이동훈, 이은원, 이영철)이 설정된 첫날공연을 보았다.

무대와 의상(루이자 스피나텔리), 연주(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그 때와 동일하고 지휘는 쥬디스 얀(Judith Yan)이 맡았다. 출연진에도 커다란 변화가 없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작품은 작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우선 전체적으로 조명이 밝아지고 무용수들의 몸이 가벼워졌다. 작년 공연을 보면서 무대를 밟을 때마다 무용수들이 내는 둔탁한 소리들이 귀에 거슬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표정에 생기가 넘치고 자신 있게 내딛는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이 모두 이입되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전연 다른 무용단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캐스팅 중에서 이동훈(솔로르), 이은원(감자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김지영(니키아)은 기가 약해보였다. 아마도 일주일 전까지 무대에 올랐던 현대무용공연(2 in Two)의 후유증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3막에서 보여준 망령들의 춤은 역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순백의 튀튀를 입은 32명의 정령들이 길게 줄을 이루며 산꼭대기에서부터 Z 자 모양으로 난 언덕길을 차례로 내려온다. 멈춰 섬과 움직임을 서른 두 번이나 반복하는 아라베스크(arabesques)동작이 이어진다.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듯 냉정하고 정지해 있는 듯 단순한 춤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다.

언덕을 다 내려온 그들은 무대 위에 네 줄을 만든다. 얼굴은 한 줄 씩 번갈아 오른 쪽과 왼쪽을 향하고 있다. 모두가 하나가 된 것처럼 통일된 움직임이다. 사랑의 약속을 저버린 남성에 대한 연민과 망령의 세계로 들어온 니키아를 위로하는 의식과 같은 군무는 지젤에서의 윌리 춤을 연상케 한다. 망령들이 사리진 후 혼자 남은 솔로르 앞에 니키아의 모습이 영상으로 떠오른다.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이 맺어질 곳은 이승이 아니고 망령들의 왕국에서일 것이다.

▲ <라 바야데르> 무대인사 장면.

국립발레단은 이번 공연을 통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라 바야데르>를 이렇게 춤출 수 있는 단체는 흔치 않다. 강수진 취임 후의 첫 공연이니 이를 강수진효과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미국(김혜식)과 한국(박인자, 김긍수), 일본(최태지)에 이어 독일 명문 발레단 출신의 정통 발레리나를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맞은 관객들의 기대는 크다.

선화예고 재학 중 독일로 건너간 그는 1986년 슈트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하여 1997년부터 수석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최고의 현역 발레리나다. 그가 유럽 정통의 발레를 국립발레단에 접목시키고 그동안 국립 단체들에 드리웠던 어두운 정치색을 씻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2000년대를 풍미했던 김주원과 김지영을 대신할 수 있는 카리스마틱한 프리마 발레리나를 찾아내는 일 역시 그에게 맡겨진 중요한 숙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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